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가 자기 뇌를 먹는 거 알아?”
길모퉁이에 세워진 트럭을 보며 여자가 불쑥 물었다. 남자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짐칸을 따라 벌여진 좌판엔 울긋불긋한 멍게가 대야마다 수북했다.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상인은 한 부부에게 방금 쓸어 담은 까만 비닐봉지를 질끈 묶어 건네며 또 다른 할머니와 흥정하는 중이었다.
“그래? 멍게도 뇌가 있었어?”
남자가 고개를 되돌리며 여자에게 되물었다. 팔짱 낀 남자의 손을 당기며 그녀는 멈춰 섰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응. 멍게도 엄연히 동물이니까. 그런데 좀 특이해. 수억만 년 전, 원시적인 뇌의 형태라는데, 유생일 때는 뇌를 가지고 활동을 하나 봐. 그러다 살 곳을 찾아 자리를 잡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버린대. 더 이상 먹이를 찾아 움직이거나 반응할 필요가 없으니까 양분으로 흡수해버리는 거지. 기분이 좀 묘해지지 않아?”
“묘해지다니, 뭐가?”
“그렇잖아? 우린 뭔가 생각하고 느끼면서 마음속에 있는 걸 본질적인 거라고 생각하잖아. 그걸 해내는 게 바로 뇌인 거고. 근데 얘네들에게 뇌는 그저 신체의 일부분일 뿐인 거잖아. 무슨 맹장도 아니고 쓸모없다고 먹어 치워버리다니..... 그냥 먹고 싸는 게 삶의 전부라는 거지. 어쩐지 내가 가진 고민들, 감정들 모두가 우스워지는 기분이야.”
여자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뭔가를 생각해내려는 표정이었다.
“음.... 너무 허무주의로 빠지지만 않는다면 그것도 그리 나쁜 관점은 아닌 거 같은데? 너처럼 너무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감정의 무게 중심을 조금 마음 바깥으로 옮겨둘 필요가 있다구. 멍게가 뇌를 버리고 오직 생리작용에 집중한다고 해서 결코 가볍게 볼 건 아니라는 거지. 실제로도 먹고 싸는 것이야말로 자연계를 지탱하는 핵심이니까. 정신에 대한 우월감은 아무런 근거도 없어.”
남자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여자가 팔짱 낀 손에 힘을 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래서 내가 예민해서 싫어?”
여자의 커다란 두 눈이 남자를 향해 번득였다.
“뭐야, 갑자기... 깜빡이 좀 넣어라.”
멈칫한 남자를 향해 여자는 한껏 고개를 치켜들었다.
“예민해서 싫냐구?”
“야, 싫고 좋고가 어딨냐? 그건 네 일부분인데.”
남자의 말에 여자가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어쨌든 좋은 건 아니라는 거네. 그래 사랑이 이런 거지 뭐....”
“저 봐라, 저 봐. 또 입 나온다.”
“흥!”
여자가 남자의 팔을 뿌리치며 앞서 걸어갔다. 뒤에서 지켜보며 피식거리며 뒤따르던 남자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여자 곁으로 바짝 붙어 섰다.
“예민함만 떼어 놓고선 당연히 말할 수 없지. 그 예민함에 대응하는 너의 그 표정, 너의 그 말투, 너의 그 몸짓을 사랑하는 거야. 각각의 떼어서 멋대로 말하는 건 기레기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너도 너에 관한 나의 말들에다 입에 발린 미사여구나 붙이길 바라진 않잖아?”
말끝에 남자가 다시 여자의 손을 낚아챘다.
“피... 하여간 잘 빠져나간다니까....”
“빠져나가다니! 이런 게 바로 진실의 힘이란 거야.”
남자는 잔뜩 목소리를 깔고는 남은 손으로 여자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여자가 다시 남자에게로 깊숙이 팔짱을 끼어왔다.
“그래도 좀 허무하지 않아? 생각할 뇌가 사라지고 어느 바위에 붙어 흘러드는 바닷물만 삼켰다 내뱉는다는 게.”
다시 여자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었다. 여자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남자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침 모퉁이를 돌아 도로변으로 나서자 시원한 바람이 몰려들었다. 여자의 이마 위로 헐러 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남자가 입을 열었다.
“뭐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멍게는 말하자면 동물로 태어나서 식물의 삶을 지향한다는 거지. 생각할 필요가 없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자연이 되어버린 삶 말이야.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본능적으로 득도해버린 모습이랄까. 인간들 중에서는 극히 소수가 머리 깎고 수십 년을 벽면수행하면서 얻는 것을 태어나자마자 곧 실행에 옮기는 생명체란 거지.”
갑자기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합장을 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지그시 눈을 감고서 자신에게 몸을 굽히는 남자의 모습을 바라보던 여자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남자가 다시 몸을 세우자 여자가 눈을 반짝였다.
“이리와.”
“또 뭐니?”
여자의 의도를 알지 못한 남자가 여전히 손을 모은 채로 물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자가 갑자기 손을 뻗어 남자의 두 볼을 잡아당겼다.
“재롱떠는 모습이 심히 마음에 드니, 내가 너에게 상을 주려한다.”
근엄한 목소리로 말한 다음 여자는 남자의 입을 맞추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