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연중 제11주일 / 마르코복음 4,26-34

by 글방구리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둥구나무가 있습니다. 수령을 약 500살 정도로 추정하는 느티나무입니다.

마을 초입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팔을 벌리고 서 있고, 그 그늘 아래에 사람들이 쉴 정자가 있는 풍경은 국도변을 지날 때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서 있는 곳이 좀 남다릅니다. 한눈에 봐도 족히 20층은 될 듯한 고층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거든요.


지난주에는 글쓰기 하는 3학년 아이들을 이 나무 아래로 불러모았습니다. 저는 아이들보다 먼저 가 있고, 아이들에게는 버스를 타고 찾아오는 '미션 나들이' 장소로 이 나무를 정했거든요. 나무 둘레에 마련되어 있는 벤치에서 글도 쓰고, 바로 옆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더운 날씨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갑니다. 아예 벤치 하나를 차지하고 누워 휴대폰을 보면서 쉬는 사람도 있습니다.

"느티나무 할아버지한테 가서 놀다 갈래?"

젊은 엄마가 네댓 살이나 되었을까, 어린이집에서 이른 하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꼬맹이 손을 잡고 옵니다. 느티나무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말이 마치 진짜 할아버지를 일컫는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형광 연두색 조끼를 덧입은 어르신들도 환경 미화 작업을 나가기 전에 잠시 앉았다 가시기도 합니다.

"이 나무가 그리 오래 됐다잖어. 그러니 앉아 있다 가기만 해도 좋은 기운을 받을겨."


시끌시끌, 약속된 시간에 맞춰 아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자세한 약도를 주지 않았는데도 물어물어 잘들 찾아왔네요. 혼자서는 하지 못했을 미션임을, 함께 했기에 두려움 없이 찾아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요?


커다란 둥치에 새끼줄이 친친 감겨 있고, 목신제를 드렸는지 하얀 소원지가 군데군데 끼워져 있는 둥구나무를 보면서 아이들의 감탄사는 터져 나옵니다.

"와, 이 나무 진짜 크다!"

"우리 동네에 이런 큰 나무가 있었어요?"

나무를 돌아보며 한껏 감탄하게 하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달콤한 간식으로 배를 채운 뒤, 아이들에게 글감을 던져 주었습니다.


"얘들아, 이 나무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 나무가 오백 년 가량 되었다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큰 나무였을까? 이 나무는 오백 년 동안 어떤 마음으로 자랐을까? 이 나무는 처음부터 자기가 이렇게 커다란 나무로 살아남을 거라고, 주변에 이렇게 아파트 단지가 세워질 거라고 짐작했을까?"


아이들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근처에 세워져 있는 설명도 읽어보면서 글을 씁니다. 아이들에게 다소 어려운 주제일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만, 아이들은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하며 공책을 채워갑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나무와 아이들을 번갈아 보면서 오늘, 연중 11주일 복음으로 주어진 '하느님 나라'를 묵상했습니다.


'이 나무가 작은 씨앗으로 이 자리에 묻혔을 때, 이 나무는 오백 년 후 우리가 그 그늘 아래에서 글을 쓰고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다. 아니, 자신이 살아남을 거라는 것도 몰랐다. 씨앗은 자신의 미래를 넘나들지 못하고 그저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주인인 하느님은 씨앗 안에서 오백 년 후의 둥구나무를 보셨을 터. 지금 우리 아이들처럼 오백 년 동안 수많은 개똥이들이 이 나무 아래에서 놀다가 사라졌지만, 그 어떤 개똥이도 이 나무가 어떻게 심어져서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했다. 하느님은 하나의 씨앗 안에 숨은 가능성, 그의 현재와 미래를 알고 계신다. 그러나 사람은 시간이 지나야 하느님이 어떤 모습으로 그 가능성을 실현해 내시는지 알게 되지. 시간이 지나고 나야 보이는 것들, 시간이 지나고 나야 깨닫는 것이 하느님 나라!'


제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나무의 서사를 만들어 갑니다. 오백 년 전을 상상하는 아이도 있고, 앞으로 이 나무가 부러지고 없어지게 되었을 때를 상상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하더니 옆에 세워진 해설판을 그대로 베껴 온 아이도 있네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다녀오면서,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베껴 활동 보고서를 채우는 학교 현장체험학습의 폐해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도 내가 씨앗으로 심긴 지 육십 년이 지난 후,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글을 쓰면서 사는 사람이 될 줄 몰랐듯이, 이 아이들 안에 숨은 가능성을 제가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해서도 안 되는 일이니까요. 이 정도면 오늘의 미션나들이는 아이들에게도, 제게도 대성공 아니겠습니까?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 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겨자씨의 비유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비유를 들어 가르치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Von der Saat, die ohne Zutun wächst
Und er sagt: Mit dem Reich Gottes ist es so, wie wenn jemand Samen aufs Land wirft und schläft und aufsteht, Nacht für Nacht Tag für Tag; und der Same geht auf und wächst-er weiß aber nicht, wie. Denn von selbst bringt die Erde Frucht, zuerst die Halme, danach die Ähren, danach den vollen Weizen in den Ähren. Wenn sie aber die Frucht gebracht hat, schickt er sogleich die Sichel hin; denn die Ernte ist da.

Vom Senfkorn
Und er sagte: Womit wollen wir das Reich Gottes vergleichen, und durch was für ein Gleichnes wollen wir es darstellen? Es ist wie bei einem Senfkorn: wenn das Kleinste unter allen Samenkörnen auf Erden; wenn es aber ausgesät ist, so geht es auf und wird größer als alle Kräuter und treibt große Zweige, so daß die Vögel unter dem Himmel in seinem Schatten wohnen können.
Und durch viele solche Gleichnisse sagte er ihnen das Wort so, wie sie es zu hören vermochten. Und ohne Gleichnisse redete er nichts zu ihnen; aber wenn sie allein waren, legte er seinen Jüngern alles 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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