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우울한 날
세상을 등지고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가야 할 때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시간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오랜 병투병일 것이다. 병이 깊어져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경우, 이미 모든 힘을 소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건강한 상태에서 그 끝을 알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기쁠 것이고, 미루어 두었거나 하지 못했던 일들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신의 선물이 아닐까? 그렇다면 감사하며 그 시간을 소중히 허투루 쓰지 않도록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겠다. 마지막 인사도. 그 순간은 편안하게 맞으리라.
올리버 색스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글을 썼다. “나는 지금 죽음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저서 <고맙습니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2005년 희귀병 안구혹색종이 간으로 전이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글을 쓰고, 수영을 하고, 피아노도 치고 여행도 했다. 건강이 나빠진 순간에는 모든 힘을 모아 글을 썼다. 그의 마지막 글인 에세이 4편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했던 그였기에 그의 글은 다정하고 친절하다. 글 안에 그는 그대로 살아있다.
“아쉬운 점은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그리고 지금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든 살이 되고서도 스무 살 때와 마찬가지로 지독하게 수줍음을 탄다는 것도 아쉽다. 모국어 외에는 다른 언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게 아쉽고, 응당 그랬어야 했건만 다른 문화들을 좀 더 폭넓게 여행하고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다.” -P17
“오히려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더없이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남은 시간 동안 우정을 더욱 다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글을 좀 더 쓰고, 그럴 힘이 있다면 여행도 하고, 새로운 수준의 이해와 통찰을 얻기를 희망하고 기대한다.“(p.27-28)
“이제 쇠약해지고, 호흡이 가빠지고, 한때 단단했던 근육이 암에 녹아 버린 지금, 나는 갈수록 초자연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이 아니라 훌륭하고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생각이 쏠린다. 자신의 내면에서 평화를 느낀다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안식일, 휴식의 날, 한 주의 일곱 번째 날, 나아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곱 번째 날로 자꾸만 생각이 쏠린다. 우리가 자신이 할 일을 다 마쳤다고 느끼면서 떳떳한 마음으로 쉴 수 있는 그날로.”(p.56)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올리버 색스박사처럼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평생 동안 행한 행동과 글로 짐작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우울한 날을 그는 멋진 날로 바꾸었다.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들고, 멋진 하루하루를 만드는 데에 충실하자. 어느 멋진 날을 위해 열심히 오늘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