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알아야 할 것 / 행복이 오는 통로는 어디?
내 주변은 다들 아직은 튼튼해서 그런지 마음이 아팠던 사람들은 봤어도 나처럼 몸이 아픈 사람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몸이 아픈 게 아니더라도, 꼭 내가 안 좋고 힘든 것이 있으면 내 주변은 없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만 이러네"라는 생각 속에서 외롭고 더 날 힘들게 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지치거나 아프고 힘든 일이 있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네" 하고 조금이라도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나의 15년 동안의 꿈은 아나운서였다.
꿈의 첫 시작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학생회장을 하면서 선생님들이 추천해 주셔서 자연스레 관심이 갔고 그 후로 나와 잘 맞을 것 같고 하면 행복할 것 같아 꿈이 되었다. 그렇지만 10년의 아픔은 이 꿈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막았다.
병의 첫 시작은 미국에서였다. 미국 유학시절 갑자기 어깨와 목 쪽에 감당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에 학교를 일주일 가까이 나가지 못했었다. 미국은 병원비가 상당히 비싸다. 보험도 안되어서 그냥 근육통 진통제를 먹고 내일은 괜찮아지겠지 생각하고 일단 하루하루 버텼었고 다행히 그 당시에는 그렇게 일주일 아프고 지나갔지만 그 후에 공부를 하며 뜨문뜨문 아팠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잠깐 돌아왔던 시기에 나의 길고 긴 아픔은 시작되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어깨와 목이 찢어질 듯 아팠고 그 고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상당해서 어떻게 형용할지 모르겠지만 망치로 칼로 꾹꾹 쑤시는 느낌이랄까.. 몸살 같은 느낌으로 오기도 했고 울렁거리며 짜증 날 정도로 힘들게 아프며 어깨 쪽이 엄청 무겁고 뻣뻣하고 무기력해졌다. 치통에 대략 10배 정도가 몸에서 아프니 감정적으로도 엄청 예민해지고 힘든 통증이었다.
그때부터, 이대론 안 되겠어서 미국 유학을 중단하고 한국에 남아 병원을 갔다. MRI, CT, x-ray 등등 필요한 모든 검사를 했고, 결과를 기다리고 마침내 들었던 결과는 다행이지만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의사의 말은 이러했다.
“검사 결과상으로는 다 정상이네요"
“그런데 왜 계속 아프죠? 선생님 저 너무 아파서 죽고 싶어요"
내 울부짖음이 들어있는 목소리에 의사는 일단 목 뼈 모양이 좋지 않으니 물리치료를 받아 보잔 말로 날 물리치료실로 보냈고, 나는 그냥 물리치료만 계속 받을 수밖에 없었다.
몇 달을 받아도 나아지질 않았다. 고통은 계속돼서 너무 힘이 드는데... 의사는 잘 알지도 못하는 표정에 진통제 처방과 함께 물리치료만 받으라고 하니 정말 속상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엄마와 함께 유명한 대학병원은 거의 다 가보았고,
병원 가서 기다리고 진료받고 여러 검사들을 하고 당연한 절차지만 아픔 몸을 이끌고 호전은 없고 이 상황이 몇십 번이 반복되니까 시간도 감정도 소모되는 싸움에 화가 나고 힘들고 지쳐갔다.
더 나를 힘들게 하고 절망적이게 했던 건 대학병원을 가도 내 병을 고쳐주는 의사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예전에 할아버지 허리 수술해 주신 의사분이 병원을 새로 확장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을 찾아갔고 의사는 섬유륜이 파열되어 그곳을 메꾸는 시술을 해보자고 하셨다. 난 뭐가 뭔지 몰라 일단 살고 싶은 마음에 의사가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고, 너무 아프고 지치고 여러 병원을 다녀도 낫질 않은 상태여서 서러움에 의사 선생님을 보며 말했었다.
“저 만약 못 고쳐 주실 것 같으면 그냥 수술실에서 죽여주세요"
섬뜩한 말이지만 그때의 나는 치료와 함께 진통제와 근육 이완제를 셀 수 없이 먹어도 호전이 전혀 안 돼서 너무 지쳤고 정말 그 고통이 죽어야만 끝날 것 같고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정말 그 당시엔 진심으로 말했었다. 그때는 너무 아파 잠을 못 잤었다. 밤새 내내 울고 울다 지쳐 겨우 몇 시간 잠들고 그러다 또 금방 깨고 깨자마자 또 통증을 호소하고 이 증상이 매일매일 무한으로 반복됐다.
의사 선생님은 당황하셨고, 얼마나 힘들었겠냐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한탄스럽게도 시술을 받아도 똑같았고, 시술하고 입원까지 하며 많은 치료를 더 받았었는데 그대로라 괜히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후에 나는 다시 힘을 내서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신경외과 모두 다 다녔었다. 절망에 절망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갔던 한 병원에서 드디어 내 병명을 찾아주는 의사를 만났다. 검사 결과상으로는 나오질 않으니 의사에 소견에 따라 병원의 각 과마다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지만,
나의 병은 일종의 신경병인 “만성통증”이라고 한다.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신경병성 통증이라 검사를 해도 이상은 없고 뇌에서 신호를 잘 못 보내서 통증을 느끼는 병이라고 한다……
어떻게 고칠 수 있냐고 물었고 약물치료 주사치료 등등 설명해 주셨지만, 이미 많은 병원을 다니며 주는 진통제와 여러 치료들을 받았던 나는 소용없던 치료를 재차 반복하는 것이 거부가 되었다. 1년 넘게 받았어도 더 아프기만 했지 나아지지 않았으니 내가 느끼기엔 당연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내 마음을 전해드렸고, 나를 이해해 주시며 하셨던 말씀은..
“원하는 대로 하셔도 돼요. 환자가 원할 때 받아야 치료도 잘 됩니다. 충분한 명상, 휴식,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부도 안 좋습니다.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구부리고 있거나 신경 오랫동안 쓰며 집중하고 그런 것들은 증상을 훨씬 악화시켜서 최대한 피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병명을 찾았지만, 비통하게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전에 많은 병원을 다녀도 의사들도 몰랐나 보다. 근데 그때 난 너무 좌절했었다. 공부를 해야 하고 해야 할 양의 공부가 있는 상황에서 공부가 병을 더 악화시킨다니.. 나에겐 꿈이 있고 현실적으로 돈도 벌어야 한다. 그때 난 생각했었다. "치열하게 살아도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는 세상인데 그럼 난 아픈 몸을 이끌고 무엇을 해야 되는 것일까?"
괜히 혼자 화도 나서 속으로 "의사 선생님 본인들의 자녀들이 이런 병이었다면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도 외쳐봤다. 물론 속으로만 말이다...
병의 이론상 해주신 말씀들이 이해는 가지만 누구도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수가 없고 오로지 나만이 나를 지킬 수 있는데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너무 암울하고 막막했었다.
"나는 어떤 희망을 기대하며 살 수 있는 것일까...."
며칠 내내 힘들어하다가 다시 기운 내서 얼른 완치되어서 남들처럼 공부하고 싶고 꿈도 이루고 싶다는 생각에 병에 관련된 논문도 읽어보고 관련 자료 등 모든 것들 찾아보았고 TV에서 만성통증 방송했던 것도 빠짐없이 다 찾아보았다.
많은 정보들이 있었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결론은
이병은
1. 죽도록 아프다. 충분한 수면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니 늘 하루하루가 피곤하고 무기력하다.
2. 치료 방법이 전 세계적으로 현재 없다. 진통제가 소용이 없다. 세계적으로 자살률도 높다.
3. 운동, 연애. 여행, 명상 등등 행복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하라고 한다. 자가치료가 핵심이다.
4. 우울감, 불안이 함께 동반된다.
5. 병을 가진 사람들은 보통 남성보다 여성이 많고 40-50대가 비중이 크다. 20~30대들은 상대적으로 적다.
정말이지 너무 기가 차고 슬펐다.. 약도 치료도 없는 병에 내가 걸려 버린 것을 받아들이는데 너무 아팠다.
사람이 아프면 그게 감기몸살일지라도 고통이 오고 고통이 오는 순간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다가도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괜찮아진다. 그런데 난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계속 아프니까 정신까지 피폐해지고 아파져 갔다.
조금 더 자료들을 찾아보니 오래 걸리지만 완치된 분들의 인터뷰들을 보았고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까지 걸려 완치가 되신 분들을 보니 희망이 보이면서도… “짧게 가 5년이라니... 20대는 아프기만 하고 다 가겠구나... "라는 생각에 과연 희망이 불행 인지 가능성인지 구분이 잘 안 갔다.
어떻게든 빨리 낫고 싶어서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병들도 다 고치고 나아진 환자분들이 정말 많다고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한 한의원에 갔었고 담당 한의사 선생님과 상담만 한 시간을 넘게 한 것 같다. 한의학적으로 한자를 써주시며 설명을 해주셨다. 시간이 좀 되었고, 오랜 시간 상담해서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기억나는 대로 짧게 얘기하자면, 어떤 특정 스트레스 사건 때문일 수 도 있고 원인은 불분명 하지만 내 몸에 아기가 있고 노인이 있고 성숙하지만 아직은 나이가 어려 그 감정을 모두 다 감당이 어려워 신경적으로 무너졌고 등등 잘 이해 안 가는 내용이었지만, 뇌에서 신경물질을 잘못 전달하여 통증을 일으킨다는 말은 통상적으로 같았다.
그래서 결국 신경에 관련된 병이라 신경회로를 고치려면 좋고 행복한 감정을 많이 받고, 기쁜 일을 많이 할수록 좋아진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행복하고 기쁜 일…..?"
평범한 사람도 삶을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데,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고 행복한 감정을 많이 주는 것이 치료라니.. 몸이 이렇게나 고통스럽고 아픈데.. 병원에서는 고치진 못하고 완치가 될지도 모르는 이병을 안고 혼자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참 무섭고 외로웠다.
몸이 아프니까 내 사람들한테 괜히 내 어두움이 전해져 피해가 될까 봐 사람들 만나는 것도 피하게 되고 통증이 언제 올지 몰라 누군가를 만나기도 두려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혼자 외롭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모든 게 무너져 내려갔다.
자존감이 내려가면 또 올릴 수 있는 것 또한 나 자신이기에 스스로를 달래며 어떻게든 살아야겠어서 신경회로를 일단 운동으로 좋게 돌려보자라고 생각하고 매일 아침 새벽 6시에 헬스를 갔다. 일 년 내내 거의 매일 갔던 것 같다. 너무 아픈 날은 가서 억지로 참고 조금만 하고 나왔다.
그리고 꽃꽂이 클래스도 참여해서 배워보고 미술도 해보고 뇌 속에 안정감과 힐링을 줄 수 있는 건 할 수 있는 선으로 다 해 봤다. 그렇게 꾸준히 해서 몇 달이 지나니 일 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오던 통증은 신기하게도 서서히 줄어져 갔다. 어느 날은 한번 통증이 없던 하루도 있었다. “나도 통증이 안나타 나는 순간도 있구나!” 조금만 더 하면 괜찮아질 것 같고 희망이 보인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후 아픈 주기가 조금 길어진 거지 다시 또 통증이 올 때마다 나는 다시 또 주저앉고, 불안하고 힘들었다. 좀 괜찮다가 다시 아프고 좀 괜찮다가 다시 아프고 하니 나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어떤 것도 새롭게 도전할 수도, 무엇도 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살아갈 힘을 한번 더 잃었다.
또 계속해서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시며, 치료비를 내주시는 부모님 얼굴도 볼 수가 없을 만큼 죄송했다..
내가 살아있음에 나는 나 스스로도, 부모님도 힘들게만 하는 것 같은 생각에 눈물이 마르지 않게 났고, 마음이 미어졌다. 몸이 정신을 지배하고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도 깃든다고 몸이 너무 아프니 정신까지 피폐해져서 다시금 죽고 싶고 힘들어졌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죽고 싶다는 말을 부모님에게는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읽으신 건지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매일 새벽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시러 나가시는 우리 아빠..
매일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우리 엄마..
그리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부모님의 외동딸인 나..
그때 난 아빠 말씀을 듣고 펑펑 울며 결심했다. 반드시 이 병에서 이길 거라고.
이겨서 건강해져서 효도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우리 모두가 존재 자체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가치 있는 존재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것보다 내 존재를 사랑하며 살아있음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우울해서 상담도 받았었고 상담받을 때 주 핵심은 고쳐 나아가는 게 아니라 균형 잡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단점이든, 성격이든, 아픔이든.
그렇게 나는 아픈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사실 처음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당장 견딜 수 없는 통증을 겪고 있는 나에겐 짜증만 늘어가고 예민해지고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으려면 신경회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기 위해 찾았다.
내가 찾았던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는 전혀 대단히 거창하진 않지만, 맘 잡고 꾸준히 하는 것은 쉽게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항상 우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나를 더 절망으로만 데려가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든 감사한 부분을 찾아 나아갔다. 아픈 상황에서 감사함을 찾는 것은 쉽진 않았다.
내가 찾은 감사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 차 한잔 마실 때 향을 맡을 수 있는 후각에 감사하다.
2.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좋은 걸 볼 수 있고, 두 팔, 두 발 건강한 나에게 감사하다.
3. 미각이 있어 맛을 구분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당연한 것 같지만 사소한 것부터 내가 감사히 여긴다면, 내 안에 긍정적인 힘은 크게 작용하고 신경 회로도 좋게 이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보다 더 아파지는 순간이 오면 난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건강 부분보다 내가 가진 또 다른 건강에 집중하고 감사함을 찾아 나아갔다.
행복해져야 신경전달 물질이 좋게 흐른다는데 하루하루가 힘든 상황에서 행복해지기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작은 것부터의 감사함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힘에 모든 순간들을 감사해야 한다.
나는 아프기 전의 내가 너무 그립다.. "건강한 하루에 감사하며 살걸.." 하고 후회될 때도 있다.
"행복"의 첫 시작은 "감사함"에서부터 오기도 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행복을 좇으려 만 하면 나도 모르게 불행해질 수 있다.
조금만 내 마음에서 바라는 걸 내려놓고
감사한걸 내 마음에서 꺼낸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닌 게 느껴질 때
가지고 있는 게, 주어진 게 값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린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나는 그때 비로소 행복은 내려놓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난 불행히도 지금도 완전히 완치는 되지 못했다. 가끔 너무 아프고 힘들다.. 정말 예전만큼의 10중 10 큰 고통의 아픔은 몇 달에 한두 번 오는 것 같긴 하다. 그리고 하루하루 몇 시간씩 자잘하게 통증이 조금 올 때가 있고 너무 아파서 가끔 우는 날도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작은 것에 감사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감사함을 찾고 한 번이라도 조금은 행복하고 싶다. 그래서 여전히 지금도 못해도 주 5회는 꼭 운동을 한다. 계속되는 아픔에 10년간 행복을 미루며 살아왔던 내가 안쓰러워서라도 힘들지만 노력한다.
나는 너무 힘든 순간마다 "아픈 고통의 주기가 길어지고 있음에 감사하다"라고 되새긴다.
이렇게 노력하지만 사실 아플 때 감사함을 찾는 건 너무도 어렵다.
일단 아프면 감사함은커녕 좋은 생각조차 못하게 되고 예민해진다. 여유가 없다. 통증이 찾아오는 시간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운동도, 공부도, 일도 무엇도 다 힘들다. 통증이 오는 순간은 생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몸과 정신이 아프다.
우리가 왜 견디기 힘든 심한 치통이나 두통, 복통이 왔을 때 그 순간 아무 생각 안 나고 너무 고통스러운 것처럼 신경질 나게 아플 정도의 통증이 찾아오면 그 속에서 감사함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 한편으론 원통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신경회로가 돌아야만 통증이 멈추는 병 속이다 보니 그저 또 이를 악물고 감사함을 찾는다. 처음에는 나만 이런 병에 걸린 것 같고 불행해서 매일 울었었지만, 10년이나 지난 요즘은 그냥 체념하며 최대한 감사함을 찾으려 한다.
나에겐 그것이 고통과 맞바꾼 값진 해답이다. 이 병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뇌를 다스리고 신경을 전달하는 회로에서는 좋은 생각을 해야 좋은 행동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하는 대로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모든 게 정상인데 뇌의 신경회로 때문에 통증을 느끼는 이 병이 있고, 이 병과 다르지만 비슷한 형태인 환상통이란 것이 존재하고, 조금 나아진 나를 보면 정말 그 말의 신빙성을 입증한다.
환상통의 정의 : 몸 한 부위나 장기가 물리적으로 없는 상태임에도 있는 것처럼 느끼는 감각을 말한다.
감사함을 찾다 보니 조금은 나 스스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긍정적이게 되었다.
서서히 몸이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하며 더 이상 아프기 싫고 더 건강해지고 싶고 아는 만큼 건강해지는 영역도 넓어지고 싶어서 운동과 재활 관련 자격증을 4개를 땄다.
꿈은 아니었지만, 일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라는 생각에 학생 때 생활비랑 용돈을 벌려고 과외했던 경험을 살려 전임은 내 몸 상태로는 힘들 것 같아서 영어강사를 파트로 일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꿈을 다른 건 생각하지도 못하고 꽤 오랫동안 오직 아나운서였던 나는 막상 꿈을 잃고 몸은 계속해서 아프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고 무엇도 잘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비참하고 자존감이 한없이 내려갔었다. 계속 나를 갉아먹으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나를 알아보고 싶어서 억지로 억지로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나를 돌아보며 나에 대한 기억을 찾아갔을 때 어릴 때 글짓기 대회들을 나가 수상을 하고 선생님들께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래전이라 내가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잊고 살고 있었다.
더 깊이 생각해 보니 감사하게도 살면서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내 말에 마음이 안정된다고 말해 준 것과, 힘들 때마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캡처해서 배경화면에 놓고 버텼다는 말을 해준 말, 14년 지기 친한 친구는 위로를 내게 처음 배웠다고 고맙다고 말해줬던 기억도 같이 함께 떠올랐다. 나는 그 기억들 덕분에 내가 아주 하찮지만은 않은 존재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일기를 꾸준하게 쓰며 힘든 감정을 조금이나마 다스렸고, 느끼는 게 있을 때마다 글을 써왔다. 그 글들은 나 스스로 마음 정리를 할 수 있게 도와줬고, 또 다른 내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던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그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하나씩 하나씩 해 나아가 보았다. 하나씩 성취하고 꾸준히 해서 이룰 때마다 못 느꼈던 성취감과 자존감을 다시 찾았다. 그러면서 다시 예전의 나처럼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영어강사를 구할 때도 사실 쉽지만은 않았다. 모든 일이 쉽지 않듯 아픈 나에겐 더더욱 그 벽이 있었다. 교육기업과 학원을 면접 볼 때마다 듣던 질문은 "오래 아프셨는데, 갑자기 수업하다가 혹은 일하다가 아프시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런 질문들이었고 아픈 것이 결격사유라며 똑같은 질문을 계속 받았다. 기업과 학원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선생님이 빠지면 절대적으로 학생들과 학원이 손해를 본다. 하지만 이제 막 사회에 나서 보고 살아보려고 하는 나에겐 꽤나 아픈 질문이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입장이 다르듯 나의 입장은 그러하였다. 그런데 나의 마음을 사회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황도 마음도 그저 내 입장일 뿐이다. 그래서 그냥 속상함을 감추고 이렇게만 내 마음을 전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퇴화가 되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는 만큼 더 건강 해 질 일만 남았고, 그런 아픔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그 환경 속에서도 운동 자격증을 따고 버텨낸 정신력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신력으로 제 일에 책임감 있게 가르치겠습니다. 많이 좋아졌고, 앞으론 더 좋아질 거고 만약 이거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다면 전 사실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심이 통했는지 다행히 그 벽의 문은 열렸었다. 그 후로는 사실 내가 아팠던 거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잘 말 안 하게 된다. 말이 길어지게 되고 설명해야 하고 힘이 든다. 그리고 아픔을 말하는 게 괜히 이상한 사람처럼 볼까 봐 쉽지 않다. 우리 가족들은 다 건강하고 선천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오해의 눈빛을 받는 것도 조금은 지쳐서 인지 말을 아끼게 된다. 사실 긴 아픔이 상처가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서 이렇게 글로 쓰는 것도 나에게는 큰 용기였다.
지금도 나는 조금은 불안하지만 모든 일이 "할 수 없다"가 아닌 "할 수 있다"라고 믿으며 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하고 싶은 또 다른 꿈들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좋은 원장님 덕분에 일에서도 인정을 받고 성과가 나오니 그 속에서 행복도 느꼈다.
나는 내가 운이 좋다고 느끼는데 감사하게도 원장님은 회의 때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원장님이 운이 좋으시다고 말씀해 주셨다.
오래 아픈 시간을 보내고 극복하며 수백 시간 동안 성찰의 시간을 보낸 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깨달은 건,
나는 성취를 느끼며 행복을 느끼고 나아가는 사람인데, 오랜 시간 병과 싸우다 보니 성취감 느끼는 일 하나 없이 계속 작아지는 나 자신만 마주하니 자존감도 끝도 없이 낮아져 갔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건강조차 내게 허락되지 않았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사랑은커녕 혐오했었다.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서 스스로의 씨앗을 심어 나무를 가꾸고 나무들이 여럿 생겨 자신만의 아름다운 숲이 생기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만약 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땅 위에서 나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린 것일 수 도 있다.
예전에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지 않음에 많이 자책하고 힘들어했었다.
혹시라도, 만약에 "왜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지"라며 자책하고 있다면 그것을 멈춰야 한다. 사실 그 누구도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원래 어려운 법이다. 원래 어려운 일에 방법을 찾아야지 자책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당신은 너무 가치 있는 사람이라 이 세상 속에서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당신의 역할이 분명 있을 거예요.
어떤 역할을 할지는 누구도 정해줄 수 없어요.
스스로 직접 발로 뛰고 경험하며 얻어가는 것.
힘든 순간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모든 일이 긍정적으로 흐른다.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이 인생이다.
모든 긍정적으로 보고, 힘듦 속에서도 "어차피 사람 사는 거 뭐 다르나"라는 마음으로 힘들어만 하는 인생에 꽃을 피울 수는 없다 생각하고 아무리 어떤 아픔 속 일지라도 스스로 가꿀 씨앗은 품어야 한다.
감사함을 갖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야 행동이 되고 행동들이 습관이 되고 습관들이 모여 좋은 선택을 할 때 "좋은 나"를 만든다.
살아가며 힘들고 아픈 일 있다면 최대한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보다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을 찾고 긍정적으로 앞을 나아가서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가치를 나 스스로 알아 봐 줄 때, 이 땅 위에서 그 가치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모두가 덜 아프고 덜 불행하고 만족되는 삶 속에서 한 번이라도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동은 민첩하게,
생각은 느긋하게,
마음은 충만하게,
욕심은 내려두고,
현재는 감사하게,
받아들이자.
그리고 틈틈이 부지런히 행복하세요.
그런 당신이 될수록 그게 곧 나다워질 거고,
그 안에서 충분히 강하게 자라날 겁니다.
끝으로 저의 아픔을 풀어낸 긴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