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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Aug 19. 2021

알면 사랑할 수밖에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고말고


윤리 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 제목에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아바매글 독서모임 책으로 이미 선정된 것을. 그 유명한 최재천 교수님 책이니 한 번 믿어볼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마치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심정으로 천천히 읽어갔다. 그야말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유익한 교양 다큐 느낌의 책이었다. 그동안 몰랐던 동식물 행동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 우리는 너무 인간인지라, 인간 세계에만 몰두한다. 다른 종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을 취한 기분이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는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하버드대학 박사이신 최재천 교수가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출간된 지 20년이나 지난 만큼 지금 현실 상황과는 맞지 않는 내용도 가끔 보였다. (가령 청계천을 복개하면 얼마나 많은 쥐가 나올까, 하는)



크게 4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 알면 사랑한다
2장. 동물 속에 인간이 보인다
3장. 생명,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4장.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다



각 장은 14-15개 짧은 꼭지로 이뤄져 있으며, 한 꼭지에서 한 동물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동물들은 모두가 서정시인'이라는 꼭지에는 매미, 귀뚜라미, 여치, 베짱이, 개구리, 맹꽁이, 두꺼비, 나방이 등장한다. 4-5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짧은 꼭지에서 다양한 동물을 다루다 보니 한 단락이면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동물도 있었다. 몰입할라치면 끝나버리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왜냐하면 그만큼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귀뚜라미, 베짱이는 각각 날개 표면, 뒷다리 안쪽에 난 작은 돌기를 문질러 소리를 내니 현악기, 매미는 공명기를 울리니 타악기, 개구리, 맹꽁이, 두꺼비는 소리주머니 가득 공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니 관악기에 비유했다. 최재천 교수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사실을 알고 비유할 수 있을까.


아쉬운 점은 더 있었다. 그동안 기고했던 내용을 끌어모아 만든 책이라서일까, 형식이 정형화돼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론에서는 요즘 세태에 대한 단상이나 의견으로 글을 열고, 본론은 그와 관계된 동물들의 독특한 행동 등을 설명하고 의미를 풀어낸다. 결론은 인간 세상과 결부하여 반성이나 교훈, 염려로 마무리된다. 본론에서 나오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는데 결론은 진부했다는 이야기.


이는 저자도 수긍했다. 서문에서 "언론매체에 담았던 것들이라 제 글들은 종종 시사성을 띱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동물들도 그런데 우리도 이래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이른바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라고 고백한다. 굉장히 솔직하고 친절하고 겸손한 서문이다. 나는 이 서문을 읽은 덕에 이 책을 끝까지 참고 읽을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을 늘어놓았지만 그럼에도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한다.


이 책의 매력은 형식적으로 끌어낸 교훈에 있지 않다. 최재천 교수가 평생에 걸쳐 연구를 통해 얻어낸 방대하고 귀한 생물 지식을 가독성 좋은 글로 풀어내었고 그저 꿀떡! 받아먹기만 하면 되니, 이토록 후한 인심이 또 어딨을까 싶다.


무심히 넘겼던 동물 세계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기회였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기생충이 갈매기 뱃속에 들어가려고 달팽이를 조종한다는 사실을, 꽃이 수컷이었다가 암컷이 된다는 사실을, 흡혈박쥐가 동료에게 피를 나눠준다는 사실, 바람둥이 제비족과는 달리 수컷 제비는 매우 헌신적인 남편이라는 사실을 평생에 알 일이 있느냔 말이다.


새끼가 일단 따라다닐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 어미 새는 곧바로 먹이 잡는 법을 가르친다.

보슬비가 내리는 어느 봄날, 앞서거니 뒤서거니 풀밭을 거니는 어미 새와 새끼 새를 눈여겨보라. 풀잎 사이로 지렁이 굴을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며 앞서가는 어미 새의 뒤를 자기도 열심히 고개를 까닥이며 좇아가는 새끼 새. 어미 새가 풀숲에 고개를 막고 지렁이 한 마리를 끌어올리면 새끼 새도 어딘가 고개를 처박는다. 처음에는 번번이 허탕이지만 새끼는 그 지루한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배워야 산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중


☞ 한 편의 자연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
    사랑스럽지 않은가!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고난 후의 나는 달라졌다. 그가 말하는 '알면 더 사랑하게 된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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