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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Jun 06. 2021

모르는 표정

서버를 채우던 물방울들이 잦아들자, 남자는 드리퍼를 걷어내고 탁자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잔에 커피를 나눠 담았다. 흐린 하늘빛을 머금고 푸르스름하게 광택이 돌던 하얀 자기 위로 금방 흑갈색 물결이 넘실거렸다.

 

채워진 잔 하나를 여자 앞으로 밀어놓고 남자가 자리에 앉았다. 여자는 습관처럼 잔을 들어 툭, 남자의 잔에 부딪히고는 신중한 얼굴로 잔을 들어 올렸다. 먼저 향기를 충분히 들이킨 다음 입안으로 천천히 커피를 흘려보냈다.


휴일 오전, 늦잠 뒤의 늦은 아침, 그 포만감의 여운을 만끽하게 하는 그 고소한 쌉싸름함을 여자는 사랑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런 여자의 만족스런 얼굴을 바라보는 걸 사랑했다.


커피를 즐기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동안, 반짝거리는 여자의 눈은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네 얼굴이 좋아. 딱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야.” 여자의 부드러운 속삭임이 커피 향을 타고 남자에게로 넘실거린다.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자의 얼굴을 살피던 여자가 깔깔거렸다. “이봐, 이봐, 눈 씰룩거리는 거 봐. 아침부터 날 유혹하는 거야?”


“뭐라는 거야.”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다.


“어머.. 좋아해 주니까 건방 떠는 거 봐.” 여자가 앙다문 입술로 남자를 노려보지만 아직 눈가의 웃음은 채 가시질 않았다.


남자의 눈도 여자를 노려본다. “무슨 건방을 떨어.”


“저 봐. 또 씰룩거린다. 자꾸 설레게 할 거야?” 남자가 대꾸 없이 쳐다보고만 있자 여자가 다시 물었다. “딴 여자도 그렇게 보니?”


“그렇게 보는 게 뭔데?” 남자가 느긋하게 대꾸했다.


여자가 고개를 흔들며 다시 물었다. “아앙... 그래서 볼 거야, 안 볼 거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시큰둥한 남자의 대답에 여자의 목소리 끝이 살짝 올라갔다. “뭐야, 그래서 지금 보겠다는 거야?”


화난 척 치켜뜬 여자의 눈매에 남자는 웃고 말았다. “이보세요.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볼지를 도대체 어떻게 알겠어요?” 남자는 여자의 턱을 잡아 살짝 흔들어 목의 힘을 빼고는 손가락으로 여자의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네? 당신은 지금 당신이 얼마나 예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아세요?”


“어쨌든... 조심해. 딴 여자에게 그런 표정 보였다간 아주 눈알을 뽑아 버릴 테니까.” 여자는 새침한 표정으로 다시 커피 잔을 기울였다.


“아이고, 무셔라.” 남자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근데 내가 쳐다보면 누가 내게 관심이나 보인데?” 남자가 여자의 한쪽 손을 잡아 가슴에 올려주며 물었다. “양심에 손을 얹고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말해봐.”


“음.... ”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창 너머로 시선을 돌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창 한쪽 구석에서부터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있었다.


다시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린 여자가 말한다. “그건 아니지. 그게 내가 이 얼굴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걸.” 여자가 남자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두 눈동자는 뭔가 아직 많은 생각들을 끝내지 못한 듯 아련하게 빛나고 있었다.


남자가 피식 웃었다. “그렇지? 가끔 넌 제정신이 아니야.”


여자는 대답 대신 입술을 한번 삐죽 내밀었다.


두 사람은 남은 커피를 마시며 창밖의 구름이 움직이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옅어졌다 뭉쳐졌다 하는 사이 햇살이 비칠 듯 말 듯한 시간이 꽤나 이어지고 있었다.


“산책하기 아주 어중간하고 애매한 날씨네.” 혼잣말 같은 여자의 말에 남자도 혼잣말처럼 대꾸했다. “그러네. 어중간하고 애매하게 산책하기엔 딱 그만인 날씨네.” 벌떡 일어난 남자가 여자의 양 겨드랑이를 잡아 일으켰다. “큭... 간... 간질어.”


현관 쪽으로 남자에게 끌려 나아가는 동안,  여자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What A Diff'rence A Day Made - Eddie Higgins T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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