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이번 장르는 로코 4

(4) 겨울의 이번 겨울은, 뜨거워. 다 드라이기 때문이야

by 라화랑

4.


-만나기로 했단 말야, 그 사람. 보답으로.

울먹이는 목소리의 겨울이 머리를 말리다 갑자기 드라이기를 끄고 소리친다. 대답 없는 곡소리는 겨울의 자취방 화장실 안에 갇혔다. 너무 놀라서 토요일에 안 된다고 말을 못 했는데, 기재에게 다시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말을 걸면, 더 큰 마음이 돌아올 것만 같아서. 그리고 그런 마음은 자신이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래서 연구실에 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복도나 다른 교실에 갈라치면 어느새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공구를 한 손에 든 멀끔한 남자를 발견하고 화르륵 놀라 도망치곤 했다. 화장실로. 수업으로. 컴퓨터 안으로. 얇은 속쌍커풀이 잘 어울리는 강아지상의 그 남자는 생긴 것과 달리 박력이 넘쳤고- 자신감이 있었다.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서울의 대부분 학교 일을 전반적으로 도맡고 있다는 설명을 괜히 젊은 남자라고 말 붙이며 즐거워하는 교무부장님께 흘리며, 마침 지나가는 겨울과 눈이 마주치고는 보조개 짙게 웃기도 했다. 그럼 겨울은 무언가 잘못한 학생처럼 어깨를 움찔하며 지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오에게 보답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쓰던 수건을 정리하며 잠옷으로 갈아입은 겨울이 회상한 날은- 3일 전. 기재가 자신에게 고백해오기 하루 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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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선생님이면 학생이 안 다치게 잘 봐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무슨 학교에 몇 시간 있는다고 이만한 상처가 나는 걸 방지도 못해요? 선생님 그 때 어디 있었어요?


-그, 어머님. 일단 제가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니, 죄송하고 말고. 애 손에 이렇게 수포가 생길 때까지 뭘 하고 있었냐고. 참내. 공무원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내가 내는 세금으로 내 새끼 하나 못 지키는데 무슨 월급이고 뭐고, 허 참 나. 이게 말이면 단 줄 알아요? 애가 가질 마음의 상처는, 평생 안을 트라우마 생기면 어쩔 건데요!


아- 진상 걸렸네 또. 입으로 눈으로는 연신 죄송하다고 꾸벅이는 겨울을 웅성이며 같은 반 학생들이 걱정스레 지나친다. 어어 괜찮아, 너네는 영어 전담 시간이잖아. 선생님은 이런 진상 학부모 사실 많이 만나서 괜찮아. 아휴. 몇 번 죄송하다고 하고 넘어가지 뭐. …근데 수업 시간에 제 맘대로 돌아다닌 걔가 잘못한 건데. 언제 얘기를 꺼낸담.


학교 곳곳을 뜯어고치는 와중에, 겨울의 반 vip께서 사고를 치셨다. 수업 도중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하염 없이 돌아오지 않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복도에서 갑자기 왕왕 우는 소리가 들렸고 겨울은 직감했다.


아, 이 …. 또 사고쳤다 이거. 망할.


뛰쳐나간 겨울이 본 장면은, 제 멋대로 돌아가는 드라이버와 이름도 모를 어떤 도구. 그리고 그 옆에서 주저앉아 자신의 왼 손을 붙들고 아프다며 울고 있는 3학년 겨울의 반 vip 학생 강하율과 어이가 없다는 듯 아이를 쏘아보는 그 남자. 무슨 일이냐 건오에게 대충 상황을 전달받은 겨울이 보건실에 하율을 보내고, 학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이러저러하니 좀 데리러 오시라고. 병원에 데려가셔야 할 것 같다며.


학교에서 누구의 말도 안 듣는 걸로 유명한 하율이 말도 안 되게 얌전해지는 때가 있다면, 그건 자신의 엄마 옆.

그리고 그럴 때면 자신은 아무 일도 제 탓이 아니라며 다 남의 탓이라고 일단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고는 했다. 그런 하율의 말을 또 철썩같이 믿는 그의 엄마는, 겨울을 피곤하게 하는 진상 학부모였다. 불과 이틀 전에는 제 맘에 안드는 짝이 걸렸다며 밤 9시에 전화를 걸어 교사가 학생의 마음을 몰라줘도 되냐며 난리를 쳤던 사람이다.


겨울은 이번 일로 더럽고 치사하지만 하율의 짝을 바꿔줘야 할 지도 모르겠다며, 일단 고개를 숙이고 봤다.

또라이는 진정시켜야지. 내가 피해보기 전에. 어차피 말도 안 통하는데, 설명해 봤자 뭐하냐. 아휴.


오늘 일 끝나면 술이나 마셔야 겠다는 속마음을 뒤로 숨긴 채 겨울은 30분째 폭언을 쏟아내는 하율의 어머님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율은 그 옆에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정말 모른다는 듯- 자신을 놔둔 겨울이 잘못한 게 확실하다는 듯, 눈을 치켜뜨고 엄마에게 매달려 있었다. 겨울은 10살짜리 아이가 얄밉다는 생각을 하율을 통해 자꾸만 하고 있었다.


그 때, 난데없이 끼어드는 낮은 목소리. 단호하지만 힘있는, 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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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야. 나야말로 트라우마 생기겠구만. 아줌마 잘 걸렸네. 나랑 얘기 좀 하지? 아줌마가 걔 엄마야? 걔 못 쓰겠던데.

이건 무슨 황당한 소리냐며 하율의 엄마가 목소리의 주인을 눈으로 찾는다. 겨울이 알고 있는 목소리다. 이건,


-아줌마. 걔 내가 일하는 데 내 손에 있던 거 뺏었어. 오지 말라고 몇 번을 소리를 질러도 메롱메롱 나는 선생님 말도 안 듣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어쩔티비 저쩔티비? 하던데. 애 그렇게 키워도 안 부끄럽나? 소리는 담임선생님이 아줌마한테 질러야겠는데. 죄송할 건 아줌마 아냐? 제 자식 개똥으로 키워놓고 어디다 헛소리야.


건오다. 아연실색한 겨울이 무슨 말씀 하시냐며 건오의 팔목을 파리하게 잡지만, 건오은 겨울의 손을 뿌리치며 아직 안 끝났다는 듯 말을 더한다.


-내 장비 망가진 거, 쟤 때문이니까 변상해. 쟤가 만져서 망가뜨린 거 200만원짜리야. 아줌마, 번호 줘. 짜증나게 진짜. Cctv 돌려보면 알 거니까 그런 줄 알고. 개같네 아오 진짜. 야 그리고 너, 이름 뭐라고? 어쩔티빈지 저쩔티빈지 너 사과해 새끼야. 난 어리다고 안 봐준다.


하율의 엄마가 뭐 저런 싸가지 없는 어린 남자가 다 있냐며 화를 내려다가 200만원이라는 소리에 모든 동작이 멈춘다. 하율은 자신에게 막 대하는 젊은 남자 어른이 처음인지,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너, 내가 사과하면 200만원 없던 일로 해 준다. 나랑 니네 담임선생님이랑 엄마한테도 해 이 새끼야. 너 때문에 이게 무슨 돈 낭비 시간 낭비 감정 낭비야. 버르장머리 없어가지고. 할 거야 말 거야.


모두가 입을 다물고 무슨 상황인가 싶을 찰나, 죄송하다는 하율의 목소리와 단호한 겨울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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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아동한테 그렇게 욕설 하시면 안 됩니다. 협박도 안 되고요. 명백한 아동학대이니 그만하시죠.


-그… 죄송합니다! 진짜!

제가 너무 궁금해서 그랬어요! 그러니까 제발, 으엥, 후엥, 죄송해요 다…! 엄마아아, 나 어떡해, 나 잘못했오요, 선생님, 마음대로, 히끅, 막, 돌아다녀서, 죄송해요오


그제서야 수그러진 하율의 엄마는 그렇다면 그렇다고 빨리 설명하지 그랬냐며 끝까지 겨울의 탓으로 모든 걸 돌리고는 건오의 눈치를 슬쩍 보다 하율을 데리고 병원으로 도망갔다. 끝에는 허공에 뿌리는 혼잣말도 함께.


-그, 진짜 200만원은 없던 일로 하는 걸로. 아이가 한 실수니까 좀 봐 줘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는 겨울은 모든 상황이 끝나고서야 건오를 제대로 쳐다볼 수 있었다.


-난 선생이 쉬운 건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가보다? 저런 진상, 매일 있냐? 근데 너, 괜찮냐?


자신에게 조심스레 손을 뻗어 헝클어진 옆머리를 정돈해주는 남자의 손이, 겨울은 이상하게 크고 따뜻했다. 하지만 자신은 교사이니까, 여긴 직장이니까 초등학교 교사로써 해야 하는 말을 해야겠…

-너, 통쾌했지.


건오의 난데없는 반말은 겨울에게도 예외가 없고, 불쑥 찾아든 말또한 겨울을 쿡 찔러버렸다. 엇, 들켰다. 사실 저 어머님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는 뒷모습에서 본인도 모를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던 게 티가 나고 말았나 보다며 겨울이 입을 합 다물었다.


-그게, 아니고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랑 만나. 토요일. 너 내 연락 일부러 안 받는 거지.


건오의 모든 말이 소화되지 않는다. 훅 들어오는 건오의 모든 마음은 겨울의 죄책감을 제대로 저격했다. 얼빠진 겨울의 영혼이 벌려진 입으로 빠져나가는 새- 건오는 이미 주말 약속까지 야무지게 내뱉었다. 그리고는 겨울의 왼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을 훅 채가더니 자신의 카카오톡 메세지 차단을 해제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황망한 겨울의 손에 당당하게 그녀의 핸드폰을 복귀시켰다.


-연락, 받아. 안 잡아먹을 테니까.
-토요일, 저녁 6시, 지난 번에 봤던 그 맥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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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다. 지금도 뜨거워.
아, 뜨거운 건 내가 아니고 드라이기 바람 때문이야. 새로 산 드라이기 성능이 좋네. 그래서 내 뺨이 뜨거운 거야.


…겨울의 금요일 밤, 겨울은 자취방에서 빨간 뺨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린다.


누구 탓일까.

드라이기는 제 탓이 아닌 걸 알 텐데.




인물 사진 출처: 배인혁 인스타그램(@inhyuk__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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