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썩을 타이밍

사순 제5주일 / 요한복음 12,20-33

by 글방구리

그만 글 올릴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주일 강론이지만 연재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타이밍을 놓친 데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문어발처럼 너무 여러 가지에 잡생각이 뻗었기 때문이에요. 이 구절로 묵상할까, 저 구절로 써볼까 머리만 굴리다가 시간만 흘러가고, 벌써 주일 저녁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다 보면 왠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간단히 요약해 봅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예수님을 뵙고 싶다며 찾아오는 걸로 시작되죠. 뵙고 싶으면 직접 찾아보면 될 텐데 그들은 필립보에게 부탁을 합니다. 필립보는 다시 안드레아에게 청하고요.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청을 듣고도 그리스 사람들을 만나주시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 대신, 밀알이 썩어야 한다는 둥, 목숨을 미워해야 간직한다는 둥, 당신을 섬기려면 따라야 한다는 둥 다소 엉뚱하게 들리는 말씀을 하십니다.


연결되는 그다음 구절은 더 이상합니다. 하느님께 기도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 중얼거리시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복음사가는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고 썼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천둥소리나 천사의 출현으로 이해합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이 땅에서 들어 올려져야 한다는, 즉 십자가 죽음을 당해야 한다는 암시를 주시는 구절로 마무리됩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가 저는 드디어 이 장면을 이해할 단어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27절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마음이 '산란'하신 상태라는 것. 예수님도 지금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갈가리 흩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체포되고, 고문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결국 죽을죄를 지은 사형수가 되고 말 운명이 앞에 놓여 있으니, 제아무리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을 수 없으셨을 테지요. 그래야 '사람의 아들'이죠.


그리스 사람들이 타이밍을 잘못 맞춰 왔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그들을 직접 만나 주는 것보다는 앞으로 당신에게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당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그런 당신을 보고 싶고 따르고 싶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에 나가 사탄의 유혹을 받고 시작하신 공생활 동안 예수님은 수많은 가르침을 주셨어요. 군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그들의 삶과 가장 가까운 소재를 예로 들어 비유로 말씀하시곤 했지요. 예수님은 지금도 어떤 비유를 들어야 당신을 찾아온 그리스인들을 비롯하여 제자들이 이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셨을 겁니다. 그렇게 찾아낸 소재가 '씨앗(밀알)'이고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24절)는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너무 유명하고 입에 익어서 오히려 묵상이 잘 진행되지 않을 정도로요. 이럴 때는 다른 언어로 된 성경을 읽어 보면 도움이 됩니다.


전에 저는 이 말씀을 단지 밀알이 썩듯이 자신을 버리고 희생해라 하는 정도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어 성경으로 다시 읽다 보니 조금 다른 뉘앙스로 다가오네요.

독일어 성경에는 '한 알 그대로 남고'라는 부분이 'bleibt es ein einzelnes Korn'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쓰인 'einzeln'이라는 단어는 '하나하나의, 개별적인'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지 않는 밀알은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남게 되지만, 죽는 밀알은 'Frucht' 즉 열매, 그것도 많은 열매로 바뀐다는 말입니다.


저는 한때 씨앗과 열매를 잘 구분하지 못했어요. 어떤 과실이나 곡식은 그게 씨앗인지 열매인지 알기 어렵기도 하고요. 우리가 먹는 쌀알도 그게 씨앗인지 열매인지 딱 부러지게 구별이 되나요? 하지만 씨앗과 열매는 분명히 다르지요. 씨앗이 열매가 되려는 목적으로 존재한다면, 열매는 다시 그 안에 씨앗을 품어요. 예수님이 오늘 하신 말씀은 씨앗은 개별적인, 낱낱의, 변화되지 않은 모습으로 남으면 안 되고, 씨앗의 모습을 버리고 열매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실 십자가와 죽음의 길은 그렇게 개별적인 씨앗에서 모습이 완연히 다른 열매가 되시는 길이라고, 우리도 역시 그렇게 살지 않으면 '부활'이라는 열매를 맺지는 못할 거라는 뜻으로요.


씨앗을 심으면 어느 순간 그 안에서 싹이 나오고 씨앗의 원래 형태는 없어집니다. 그 씨앗에서 나온 싹이 자라 종국에 열매를 맺게 되는데, 우리는 열매를 맺은 씨앗을 죽었다고, 썩었다고 말하지 않지요. 죽은 것은, 썩은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한 씨앗입니다. 그러므로 변화하지 못하고 씨앗의 형태를 유지하는 것을 두려워해야지, 죽고 썩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지금 당장은 죽고 썩어 없어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요.


며칠 후면 춘분입니다. 다음 주면 성지주일이고 성주간도 시작됩니다. 춘분이 되면 감자도 심고, 첫여름에 거두는 이른 봄보리를 심는다고 하네요. 꽃씨를 뿌리기에도 좋은 계절이지요. 이어지는 청명에는 나무도 심습니다. 타이밍이 절묘합니다.


뿌린 씨앗이 새들의 먹이가 되지 않고 땅 속에 잘 묻히고 죽어야 꽃도 보고 열매도 얻습니다. 씨앗인 우리가 열매를 내다보며 죽고 썩기에 딱 좋은 타이밍임을 깨달으라는 것 같네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27절)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지 말자고 주먹을 불끈 쥐어 봅니다.


그리스인들이 예수님을 찾다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들어 올려져야 한다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Jesus und die Griechen
Es waren aber einige Griechen unter denen, die heraufgekommen waren, um auf dem Fest anzubeten. Die kamen zu Philippus, der von Betsaida aus Galiläa war, und baten ihn: Herr, wir möchten Jesus gerne sehen. Philippus ging und sagte es Andreas, und Philippus und Andreas sagten´s Jesus weiter. Jesus aber antwortete ihnen: Die Zeit ist gekommen, daß der Menschensohn verherrlicht werden soll. Wahrlich, wahrlich, ich sage euch: Wenn das Weizenkorn nicht in die Erde fällt und stirbt, bleibt es ein einzelnes Korn: Wenn es aber stirbt, bringt es viel Frucht. Wer sein Leben lieb hat, der wird´s verlieren; und wer sein Leben auf dieser Welt gering achtet, der wird´s bewahren zum ewigen Leben. Wer mir dienen will, der folge mir nach; und wo ich bin, da soll mein Diener auch sein. Und wer mir dienen wird, den wird mein Vater ehren.

Der Ankündigung der Verherrlichung
Jetzt ist meine Seele betrübt. Und was soll ich sagen? Vater, hilf mir aus dieser Stunde. Doch dazu bin ich in diese Stunde gekommen: Vater, verherrliche deinen Namen! Da kam eine Stimme vom Himmel: Ich habe ihn verherrlicht und will ihn noch einmal verherrlichen. Da sagten die Leute, die dabeistanden und zuhören: Es hat gedonnert. Die andern sagten: Ein Engel hat zu ihm gesprochen. Jesus antwortete: Diese Stimme hat nicht meinetwegen gesprochen, sondern euretwegen. Jetzt ergeht das Gericht über die Welt: nun wird der Fürst dieser Welt ausgestoßen werden. Ich aber, wenn ich erhöht werde von der Erde, so will ich alle zu mir ziehen. Das sagte er aber, um anzubeten, welchen Tod er sterben wür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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