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에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처음 편집자와 퇴고를 3번 정도 거쳐서 출판을 하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퇴고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로 원고는 길을 잃었다. 나침판이 사라지니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은 건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책에 들어갈 사진을 정리하면서 기다리는 사이, 옷소매는 긴팔로 바뀌고 샌들에서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편집자가 아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새로운 편집자가 왔고 작업은 빠르게 진행을 하겠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침반을 찾았다. 다행히 내 원고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전 편집자님은 카리스마가 있는 분이셨다면 새로 오신 분은 좀 더 따뜻한 분이셨다. 이미 내 원고가 상당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 의견을 많이 반영해주시는 것처럼 느껴져서일지는 모르겠지만.
새로 온 편집자님은 미션을 받고 투척되신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막바지 퇴고 작업을 일사천리로 이끌어주셨다. 갑자기 출간이 촉박해진 게 문제였다. 퇴고하면서 남들처럼 문장을 다듬는다던지 찬찬히 읽어볼 여유조차 없었다.
"커피 탈 시간에 글을 써라"
"커피 사진 찍을 시간에 글을 써라"
어느 작가님의 말을 듣고 뜨끔한 적이 있었다. 남편도 '그 시간이면 집에서 하겠다'며 한 시간이라도 여유시간이 주어지면 카페에 가겠다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한 시간이라는 것도 집안일을 대충 마치고 아이들이 잠들었을 때 주어지던 것인지도 몰랐을 테지.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집나 두고 독서실에 간다지만 퇴고하면서 그 아이들이 백만 번 이해가 갔다. 아무리 외면해도 환청처럼 들리는 아이들 소리, 주방에 쌓여 분리수거를 해달라고 외치는 각종 쓰레기들의 목소리, 귀를 막아도 들리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화장실 환풍기 소리,,,,,,그런 소리들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집을 깨끗이 치우면 해결될까 해서 정리를 해보고, 물건을 비워봤지만 다음날이면 다시 제자리, 모두 제자리였다.
'이럴 거면 내가 나가야겠다!'
막바지 퇴고 때는 시간이 촉박해서 시간을 벌어야 했다. 잠을 충분히 못 자면 하루 종일 컨디션이 꽝이라 잠을 줄일 수는 없었고, 아이들 깨기 전 새벽, 회사 점심시간, 출퇴근 시간 틈틈이 카페에서 마지막 퇴고에 몰두했다. (그동안 한 번도 책 핑계로 남편보고 일찍 와달라고 한 적이 없었는데, 닥치니 집에 일찍 좀 와달라고 부탁도 하게 되고.)
그러고 보니 스타벅스가 내 퇴고에 도움을 참 많이 준 셈인가!
퇴고할 때 참고해봐야지 했던 글쓰기 책 같은 건 볼 겨를도 없었다. 그럼 퇴고할 때 어떤 게 도움이 되었을까?
퇴고할 때 도움을 주었던 것
1. 자기 암시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좋은 책을 쓸 수 있다' , '매일 하는 것이 나를 만든다' 고 적고 또 적었다.
그것만으로도 힘이 생겼다.
2. 쫀드기와 젤리
남들은 밤을 새워서 퇴고를 한다는데 당최 잠을 이길 수가 없었다. 커피를 마시고도 머리만 대면 5분 만에 잠이 들어서 아무 소용이 없었는데 그나마 뭔가를 계속 씹으면 좀 나았다. 원래 좋아하는 젤리와 쫀드기를 정말 원 없이 먹었다. (덕분에 출간 후 스케일링하러 치과 갔다가 충치를 4개나 치료하는 불상사가;;;)
퇴고는 끊임없는 사투의 시간이다. '이게 정말 책이 될까?' 하는 계속되는 불안을 견뎌야 하고, 지겹도록 똑같은 글을 읽고 고치는 시간을 참아내야 한다. 내가 공들여 쓴 글이지만 나중에는 진짜 꼴도 보기 싫더 진다. 퇴고의 시간은 또 왜 그리 빠르게 가는지...... 오늘 밤에는 꼭 잠들지 않겠다고 맹세를 해도 어느 순간 책상 앞에서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하며 수없이 좌절했다. 그때 나만의 암시와 간식들은 나를 깨어 있게 해주는 최고의 촉매제였다.
허리도 아프고 머리카락도 몇 묶음 쥐어 뜯겨나간다고 느껴질 때쯤 드디어 마지막 교안을 받는 날이 왔다.
한글이 아닌 pdf로 보는 원고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마구잡이 같던 글들에 디자인이 얹어지니 꽤 책의 모습이 되었다. 여전히 정말로 책이 나올 것인가 하는 의심은 계속되었지만 고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까스로 두 번째 퇴고를 끝내고 드디어 마지막 수정 원고를 보냈다. 이제 정말 끝이라 생각하니 시원 섭섭.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어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책에 들어갈 추천사에 대한 숙제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