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개 오후에 컨디션이 좋다. 잠을 푹 잤더라도 아침 시간에는 보통 몽롱하고, 커피를 마시고도 한 시간 정도는 지나서야 머리가 맑아지는 편이다. 센 불에 파르르 끓는 라면이 아니라, 약 불에 천천히 퍼지는 죽 같은 사람이랄까. 예전에 회사에 다녔을 때는 오전 중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거나 회의가 있을 때마다 고역이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내게 맞는 리듬에 맞춰 생활하니 몸도 편하고 능률도 오른다.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독서에 집중이 잘 되는 환경이 다르다. 좋아하는 책의 종류나, 읽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니 남들이 아침에 책을 읽는다고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각자 주어진 체력과 집중력에 맞춰 자신의 독서 스타일을 찾으면 책 읽기가 한결 수월하고 즐겁지 않을까. 그러려면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를 시도해 보고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억력이 좋지 않다면 독서 일지를 만들어 책 제목, 시간, 장소 등 독서 환경과 기분을 기록해 두면 더 좋을 것이다.
오전/ 오후: 독서 황금 시간대를 찾아라
독서는 고차원적인 두뇌 활동이므로 컨디션이 좋고 집중력이 높은 시간에 하는 게 좋다. 나는 아침 독서는 잘하지 않는 편이다. 아침 일찍 책을 읽고 의욕적으로 하루를 열고 싶었지만, 현실은 하품을 줄기차게 하다가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시간대를 오후로 바꾸니 한결 나았다.
해가 뜨기도 전에 눈이 떠지는 ‘종달새 유형’이라면 출근 전 30분 정도 독서에 투자하면 어떨까. 주 5일, 30분씩이면 무려 10시간 동안 책을 읽을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인데 ‘올빼미 유형’이라면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지는 출근길보다는 퇴근길에 책을 꺼내는 게 현명하다. 물론, 출퇴근길 모두 책을 읽으면 가장 좋겠지만 말이다.
아침에 독서를 하면 하루를 뿌듯하게 시작하고 독서의 여운을 온종일 느낄 수 있겠다. 반면, 저녁에 책을 읽으면 하루를 정리하고 완성하는 느낌이 들어 만족스럽다.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매체에 따라 달라지는 독서 경험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은 보통 종이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한다. 새 책에서 풍기는 잉크나 접착제 냄새, 오래된 책에서 나는 쿰쿰한 나무 냄새가 감각적인 즐거움을 더한다. 책을 상징하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표지, 페이지를 넘길 때 나는 ‘사락사락’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 종이의 질감도 독서 경험의 일부다. 편하게 밑줄을 긋고 메모하며 읽기에는 종이책이 가장 편하다.
가방이 무거운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거나 이동이 잦은 사람에게는 휴대성이 좋은 전자책이 더 매력적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바로 접속할 수 있고, 가방에 쏙 들어가는 사이즈의 전자책 리더기들도 잘 나와 있으니 취향대로 고르는 맛이 있다. 하이라이트나 메모 기능도 있어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능동적인 독서가 가능하다.
진득하게 앉아 있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다른 일을 하면서 오디오북 독서를 곁들이는 것도 방법이다. 밀도 높은 독서는 아니겠지만 책을 붙잡고 있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대개 독서가들은 책을 며칠 손에서 놓으면 불안해하므로). 실감 나게 읽어주는 성우의 목소리를 즐기는 것 또한 오디오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혼자서/ 함께: 따로 또 같이 즐기는 책
독서는 오롯이 혼자서 하는 행위다. 복잡한 현실을 잠시 잊고 고요하게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독서의 참된 기쁨이지만, 혼자서 읽고 끝내는 게 아쉬울 때도 있다.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궁금하고, 그 반대더라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이 책 나만 별로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혹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같은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더 힘이 나고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다.특히 독서 습관이 아직 자리 잡히지 않은 초보는 책 한 권을 완독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마감이 있는 책 모임에 들어가서 같이 읽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집에서/ 밖에서:몰입이 잘 되는 공간은 따로 있다
책이 잘 안 읽힌다면 공간을 바꿔보는 것도 방법이다. 언제든지 누울 수 있는 편안한 내 집에서 읽기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백색소음이 들리는 카페나 낯선 공간에서 몰입이 잘 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약간의 소음이 있으면 집중이 더 잘 되는 편이라 카페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카페 내 공기에 은은하게 떠도는 커피 향은 그 어떤 방향제보다 향기롭다.
하지만 목소리가 큰 사람이 들어올 가능성과 커피값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카페 분위기를 낸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이려면 적지 않는 비용이 들지만, 매일 카페에 가서 쓰는 커피값을 아낀다고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합리적이다.
집안에서도 책장이 있는 내 방, 혹은 거실 테이블, 소파 위, 침대 중 어디가 가장 나은지 테스트도 해본다. 몰입이 잘 되는 곳을 주 독서 공간으로 삼고 질릴 때쯤 또 다른 공간에 가서 기분 전환하면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공원이나 야외 수영장처럼 탁 트인 곳에서도 독서를 시도해 보자. 상쾌한 자연 속에서 책을 읽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데 ‘독서를 하면 기분이 좋다’는 일종의 조건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더 자주 책을 읽게 된다.
순차식/ 병렬식: J와 P의 독서법
예전에는 책은 무조건 한 권을 다 읽고 나서야 다음 책을 읽어야 하는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읽고 싶은 책이 자꾸 쌓이다 보니 그게 잘 안 되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아예 놓지는 않되,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병렬식 독서로 바뀌었다.
한 가지 규칙이라면, 소설은 되도록 여러 권을 동시에 읽지 않는다. 내용이 섞여서 혼동이 오는 경우를 겪고 나서부터다. 비문학 책은 관련이 있는 것끼리 함께 읽으면 더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문해력’과 관련된 책은 ‘뇌과학’ 책과 같이 읽는다. 그러면 문해력이 키워지는 과정을 뇌과학적 근거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병렬식으로 읽다 보면 단점도 있는데, 완독이 잘 안 되는 것이다. 특히 소설 같은 경우 너무 읽는 기간이 늘어지면 내용을 잊어버리게 되고 다시 읽기가 귀찮아서 방치하다가 결국 끝마치지 못한다.
위에서 언급한 방식들 중에서 꼭 한 가지 방향으로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쪽이 자신과 더 잘 맞는지를 알고 있으면 적절하게 섞어서 활용하면서 지루하거나 어려운 독서를 극복하는 힘이 된다. 무엇이 됐건 ‘나를 알면’ 일이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