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 8000보
늘 걷기는 일상생활이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걸으며 느끼는 자연이 참 좋다. 벌거벗은 나뭇가지에는 어느새 새눈이 돋아 옷을 한 겹씩 입혀주고 있다. 작고 연약한 연둣빛 잎이 살짝살짝 모습을 보이며 방긋 웃는다. 어느새 파란 하늘은 높아졌고 저녁놀의 색깔은 더 붉게 달아올라있다. 해 질 녘 집으로 가기 위해 재촉하는 발걸음을 하늘빛 융단이 잡아 이끈다. 넋을 놓고 하늘을 보며 지구 반대편으로 가고 있는 태양을 아쉬운 마음으로 지켜본다. ’ 오늘도 고생했어.‘라고 태양에게 감사인사를 보낸다.
감성적인 소녀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요즘 계절.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가끔 고궁에 가면 고풍스럽고 근엄한 전각들과 자연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낸다. 조선의 왕들이 가장 즐겨 찾았고 좋아했던 창경궁은 아늑하고 포근하다. 지난가을에 갔던 창경궁은 단풍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늘 고즈넉하고 조용했던 창경궁이지만 가을에는 소란스럽고 야단스러웠다. 그래서인지 창경궁에 사는 청설모도, 고양이들도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봄이 온 요즘은 나뭇가지마다 새눈이 또 다른 자태를 뽐내어 초록빛으로 물든 여름을 기대하게 만든다. 여전히 고혹적이고 우아한 멋을 풍기는 백송나무는 당당하게 서서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8000보의 걸음은 나의 다양한 걸음을 보여준다. 일을 위해 힘차게 걷는 걸음, 나를 채우기 위해 조용하고 힘 있게 걷는 걸음, 자연을 느끼며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는 걸음, 누군가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공감하는 걸음, 꽃샘추위에 코가 빨개지면서도 누군가와의 만남을 기대하는 설렘 가득한 걸음. 그 걸음걸음마다 나의 삶과 나의 철학이 변화하고 있다. 오늘은 과거의 어제보다 젊고 오늘은 과거의 나보다 진일보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나의 모든 걸음이 꽃길일 수는 없지만 나를 성장하는 걸음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