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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an 11. 2023

운동 유랑자의 플라잉 요가 체험기

금강불괴가 되는 법


나는 결국 필라테스를 버렸다. 아니 필라테스에게 버려졌다. 내 틀어진 체형을 바로잡고 하찮은 코어 근육을 키우는 데 그만한 운동이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지만 ‘재미 추구 성취지향형’ 인간에게는 너무나 가혹했다. 필라테스는 혀를 끌끌 차며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조금만 더 하면 재미를 느꼈을 텐데 나약한 인간 같으니라고’.     


운동을 꾸준히 하려면 조건이 있다. 일단 장소가 가까워야 한다. 갈아타지 않더라도 차를 타야 면 이런저런 핑계를 되며 열 번 가게 될 것을 다섯 번만 가게 될 테니까. 고로 운동 장소는 도보 15분 거리 내에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지나치게 땀이 많이 나서 아토피성 피부에 자극이 되면 안 된다. 만삭의 산모처럼 가슴보다 더 나온 배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복싱 다이어트를 알아본 적이 있다. 줄줄 흘러내리는 땀이 복부 노폐물(이라 믿고 싶음)을 싹 빼줄 거 같았지만 아쉬탕가를 하다가 어깨에서 진물을 쏟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재밌어야 한다.    


그렇다면 돌고 돌아 다시 요가인가. 도보 3분 거리의 요가원이 ‘나 아직 여기 있어요’ 하며 손을 흔들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셀프 수련을 하겠다며 그만둔 지 어느덧 3년이 다 되어갔다. 한동안은 아침마다 거실에 요가 매트를 깔고 TV에 유튜브를 연결해 ‘서리요가’, ‘에일린요가’를 따라 하며 꾸준히 훈련하기도 했다. 그동안 수련해 익숙한 빈야사 동작은 혼자서 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홈 요가를 하고 나면 개운하고 뿌듯했지만 아쉬운 점은 분명했다. 함께 하는 사람들 간의 에너지 교환이 없다는 사실. 매일 아침 10시가 되면 출근하듯 눈도장을 찍었던 원장님, 강사님들도 그리웠다.      


요가원 블로그에 들어가 살펴보니 매트 요가와 플라잉 요가를 섞어서 하는 멀티회원권이 있었다. 플라잉 요가는 천장에 걸린 해먹에 몸을 의지한 채 다양한 동작을 만들어내는 고난도 요가다. 천에 다리나 팔을 감아 매달려있는 모습은 요정처럼 우아해 보이기도 고 서커스 동작처럼 아슬아슬하게도 느껴졌다. 예전에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주리를 틀며 고문 당하는 대역 죄인의 고통을 체감하며 기겁하고 포기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고질병이었던 허리 통증도 복강경 수술 후 좀 나아졌고, 필라테스를 하면서 예전보다는 코어 근육이 생겼으니...라는 생각은 해먹에 매달린 지 5분도 안 돼 ‘인간의 기억력은 형편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외침으로 바뀌었다.      


첫 번째 당황스러움은 인버전에서 왔다. 허리와 엉덩이 사이 부분인 천골을 해먹에 걸치고 ‘헥가닥!’ 뒤집어 원숭이처럼 거꾸로 매달리는 자세다. 피꺼솟이라는 단어를 몸으로 표현한 자세라고 할까. 생각보다 꽤 오래, 체감상 5분 이상이었는데 새끼발가락에 있던 피까지 모두 영끌해 얼굴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얼굴은 새빨개지고 머리는 핑 돌았으며 도대체 언제 다시 일어서는 걸까, 이러다 기절하는 게 아닐까 하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음은 공포의 다빈치 자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 비례도를 떠올리면 된다. 해먹으로 양 사타구니를 휘감은 채 공중에 매달려야 한다.(두 번 휘감으면 그 높이와 공포는 열 배가 된다) 역시나 5초, 아니 3초도 참지 못할 고통에 나는 몸부림쳤다. “으아아아아! 아파! 아파! 아파!” 나의 터져 나오는 육성에 강사님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영님 많이 아프시죠? 아직 적응 기간이라 그래요. 우리 몸에 림프절이 지나가는 부분이라 노폐물이 많으면 더 그럴 수 있는데 저는 마라탕같이 염분 많은 음식을 먹으면 아직도 통증이 심하더라고요. 블라블라.. ”     


나는 얼른 동작을 끝내고 내려오길 바랐는데 선생님의 일장연설은 끝날 줄 몰랐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마라탕 안 먹을게요.(설마) 알았으니까 제발 내려가자고요. 도저히 못 참겠다!’ 나는 버티지 못하고 초인의 힘으로 혼자 뒤집어서 내려오고 말았다. 전속력으로 100미터 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숨이 차올랐다. 고요한 요가원 내부는 나의 야릇한 숨소리로 가득 찼다. ‘아니, 왜 내 숨소리만 들리는 거지, 다들 괜찮으세요?’ 나는 고개를 들어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다른 회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미간 주름 하나 구겨지지 않은 평온, 그 자체였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금강불괴라도 되는 걸까.     


(나 혼자) 요란법석했던 수련을 마치고 부끄러운 얼굴로 강사님께 물었다. “선생님, 저만 아픈가 봐요. 저는 진짜 5초도 못 견딜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워요. 저 빼고 다 평화로워 보여요.”     


선생님은 사람마다 통증을 느끼는 정도가 다 다르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금방 적응하는 사람은 일 이주 만에도 괜찮고 좀 오래 걸리는 사람은 석 달까지도 통증이 심하다고 했다. 석 달, 믿을 수 없었다. ‘정말 석 달만 버티면 통증을 못 느낀다고? 어떻게 똑같은 동작을 하는데 그 통증이 사라진다는 거지?’ 나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 딱 석 달만 버텨보자. 끝이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버티는 힘이 된다.      


주 3회 석 달을 채우고자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플라잉 요가 수련을 시작했다. 어쨌든 버텨야 하니 살 궁리를 찾아야 했는데 나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은 ‘고통을 무시한다’였다. 고차원적(?)인 이야기인데 고통이 지금 여기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내 허벅지를 조이고 핍박하고 절단하려는 그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들이 아무리 날 조여봐라 내 튼실한 허벅지가 잘라지나. 나는 아무것도 못 느낀다. 나는 금강불괴니라. 심호흡하며 먼 산을 바라보면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게 된다. ‘것봐 내가 이겼지?’ 스르르 풀리는 해먹과 함께 온몸은 천국에 온 듯 상쾌해졌다.


어렸을 적 했던 ‘전기놀이’와 비슷한 느낌이다. 짝꿍에게 손을 내밀어 보라 한 다음 온 힘을 다해 손목을 잡는다. 병뚜껑 따듯 다섯 손가락 끝을 손톱으로 젖히고 나이만큼 잼잼 하라고 시킨다. 손바닥이 노래질 때까지 탁탁 때려준 후 ‘호~’ 불며 검지 손가락으로 손바닥 위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손목을 스르르 놓아준다. 손목에 막혀있던 혈액이 병목 현상이 해소되는 도로처럼 손바닥으로 퍼지면서 짜릿하면서 시원한 느낌. 그것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게 바로 플라잉 요가의 매력이었다. 어찌나 시원한지, 아픈 만큼 성숙하는 게 아니라 아픈 만큼 시원하다.     


마침내 기다려온 3개월 차. 나는 우아하게 양다리를 찢어 다빈치 자세로 공중에 매달렸다. 플라잉 요가를 처음 해본다는 신입들의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나는 최대한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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