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어도 고
출간일이 다가오면서 편집자님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작가님 프롤로그와 작가 소개 글 보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프롤로그만 보내면 되나요? 에필로그는요? 책 추천 사는 안 들어가나요?"
"네. 프롤로그만 주시면 돼요. 다른 건 넣지 않기로 했습니다."
'엥, 누구 맘대로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이유를 여쭤봤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추천사를 굳이 넣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1. 정말 유명한 분 아니고서는 추천사의 영향력이 적다. 즉 판매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거였다.
2. 출판사에서 사전에 생각해놓은 인물이 없다. 추천 사는 출판사에서 섭외하는 경우와 작가가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경우는 비용 문제도 있고 받기가 어렵기도 해서 요즘은 잘 안 하는 경향이라고 했다. 특히 나는 편집자님이 새로 오셔서 더 진행이 힘든 케이스였던 것 같다.
3. 일정이 촉박하다.
4. 디자인이 이미 들어간 상태라 책의 페이지를 늘리는 건 힘들다. 그 말인즉슨 에필로그나 추천사를 위한 페이지를 별도로 더 마련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출판사에서는 이미 결정을 내린 듯 보였다.
에필로그야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추천사가 없다는 건 왠지 좀 아쉬웠다. 혹시나 해서 주변 분들께 조언을 구해보았지만 정답은 없었다. 니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게 젤 좋다는 게 정답!
물론 추천사를 꼭 부탁드려야지 했던 분이 사전에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막연하게 책에 인용되었던 분들이나 책을 쓰는 데 도움을 주셨던 분들, 평소 닮고 싶은 멘토 분들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분들이 추천사를 써준다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촉박하게 일정에 맞춰서 부탁드리기도 죄송하고, 결국 '그냥 추천사 없이 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 아는 분이 따로 연락을 주셔서 유명한 분의 추천사도 좋지만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분들의 간단한 추천평 받는 것도 좋겠다고 해주셨다. 오오! 그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급하게 간단한 추천평을 받았다.
다행히 편집자님께서도 수락해주셔서 시일이 촉박하긴 했지만, 받아주면 책 맨 뒷페이지에 넣어 주겠다고 하셨다. 오예~! 갑자기 촉박하게 부탁을 드렸는데도 모두 도와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제 추천평도 받았고 드디어 할 일을 다했다고 홀가분한 마음이었는데...
이번엔 표지 디자인 작업을 살피던 편집자님께서 이분들의 소감만 넣으니 너무 주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하아... 뭐가 이리 어렵나... 쉬운 게 없네...)
끝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잘못하다가는 추천사가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우선은 책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불끈 용기를 내서 말씀드렸다.
"그럼 다른 분께 추천사를 더 받아볼게요."
하지만 편집자님의 나지막한 대답.
"작가님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오은영 박사님 정도가 아니라면, 더 이상 일정을 미룰 수는 없어요."
오은영 박사님이라니......
그런데 순간 무슨 배짱인지 "오늘까지 드리면 될까요?"라고 질문을 던지는 나를 발견했다. 궁지에 몰리니까 나도 막 던지는구나 싶었지만 이번에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평소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두 분께 급작스럽게 연락을 드려 추천사를 부탁드렸다. 연락을 드리면서도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분 다 엄청 엄청 바쁘신 분들인데 감사하게도 기꺼이 써주겠다고 하는 기적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기시미 이치로
마지막에 추천사를 넣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고민만 하다가 결국 출판사 말대로 아무것도 안 넣었다면 두고두고 생각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책의 뒷페이지가 좁아서 이전에 받았던 추천평을 다 넣지 못한 건 너무너무 아쉬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드디어 책 만드는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프롤로그를 적으면서 한 번 더 깨달았다. 혼자였다면 출간까지의 여정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했을 거라는 걸. 가벼운 응원 한마디 한마디가 매 순간순간 큰 힘이 되었단 것도. 무엇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다.
나는 상당히 느린 사람이다. 밥도 천천히 먹고 뭐 준비하는데도 오래 걸리고, 글 하나 적는데도 마찬가지다. 맨날 행동이 굼뜨다고 부모님께 혼나던 아이였고, 고민 고민하다가 하겠다고 손을 들면 이미 수업 종료 종이 칠 때가 되었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뭔가를 결심하는데도, 또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서 늘 세상에 뒤쳐지고, 손해보고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책을 쓰면서도 늘 그랬다. 생각보다 필 받아서 잘 써지는 날은 며칠 없었다. 내 삶이 스펙터클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내 안에 넘치고 넘쳐서 밖으로 새어나올만한 것들이 딱히 없었다. 손으로 적었던 일기장들도 남아 있지 않았고, 온라인에 따로 기록해놓은 것들도 없었다.
그럼에도 쓰겠다고 작정하니 써졌다. 중간에 나침반도 잃고, 막다른 길에도 접어 들고, 표류하는 건지 기류를 탄건지 알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헤메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도착이다. 그곳이 어디든 가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때로는 철저하게 홀로, 때로는 세상의 많은 이정표와 귀인들의 도움을 받아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읽기로 한 책들을 쌓아두다가 끝내 다 읽지 못해서 다시 책꽂이에 꽂을 때는 마음이 쓰라린다. 이렇게나 목표를 크게 잡았나 싶어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이 좋은 책들을 못읽고 지나가는 것이 내내 아쉬워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정말 읽어야 할 책이라면 언제라도 읽게 돼있었다. 몇 년이 지나 우연히 일 때문에 읽기도 하고,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되어 눈 앞에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책을 쓴다는 것도 그런 일인 것 같다. 서점에 놓인 그 많은 책들 가운데 내 책 자리 하나 없을까 싶다가도 그 자리를 탐내도 되나 두려워지고, 책으로 만들어진 다음에도 이것보다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하고 미련이 남기도 하는 일. 그럼에도 나와야 할 책이라면 언제라도 나오게 되어 있다. 종착지가 없는 과정은 없으니까.
그러니 못먹어도 고! 일단 고! 도착할 때까지 가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