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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칸스 Aug 29. 2021

뿌리 속 인생

이보다 더한 밑바닥이 있을까 싶지만, 나에게 찾아오는 환경은 이보다 더한 밑바닥이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데, 그 이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인생은 참으로 잔인하게도 인간이하의 삶을 제안한다. 



나를 잃지 않고자, 나의 신념을 지켜내고자 안간힘을 다 쓰지만, 내 눈앞에 들이닥친 현실은 '너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그깟 신념이 뭐가 그리 중요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리고도 당당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네가 그것을 지킨다고 누가 알아줘. 소수의 사람들은 알아주겠지. 하지만 세상은 네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거들떠보지도 않아. 비웃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니 다 버리고 막장으로 살아. 이리 살든 저리 살든 어차피 죽는 건 다 똑같아. 뭘 그리 애쓰면서 살려 그래. 바보 같이'라는 말로 내가 어떻게 버티고 있건 간에 최선을 다해 끌어내린다.



환경이라는 존재는 나를 계속 끌어내리고, 가장 가까운 이들은 나를 아프게 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나의 삶을 나누자니 나의 삶은 수억 명의 사람들을 감당하고 있는 지구의 무게와 같고, 주변인들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바쁘다. 각자의 무게를 지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찌 맘 편히 나의 무게를 나누어줄 수 있을까. 



무게에 짓눌려 생애 처음 경험해보는 나무의 뿌리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고, 헤쳐나갈 방법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맨손으로 온 힘을 다해 땅굴을 파고 나만의 보금자리를 만들었을 때조차 날카로운 이빨과 흑색 바탕의 존재들과 수백 개의 다리가 달린 정체들이 자유롭게 나를 덮친다. 그들을 피해 남아나지 않는 손톱으로 계속 땅굴을 파다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나, 사람들의 짓밟힘으로 다시 땅굴로 들어가게 되고, 반대의 길로 탐험을 하게 되나 맞이하게 되는 세상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언어와 문화와 인간이다. 그들은 적어도 나를 짓밟지는 않으나 신기한 눈으로 다른 생명체인 것처럼 취급한다. 나의 세상에서는 발로 짓밟히나, 반대의 세상에서는 눈으로 짓밟힌다. 



언제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세상에 나와 살아갈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나 나에게는 소중한 인생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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