가을과 사랑, 나조차 내가 싫은데 왜 넌 날 좋아해?

(3-2) 솔직한 장한의 자기 혐오 고백과 뜻밖의 별 호감 - 장한씨앗

by 라화랑

3-2.


"별씨 반응 진짜 웃길 때 많은 거 알아요? 그건 무슨 소리래?"


[아, 진짜! 놀리지 말아요! 아무튼! 제 마음이 뭐가 바뀌는데요?]


"음, 별씨를 얼른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별씨가 저를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마음 바뀌기 전에 가장 빠른 시간으로 바로 답했더니 그게 독립출판작가 북콘서트더라고요. 어, 여기서 제가 왜 그동안 독립출판물을 싫어했는지 얘기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어요. 그냥 책 싫어하는 사람 될까봐. 저, 책은 엄청 좋아해요. 사실- 어, 저여서 싫어해요. 저라서."


그게 무슨 말이냐며 별이 걷던 발을 우뚝 멈춘다. 장한은 이 걸음을 다시 걷게 할 심산으로 몇 발자국 부러 앞서 걷는다. 그리고 뒤돌아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코트 주머니에 양 손을 쿡 찔러넣고는 말한다. 장한의 버릇이다. 머쓱하거나 부끄러운 자신의 속 이야기를 해야만 할 때에 손을 주머니로 숨기는 것. 주머니 안 손이 꼬옥 쥔 주먹이라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한 일종의 눈가림새라고나 할까.


"어- 저도 독립출판물 작가거든요. 그리고 전 그런 제가 비겁하다고 생각하고요."

토해내듯 내뱉는 한숨, 그리고 두 문장.

장한은 왠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더이상 앞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장한은 발바닥에 채이는 낙엽을 괜히 마음 속으로 하나 둘,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갔다.


"삶이 버거울 때가 많았어요. 사실 지금도 좀 그렇고요.

별씨는 그런 마음 알아요? 안도현 작가님의 '연어'라는 책에서 나오는 구절인데요.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나 아닌 것들의 배경이 된다는 뜻이지.] 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전 그게 지금까지의 제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으리으리하거나 조금 큰 꽃집을 운영하는, 낭만적인 플로리스트라고 하는 제 인생을 저는 - 단 한 번도 제 마음으로 기꺼이 선택한 적 없거든요. 그걸 누군가에게 터놓고 불만을 쏟기에 저는 제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진심으로 사랑하고요.

그러니, 저는 제 비뚤어진 눈 하나만 바꾸면 되는 거예요.

제 모든 상황과 주변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 속에 놓인 저 자신이 ... 미워요. 밉더라고요.

정말- 뭣 하나 고맙다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가 싫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어디 터놓을 데가 없어서, SNS에 글자로 엮어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 때가 벌써 보자- 꽃집을 본격적으로 혼자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이니까 6년도 더 되었네요.

그렇게 알음알음 제 이름과 직업, 상태를 아무것도 밝히지 않은 채로 시나 에세이 따위의 어둡고 고까운 심상을 터놓은지 꽤 돼었을까요. 우연한 기회로 독립 출판을 하는 분과 메세지를 주고받다가, 그 분께서 꼭 제 글을 책으로 보고 싶다고 하시기에 저도 독립출판으로 시집을 내게 됐습니다. 댓글로 몇몇 분께서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싶다는 요청도 있으셨고요.

그래서 낸 책이, 또 우연찮게도 어느 유명한 인플루언서의 눈에 띄어

독립출판 치고는 꽤 많이 팔리게 되었습니다."


휴- 긴 말을 주절거리며 떠들고 나니, 그러고 보니 내가 무조건 잘 보여야 하는 사람 앞이었지- 이제서야 누구 앞에서 무슨 말을 한 건지 떠오른 장한이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별의 안색을 살핀다. 드디어 들려진 고개에 마주한 여자의 얼굴에는-

[정말요? 장한씨 너무 멋져요.

저,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집중해서 표현해내는 사람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해요.

자기에게 솔직한 게 전 그렇게 힘들더라고요.

저 장한씨 책 꼭 읽고 싶어요! 어디서 살 수 있어요? 당장 책 이름 알려줘요.]


묘하게 얼굴이 상기된 밝은 눈빛이 떠올랐다. 장한은 당황했다.

뜻밖이다. 내가 나를 싫어한다고 고백한 걸, 누가 좋아하겠냐 싶었다.

독립출판물이 잘 팔린 까닭은, 실제 자신 곁에 있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도 믿었다.


진짜 내가 곁에 나타나면-
이런 내가 친구라도 되자고 누군가 찾아가면-
당신들 모두 어두운 마음을 가진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할 거잖아.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 어찌해서 불평불만인지 재수없어할거잖아.

…라는 마음을 눈 앞에 있는 여자가 한 방에 뒤엎었다.

류별은 그의 대답을 소화시키는 듯- 잠시 앞에 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자고 제안한다. 그러자며 장현이 벤치에 먼저 다가가 툭툭 둘이 앉을 자리를 손으로 턴다. 그리고 혹시 몰라 늘 가지고 다니던 손수건을 코트 안쪽 주머니에서 꺼내 별이 앉을 곳에 예쁘게 놓는다. 요새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남자가 다 있다며 별이 웃는다. 장한이 그저, 할아버지가 들여놓은 습관이라며 머쓱하게 먼저 앉으라고 권한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며 앉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딸랑이는 은행과 단풍잎이 마치 모빌같다. 별이 예상 외로 꽤나 걸은 다리를 주무르며 다시금 장한에게 말을 붙인다.


[어, 근데 저라면 제 글이 그만큼 많이 팔려서 좋아할 것 같은데요?

왜 자기가 독립출판 작가여서 독립출판물이 다 싫다는 거야? 그게 비겁한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저 여자를 진정시켜야겠다. 기다려봐요, 류별씨. 전 누군가의 호감을 진정으로 받을 수 없는 멋 없는 남자입니다. 장한이 다시금 말을 잇는다.


"음- 그것도 제 알량한 자기 도피의 결과물이거든요. 원하는 대로 제가 살았다면 생길 리 없는 마음의 글자들이고요. 그래서 모든 독립출판작가들은 다 저같은 줄 알고 있었어요. 제대로 삶에 부딪힐 줄 모르는 비겁한 작자들이 갖는 타이틀.

그런데 오늘 보니 그 반대더라고요. 자기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자기 감정과 상상, 혹은 경험을 글로 풀어내면서 그런 자신을 용기있게 세상에 던질 줄 아는, 멋진 직업이었고요. 저는 또 저 하나만의 생각으로 누군가를 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네요.

그동안 제 눈가림에 씌어 싫어했던 모든 시간들에게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려고요.


그런데, 별씨는 궁금하지 않아요? 제가 왜 원하지도 않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꾸 주장하는지?"

[뭐, 좀 그렇긴 한데- 유광한테 들은 바로는, 옛날부터 큰 화원을 하고 있는 집이라고. 몇 대 째.

그래서 그런거 아녜요?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버릴 수 없으니까. 원래는 뭐가 하고 싶었는데요?]


"원래, 원래라… 사실 지금은 그저 이 업을 등에 지기 싫어서 기필코 다른 직업을 찾으려고 했는지, 진짜 제가 원했던 게 맞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요. 저 수의학과 졸업했어요.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할아버지 가르침 속에 살다 보니, 식물 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귀히 여기게 됐거든요. 사람들을 살리는 일도 보람차고, 식물을 보듬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여러 동물을 아끼고 아픈 걸 치료해주는 일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양한 동물들과 살아갈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다 선택하게 되었고요.

물론, 졸업만 하고 한 번도 수의학 관련해서 일을 한 적은 없어요."


[그래요? 그럼, 해요! 하면 되지.]


"하하, 별씨 그런 말 할 줄 알았어요. 근데 전 안 돼요."


[왜요! 뭐가! 아니, 자격증 있다, 꽃집 운영할 정도로 솔직히 집안에 돈도 있다, 꽃집 잠깐 접어요!

그거 뭐 접는다고 큰 일이라고.]


"그러게요, 뭐 접는다고 큰일이라고. 근데, 그 꽃들은 저 없으면 안 되거든요."


[뭐래, 무슨 꽃들이 장한씨 왔어요- 하고 인사라도 해요? 난 너 없으면 죽어- 하고 협박이라도 했고요?"

네. 했어요. 매일 하더라고요. 매일 받고 있고요, 그 귀여운 협박.

솔직히 대답할 수 없는 장한이 그저 빙그레 미소짓는다. 대신 바락바락 대들고 화도 내는 눈 앞의 생기있는 여자가 왜 그동안 곁에 누군가 두는 걸 싫어했을까, 다시금 의문이 든다. 아차, 내가 또 길을 잃을 뻔 했다. 나는 내 마음 따위 터놓으려는 게 아니라, 이 여자가 함께 하는 행복을 되찾게 하려고 만난 거다. 장한이 별을 보고 의뭉스럽게 말을 던진다.


"그러니까 별씨. 저 좀 도와주세요. 제가 진정한 제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게."


[제가요?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말만 해요. 뭐 어쨌거나, 싫어한 데 데려갔던 제 불찰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 도와줄 수 있다면 제가 해드릴게요. 뭔데요?]


도륵도륵 눈을 굴리며 자신에게 뭘 원하냐고 묻는 여자에게 장한이 답한다.


"좋아해 주세요."

[느…느에? 뭐를…?그 혹시, 장한씨를…?]


갑자기 가까워진 둘의 간격이 신경쓰인다는 듯, 괜히 치마를 만지는 척 하며 별이 장한에게서 자연스럽게 옆으로 더 떨어진다. 그런 별을 보며 장한은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는 다시 덧붙이는 말.


함께하는 지금 이 시간을요.
다음에는 제가 아니어도 좋으니- 좋아해줄래요?
누군가와 같이 있는 기쁨, 오늘 느꼈으면 좋겠는데.

[어, 그, 그렇… 근데 그, 그게, 왜 장한씨를 돕는 건데요?]


홀린듯 대답하려던 별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장한을 빤히 쳐다본다.

이게 뭔 해괴망측한 소리냐.
자신이 누군가와 함께하는 걸 좋아하는 게 왜 장한이 인생을 똑바로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지?

말도 안 되는 말을 늘어놓는 소개팅남이 별은 이상하게 끌리기 시작한다. 독립출판물 작가라는 타이틀이 멋져서 그런가, 그건 아닌 것 같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남자가 자신의 취향이었던고- 알 수 없는 두근거림에 별이 괜히 머리를 왼 손으로 꼼지락 꼼지락 빗는다.


향이다.
마음의 향이다.
마음의 씨앗, 향이,
별에게도 풍겨오기 시작한다.

장한의 예민한 후각이 덜컹 흘러내리는 별의 찰나를 포착했다. 성공이다.

장한이 손뼉을 짝짝 치며 별을 바라본다. 대답 않는 남자와 궁금해 죽겠는 여자의 두근거림은- 한 쪽만인 걸까. 사실은 두 쪽 모두가 아닐까. 마주친 두 시선이 엉킨 채로- 두 사람은 얼마간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별씨같은 장기 손님이 꽃을 틔우는 게, 저희 꽃집의 사명이라서요.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룩한 사람은,
꽃집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가 주어지거든요.
왜냐고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그걸 제가 해내보려고 해요. 그래야 제가 진정 이 운명을 벗어날 수 있어요.
그래줄 수 있겠어요?


토해내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인 장한이지만, 그는 입을 합 다문 채로 지금 이 11월- 토요일 오후 벤치에서의 향을 추억하기로 한다. 아주 귀중한 향이 나기 시작했거든.


별의, 행복 씨앗 냄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을과 사랑, 장한과 별의 두 번째 데이트-낙엽과 설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