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뭐 먹지?”
아빠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은 뭘 먹지?”라고 묻고,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은 뭐 할까?”라고 한다. 아니, 이따 생각해도 되잖아!
아빠에게 아침은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더라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눈을 뜨고, 달그락거리며 부엌을 뒤적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챙기는 건 아침 식사다. 아침에 모든 일을 끝내버리는 아빠답게, 아침 식사는 그에게 하루의 시작이자 필수 에너지 충전의 시간인 셈이다.
아빠는 된장찌개의 달인이다. 재료는 정해져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물 재료. 냉동실에는 다시다, 멸치, 그리고 이름 모를 큰 생선 말린 것들이 빼곡하다. 나는 파 뿌리나 큐브 조미료를 주로 쓰기 때문에, 이런 재료들은 철저히 아빠만의 영역이다.
두 번째로 빠져선 안 되는 재료는 두부다. 채소가 한두 개 빠져도 두부만은 꼭 들어가야 한다. 만약 두부가 없다? 아침에 연 마트가 멀거나 없기 때문에 편의점에 가서라도 꼭 사 온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아빠에게 두부는 소울 푸드이자, 평생 동안 몸을 유지해 온 거의 유일한 단백질원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는 참치김치찌개만 알았을 정도로 우리 집 식탁에 고기 들어간 찌개는 거의 없었다. 고기를 잘 챙겨 먹는 나에게 두부는 곁들이는 재료에 불과하지만, 아빠에게 두부는 주재료였다.
그래서 나는 주말이 오기 전에 꼭 두부나 애호박, 버섯 같은 재료들을 사 둔다. “두부 있어?”라고 묻기 전에 “두부 사 뒀어!”라고 말하기 위해서. 아빠의 된장찌개를 준비하는 것이 곧 주말을 준비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빠의 된장찌개 레시피는 사실 간단하다. 냉동실에 있는 재료를 물에 넣고 팔팔 끓여 국물을 낸 뒤, 엄마가 살아 계셨을 때 사두었던 오래된 된장을 두어 스푼 넣고 쌈장을 살짝 가미해 채소와 두부를 숭덩숭덩 썰어 넣으면 완성.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채소와 두부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써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아빠의 요리는 마치 파인다이닝처럼 느껴진다. 재료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고, 국물량을 조절하느라 그릇과 조리도구가 여러 개 줄지어 있다. 그런 아빠의 주방에 간섭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바로 나다.
1~2인분 뚝배기에 늘 3~4인분을 만들어내는 아빠이기에,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주방으로 가 “이러다 넘쳐!” 하고 간섭하기 일쑤다. 그러면 아빠는 두 손으로 바닥을 누르는 제스처를 하며 “가만있어, 가만있어” 하곤 한다. 그러나 결국 국물은 넘치고 만다. “거봐!” 하고 투덜대는 나에게 아빠는 그냥 괜찮다고만 할 뿐이다.
아빠의 된장찌개에서 또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건 쌈장이다.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 넣는 쌈장 때문에 설거지할 때마다 싱크대에 장 냄새가 배어든다. 뒤늦게 그 냄새의 원인을 알고 넣지 말라고 했지만, 아빠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그게 바로 아빠 된장찌개의 ‘킥’인 것 같다.
이런저런 참견과 잔소리, 작은 논쟁 끝에 완성되는 주말 아침 아빠의 된장찌개. 나도 동생도 “안 먹어!”라고 하면서도 늘 한 숟가락에 “캬” 하고 감탄하고 만다. 살짝 매콤하고 얼큰한 향이 된장찌개의 감칠맛과 어우러져 몸속을 뜨겁게 데우는 맛. 누구나 아는 맛이지만 우당탕탕 짜증을 부리고 어쩌고저쩌고했던 기억들도 사라지는 맛이다. “아빤 이제 달인이네!” 하는 말에 아빠는 멋쩍은 듯이 웃는다.
매번 나의 간섭에도 아빠는 자신만의 된장찌개를 고집스럽게 끓여낸다. 끝없는 창과 방패의 싸움. 아닌가? 어쩌면 둘 다 창을 들고 서로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영역은 뭐지? 짜증의 영역? 불효녀의 영역?
그래서였을까. 내가 너무 간섭하고 짜증을 부린 탓인지, 요즘 아빠는 된장찌개를 끓이지 않는다. 아마도 더 이상 내 간섭을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아빠는 이제 눈 감고도 된장찌개를 끓일 경지에 이르렀다. 대신 최근엔 가지조림이나 두부조림 같은 밑반찬, 양배추 피클, 겉절이, 고추장아찌 같은 손이 많이 가는 고급 반찬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말이다. “뭘 보고 하는 거야?” 물어도 절대 안 알려주는, 아빠만의 비밀 레시피가 있는 게 분명하다.
가끔 집에 친구가 올 때, 나도 아빠처럼 된장찌개를 끓여본다. 넘쳐흐르며 끓어오르는 찌개를 보고 있으면 아빠와 투닥거리던 대화가 떠오른다. 여기저기 튀고 지저분해 보여도, 속은 꽉 찬 된장찌개는 우리의 주말을 닮았다. 조금 번잡스럽고 불완전할지라도, 그 속에 담긴 정성만큼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