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남자아이 얼굴이 걱정과 불안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내가 앉기도 전에 묻는다. “선생님, 질문 있어요.” “그래? 뭔데?” 아이의 흔들리는 눈빛이 내게 전달되어 슬픔과 고민이 느껴졌다. 최대한 따뜻하게 말하며 아이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음……, 저희 영어학원에서는 가짜 돈이 있거든요. 시험을 잘 보거나 미션을 수행하면 선생님이 돈을 줘요. 그것으로 학원 마켓에서 물건을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저랑 친한 친구가 얼마 전에 제게 10달러를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일 준다고 하고 까먹었거든요. 그 친구를 학교에서 마주쳤는데 절 보자마자 10달러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없으니 다음에 준다고 했어요. 그리고는 학원에서 마주쳐서 제가 10달러를 줬는데 15달러를 더 달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제가 잊고 있다가 오늘 마주쳤는데 돈을 달라고 해서 엉겁결에 내일 준다고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숨에 상황을 설명하는 아이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간절하게 내 대답을 기다리며 나를 바라봤다. “글쎄,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모르겠어요.” “부모님께 말씀드렸어?” “네, 아빠는 주지 말라고 하셨어요. 엄마는 제가 결정하라고 하셨어요.” “그래?, 그 친구는 어떤 친구야?” “저랑 정말 친한 친구예요.”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자주 만나게 되는구나, 그렇지?” “네” “너는 네가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싶은 거야?”라며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아이는 불안한 마음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듯 “네에…….” “그렇구나, 내일 만나면 주고 싶어?” “네.” “그럼 내일 주면서 그 친구에게 단호하게 다시는 주지 않겠다고 안된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때?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안된다고 말해야겠어요. “ 하고 말하며 단호한 눈빛을 뿜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돼. 그리고 만약에 또다시 그런 요구를 하면 그때는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해. 알았지?” “네.”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아이는 즐겁게 수업을 했다.
“싫어. 안돼.”라는 말은 아이들도 하기 힘들어한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못한다. 그 말을 하면 사이가 틀어질까 걱정하기도 하고, 오해할까 봐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정확한 표현이 서로를 오해하지 않게 하고 믿음을 돈독하게 한다. 아이가 정말 친한 친구에게 들은 말은 본인이 생각해도 정당하지 않은 요구였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부탁’이라고 받아들이고 약속까지 해버린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과 우정 그리고 부당함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어른들의 지혜를 구했다. 예전에 영어 레벨 테스트 걱정으로 울상 짓던 아이의 얼굴이 그날도 보여 나 또한 아이에게 큰 걱정이리라 짐작했다. 편안하게 말할 수 있도록 들어주고 아이의 입장을 이야기하도록 했다. “싫어, 안 돼라는 말은 나쁜 말이 아니야, 오히려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 친구도 너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 물론 이유는 설명해 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유까지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돼. 어때? 그렇게 말하면 될까?” “네, 그렇게 말할게요.”
어릴 때는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해도 되는지 헷갈릴 수 있다. 내게 부정적이니 상대도 부정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짐작으로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하지만 정확한 감정표현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더 잘 알고 이해하는 단계라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한다. 그런 표현들이 쌓이며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의 부모님께 간단한 문자로 보냈다. “이런 일이 있어 제게 고민을 상담하여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어머님이 주의 깊게 살펴보셔야 할 듯합니다.” 문자를 받으신 어머님이 통화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내 통화를 했다. 어머님도 이 문제로 걱정을 많이 하신 듯했다. “아이가 잘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이가 오늘 저녁때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내일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님은 기다려 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될 듯합니다. 아이가 순수해서 어렵고 고민을 한 듯합니다. 유심히 지키봐주세요.” 싫어, 안 돼라는 말을 현명하게 사용하기를.
그림출처 ; pinterest @Noorafa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