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이어 Apr 03. 2024

아득해지다

얼 빠진 날

잃어버렸다.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아득해진다. 미친년처럼 온 집안을 뒤지며 난장판을 만든다. 땀이 머리와 윗옷을 적신다.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가슴이 답답하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놓았을까? 부르면 대답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리가 없음을 알지만, 소리 내어 불러본다. “지갑아, 어디 있니?”

약간의 현금과 카드가 들어 있었다. 잃어버렸으면 카드를 정지시켜야 한다. 그리고 새 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 번거롭게 생겼다. 마지막으로 사용하고 마주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아들과 어제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갔었다. 거기서 아이스크림을 살 때 카드로 계산한 후 지갑을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틀림없이. 그런데 점퍼 주머니에 없다. 가방에도 없다. 어젯밤의 여정을 되짚어보며 길을 더듬거리며 가본다. 길가를 유심히 살피면서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가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할인점 안에도 없었다.

허탈하다. 어디 갔을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학원 갔다 돌아온 아들에게 “너 혹시 엄마 지갑 어디 뒀는지 알아?” “엄마가 알지.” “모르니까 너한테 묻는거쟌아.” “뭐야, 또 어디 뒀는지 몰라?” “응.” 상습범이다. 나는. 자주 지갑을 잃어버리고 찾는다. 무의식 중에 했던 것들은 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가 찾아볼게.” 아들이 방으로 들어가 내 책상과 책장을 살핀다. 난 거실 소파에 망연자실하며 축 늘어져 있다. 한참 후에 “여기 있네! 여기 있어!” 후다닥 달려 아들에게 갔다. “그래?” 아들이 파란색 손바닥만 한 지갑을 흔들어 보이며 활짝 웃는다. “엄마는 나 없으면 안 돼, 그렇지?” “그러게, 어디 있었어?” “왼쪽에 서랍장 뒤에 떨어져 있었어.” “분명히 봤는데……다행이다.”

잃어버린 상실감에 절망했던 나는 지갑을 찾은 동시에 머리가 맑아졌다. 항상 같은 자리에 두지만 가끔은 그 녀석이 다른 곳에 가 있다. 미친 자아가 엉뚱한 곳에 떨구었던 것이다. 잃어버렸을 때 빠르게 돌아가는 귀찮고 성가신 일들이 스친다.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경험하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 하지만 가끔은 반복된다. 나이가 들고 치매가 오면 더 심한 상실감을 느끼리라. 그러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책을 보고 글을 쓴다. 인지하고 있는 어휘의 개수가 많을수록 치매가 멀어진다고 한다. 최재천 교수님 말처럼 공부하기 위해 책을 보면 어휘도 늘 것이다. 늘 보던 책이 아닌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책 읽기는 반드시 도움이 된다. 상실의 경험은 발전을 일으키는 발돋움이 역할을 한다. 썩 좋은 일은 아니지만 필요한 것이다.



이전 04화 서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