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이번 장르는 로코 9

(9) 겨울의 남자 주인공은, 당신이 되어주세요!

by 라화랑

9.


-이건오씨, 잠깐 시간 되세요?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해서요.


-네네, 됩니다. 빨리도 왔네.



건오가 겨울을 보고 빈정거리면서도 쉬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킨다. 그리고는 어디로 갈까 묻는다. 주변 건오의 동료들이 무슨 일이냐며 멀뚱멀뚱 둘을 쳐다보고, 겨울은 머쓱하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공연한 인사치레 몇 번 끝에 건오를 제 교실로 데려온다.

KakaoTalk_20240111_184632396_08.jpg


-조용히 얘기할 데가 없어서, 이해해 줄거죠? 학교가 좀 그래요. 복도나 교무실에서 얘기하다보면- 다음날 어디서 한 숨 쉬었는지 템포조차 모조리 소문 나 있더라고요.


-아, 네에네에- 선생님. 그래서. 너 할 말이 뭔데.

툴툴거리는 건오가 바라는 바는 명확하다. 겨울이 확실히 모든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처럼 감정에 솔직한 채로 마음을 여는 것. 복잡한 미래에 대한 의심 혹은 걱정 말고,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오늘에 충실하여 사랑에 ‘빠지는 것.’ 그것이 건오가 내린 사랑의 정의였다. 사랑은 빠지고 이끌리는 대로 행하는 것임을- 그녀도 얼른 깨닫기를 바란다.
[책에 파묻히지 말고, 그런 거나 몸으로 배우란 말야. 이건 본능의 영역이라고.]


자신이 모르는 남자와 겨울이 노닥거린 장면이 떠올라 더욱 툴툴거리는 건오에게, 그녀가 말한다.


-건오님. 건오님은 저랑 대화하면서 잘 통한다고 느꼈던 적 있어요? 아니면, 저한테 인생의 고민을 얘기하고 싶었던 적은요?


-뭐? 무슨… 너, 벌써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야.

니가 그걸 물어봤다는 거 자체가, 너가 나랑 말이 안 통한다고 벌써 판단해버린 거 아니냐?

너 또 시작이지. 너 혼자 판단하고 생각하는 거. 내가 그러지 말랬지.

내가 학생도 아니고 자꾸 니가 왜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통할지 말지 결정하는 건데.



-이것 봐요. 건오씨가 하는 말 다 맞아요. 저 혼자 판단하고- 저 혼자 생각해요. 그래서 옆 사람은, 답답하거나 열받을 수 있겠죠. 화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요, 전 인간은 모름지기 다 자기만의 판단과 생각, 자기 주관대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는 비이성적이고 답답할지라도, 그런 주체적이고 개인적인 생각들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게 제가 가진 인간상입니다. 근데- 건오님과 함께 할 때 저는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게 이해가 가질 않아요.
물론 덕분에 즐겁게 한 경험들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스스로의 틀을 깨도록 도와주신 것들, 사랑이라고 생각할 때 있었습니다. 떨리고 신나는 게 사랑이라면, 제가 빠지는 게 사랑이었다면 저는 건오님이 더 좋아졌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더 건오님과 그런 감정 그만 하고 싶어요. 저는 제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이 중요한 사람이라서요. 그런 자신에게서 스스로의 자신감을 느끼기 때문에- 제 장점을 죽이고 건오님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싫다는 말을 빙빙 돌려서도 하네. 개같게. 간다.

나도 나 싫다는 여자는 싫다.

너 그리고, 다음은 없다. 난 절대 안 잡아. 알지, 내 성격?


건오가 신경질적으로 문을 쾅 열고 닫지 않은 채로 사라진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뒤돌아보지도 않는다. 자신이 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겨울은 건오라면 자신과 같이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더 가질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건오와는 별개로- 자신은 자꾸 자유라는 건오의 틀 안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 이유는 건오가 자신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잘못된 점을 고쳐야 한다며 이리저리 생각한 뒤에 판단하지 못하도록 정신없이 혼을 쏙 빼앗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지 말라고 꼬드기는 아무리 높은 자극이 다가와도 끝끝내 본인만의 판단과 생각은 없앨 수 없는 것임을 또한 깨닫고 말았다.

겨울은 건오 옆에서 겨울일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느낀 즐거움과 행복감 또한 곧 사라질 신기루일 뿐인 걸.
KakaoTalk_20240111_180255013_02.jpg


겨울은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곧 열린 교실 문으로 기재가 황급히 뛰어 들어온다.

- 임겨울, 너 괜찮아? 무슨 일이야!

그러고는 어안이 벙벙한 겨울의 양 어깨를 붙들고 요리 조리 앞뒤 모든 곳을 살핀다.


-뭐야, 왜 이래. 오빠야말로 무슨 일 있는 거야? 왜그래?


-방금 그, 그 놈 있잖아. 그 너 좋아하는 이상한 놈. 걔가 복도 지나가면서 네 욕을 중얼중얼 거리고 있고, 네 교실밖에 없는 쪽에서 쿵쾅거리면서 나오는 걸 봤으니까. 걔가 너한테 혹시 무슨 해코지 했나 하고. 뭐야,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는 거지? 어디 때렸어? 너 맞은 거 아니지?


겨울이 웃는다. 파항항 웃다가 뭐야아, 진짜 웃겨를 연발하며 숨이 안 쉬어질 때까지 웃는다. 기재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가도 웃는 모습에 안심이 된 듯 가슴을 쓸어내린다. 별 일 아닌가보네, 난 또. 겨울의 웃음기가 사그라들지 않자, 너 왜 웃냐며 콕콕 찌르며 자신도 모르게 함께 웃어버린다. 그렇게 두 사람이 너 왜 웃어, 아 오빠가 웃잖아, 아니 니가 먼저 웃었잖아- 하고 웃음 실랑이를 한바탕 하고 있자, 문이 열린 교실 사이로 새어나간 소리에 옆 반 선생님이 자연스레 겨울의 교실에 입장한다.


- 니네- 뭐야. 왜 웃어? 같이 좀 웃자. 자기들끼리 커피 타임 하기야? 젊은이들은 자기들끼리만 모이는거야? 늙은이가 주책 없이 끼어 달라고 들어온 거 아니지?


둘 다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럴 바에 오늘은 저희 교실에서 동학년 커피 타임 어떠시냐며 겨울이 커피 포트에 물을 뜨러 간다. 그러면서 기재에게 물 한 통으로는 안 될 것 같으니, 연구실에 가서 커피 포트를 하나 더 가져 오자고 말하고는 복도로 데려 나온다.


-오빠.

-응?


뜨거운 물을 정수기에서 받아 조심히 들고가는 두 사람. 둘 중 무거운 커피 포트를 자연스레 자신의 손으로 옮겨 걷고 있는 기재에게 겨울이 다가간다.

마음이 가벼운 사람에게, 손도 가볍게 하다니. 그렇다면 겨울은 …


-너, 너 이거 뭐야. 어? 뭔데?


-음, 대답?

-어? 무슨 대답? 아…아니, 아ㅣ..아니야. 그 나 한…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해줘, 아니 두 번만!


-안 돼. 학교니까.



입술도 가벼워서 그만, 다른 사람에게 닿을 수 밖에 없었는 걸.

기재의 왼쪽 뺨에 입술을 가볍게 붙였다 뗀 겨울을 보고 기재가 멈춰섰다. 쓰읍- 조용히 하고 따라 오시지요. 하는 겨울에게 뒤늦게 따라붙으며 그럼 학교가 아니면 해줄 거냐는 말을 횡설수설 내뱉는다. 그런 둘을 겨울의 교실에 모인 다른 동학년 선생님들이 얼른 물 가지고 오라며 보채고, 기재는 싱긋 웃는 겨울을 보고 결국에 따라 웃어버린다.


겨울에게 사랑은 빠지는 게 아니라, 삶이다.
KakaoTalk_20231022_190338257_03.jpg


자신이 연인이 필요 없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친구들과 가족들을 사랑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과 끊임 없는 말과 생각의 교류를 불러 일으키면서도 자신만을 위해 다정한 한 사람을 알게 된 이상, 그 너머의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된 이상, 겨울은 연인과의 사랑을 하기로 했다.


사랑은 충분히 생각하고, 더 생각한 뒤에도, 많은 단점과 걱정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삶의 방향이다.
겨울이 결론내린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의 끝에는



-뭐, 학교가 아니라면 해주고 싶어질 지도.

아, 그리고 하나 더. 그, 오빠 나랑 사귀어 줘. 그래 줄 거지?


…임겨울이 거진 모태솔로인 줄 알았는데, 그저 힘을 숨긴 초고수였다며 입을 떡 벌리고 서 있는 기재가 있었다. 기재는 앞으로의 시간에 자신의 건강이 염려되기 시작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빨리 뛰어서 죽는 병이 없는가 검색해봐야겠어.


드디어 임겨울이 허락한, 함께하는 시간에 사랑으로 병이 걸리거나 아프면 안 되니까.

사랑만 해도 아까운 시간- 템포는 달라도 가는 방향은 같은 두 사람이 함께 겨울의 교실 안에 들어선다.



end

그리고 그들에게는 시작일, 어떤 시간.

늘 이야기의 끝은, 다른 삶으로의 시작임을 알고 있기에, 끝나지 않을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하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겨울의 이번 장르는 로코 에필로그 및 작가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