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를 뒤집고 새로 원고를 써 내려가는 일은 상상보다 험난했지만 선인세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의무감으로 어떻게든 초고를 완성했고 드디어 '퇴고'라는 길에 들어섰다.
다들 퇴고가 초고보다 훨씬 힘들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초고 완성하는 데까지가 워낙
힘들어서 그런지 퇴고하는 게 오히려 나았다.
처음 출판사와 이야기했던 출판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나도 슬럼프에서 빠져나와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편집자님과 계속 메일을 주고받으며 1장, 1장씩 퇴고를 하던 중에 웬일로 '피드백이 좀 느리네?' 싶던 때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이틀이면 답장이 왔는데 바쁘신가 하고 생각하고 나도 덕분에 여유를 좀 누리고 있었다.
일주일 만에 메일을 보냈다고 확인해달라는 편집자님의 연락이 왔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평소 같으면 메일 제목이 <2장 피드백> 뭐 이런 식이 었는데 그날따라 인사로 시작하는 제목이 좀 색다르다고 생각하며 경쾌하게 메일을 열었다.
그런데 그 메일은 편집자님과의 마지막 메일이 되고 말았다.
제가 다음 주에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메일을 열자마자 시작하는 글... 다음 주에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되었다는 편집자님의 말에 그냥 멍- 하게 화면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그 기분이란, 엄마 잃은 아기새가 된 기분이랄까. (다시 생각해도 참 울컥 ㅠㅠ)
파란 펜으로 정성스레 피드백한 나의 샘플 원고를 들고 혜성처럼 내 앞에 나타났던 믿음직스러운 편집자님. 처음부터 지금까지 출판사가 아닌, 편집자님 하나 믿고 책을 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혹시라도 이런 경우가 있는지 검색해보니 혼자서 원고를 이어나갔지만 힘들었다는 글, 결국 책을 내지 못했다는 글 등 무척 암울한 글들만 있을 뿐이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내 책이 주력상품이 아니라 출판사에서도 이리 손을 놓는 걸까?'
'내가 좀 더 퇴고를 빨리 했더라면 어땠을까'
여러 가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갈피를 못 잡던 나는 그날 하루를 꼬박 방구석에서 멍 때리다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 오후가 다되어 아이들 하원이 다가오면서 문득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어 편집자님께 전화를 걸었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이어진 말인 즉, 지금 퇴고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단계이니 출판은 무리 없이 될 거다, 아직 후임자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출판사에 인수인계를 잘해두고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에 조금 안심이 되긴 했지만, 후임자가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 원고가 휴지조각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내 책이 정말 나오기는 하는 걸까,
그런 걸까,
몰라 몰라 아몰라.
코로나만큼이나 무서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초긍정 마인드로 무장하고
잘될 거라는 주문을 외웠다. 사실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기도 했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좋아하는 책의 제목처럼 멈추지만 않는다면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후임자가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