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허둥지둥 씩씩거리다가 눕는다
우아한 사람을 만나면
일기장에 똘똘 뭉쳐 있는 질투
단단한 게 대단해
당당한 게 당연해
부러움에 움츠리는
내가 가장 또렷해지고
꼬여 있다고 쳐
살아 있다고 쳐
못난 마음 위를 느리게 지나가며
나를 키운다
나라고 우아하고 싶지 않겠어?
그렇게 그냥 살자
살아 있다고 쳐
우아한 사람을 보면 괜스레 미워진다. 분명 나처럼 허둥지둥할 때도 있겠지. 참고 있느라 힘들 거야. 못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 기준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행동이 느린 편이고 조용조용하다. 목소리 톤도 낮은 편이고, 소리도 작은데 자신만의 생각은 또렷이 들린다. 몸짓, 말짓이 대부분 일치하고 자세도 반듯하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럼 모든 걸 다 반대로 해야 한다. 결국 ‘에이, 그냥 살자.’ 하고 말아 버린다.
살면서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단어 1등은 후회, 그다음으로 질투다. 그러나 말했다시피 나는 질투를 정말 많이 한다. 질투를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기 때문에 속으로만 씩씩거렸으니까, 티 내지만 않으면 질투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나를 굉장히 강인한 사람으로 알고 있기도 했다. 그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단단해?” 순간 부끄러워서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지. 질투 나는 거 그까짓 게 뭐라고 아닌 척 그랬을까. 혼자 일기장에 ‘내가 얼마나 많은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있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라고 적었다. 이 얼마나 꼬여 있는 사람의 모습이란 말인가.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부끄러워할 거면서. 질투보다 더 못난 마음을 키울 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기형도 시의 제목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질투들은 늘 자극제였다. 질투가 나면 날수록 내가 더 나아져야 한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분명 질투를 안 했다면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우아한 사람을 향해 가는 중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질투를 지나가야겠지만. 질투는 여전히 나를 키우고 나는 허둥지둥, 우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문장 사이에 피어난 시; 에세이 속 단어 조각을 모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