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우리 집은 환해진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기를 돌리는 아빠 때문이다. 나도 아빠의 습성을 약간 닮아서 아침형 인간에 가깝지만, 아빠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특히 청소의 영역에서는 더더욱.
우리 집에는 하얀 털을 가진 강아지 ‘비누’가 함께 산다. 비누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서 창밖의 작은 인기척에도 짖기 일쑤다. 그래서 아빠는 청소를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일종의 청소 시작 신호다.
“비누 좀 잡아!”
비누를 잡고 있는다고 해서 짖지 않을 것도 아니거니와, 나는 이미 비몽사몽이라 7킬로가 넘는 비누를 안고 있을 힘이 없는 상태다. 그렇지만 아빠는 늘 같은 말을 반복하며 비누를 내 방에 들이밀거나, 계속 비누를 신경 쓴다.
“조용! 저기 가 있어!”
하지만 그런 아빠의 말과 행동은 비누를 더 자극할 뿐이다.
월월 짖는 비누 소리와 아빠의 청소기 돌리는 소리. 아름다운 주말이다.
먼지 통을 비우는 것이 청소의 첫 단계다. 우리 집 먼지 통에는 언제나 하얀 털과 회색 먼지가 가득하다. 비누의 하얗고 긴 털이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먼지 통을 비우며 “얘 털 좀 어떻게 하라니까”라고 푸념한다. 난 심드렁하게 “어~” 하고 만다. 하얀 털 강아지랑 사는 숙명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빠의 반복되는 말들이 추임새처럼 들린다. “얘 털 좀 어떻게 하라니까”라는 이 말을 나는 “사랑스러운 우리 비누”라고 받아들인다. 그냥 그렇게 듣기로 했다.
먼지 통을 비우고 나면 아빠는 청소기 헤드를 분리해 약간 짧게 만든 다음, 소파 사이와 아래,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을 찾아 먼지를 빨아들인다. “거기까지 한다고?” 싶은 곳까지 구석구석 청소하는 아빠를 보면 ‘청소 컨디션’을 알 수 있다. 아빠의 청소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청소기가 닿는 범위가 거실을 넘어 베란다, 다용도실, 현관까지 확장되기도 한다. 아빠의 손길이 닿는 모든 곳은 말끔해진다.
다음 단계는 일반 청소기 헤드로 집 안 전체를 훑는 것이다. 화이트 그레이 톤의 바닥인 우리 집은 머리카락 하나도 잘 보여서 큰 먼지는 내가 찍찍이로 대충 치우곤 하지만 아빠는 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
“바닥이 지근거려.”
이 말은 “청소 좀 제대로 해라”는 뜻이다. 난 “괜찮은데?”라고 대꾸하지만, 아빠는 곧장 청소기를 들고 더 강력한 헤드로 바닥을 밀어버린다.
아빠는 물걸레 기능이 있는 청소기 헤드를 마지막에 사용한다. 사실 나는 청소기를 돌릴 때 물걸레 기능이 합쳐진 헤드만 써오고 있다. 그게 더 편하기도 하고, 사실 헤드를 바꿔가며 청소하는 게 매일 하는 건 좀 귀찮으니까… 반면 아빠는 늘 일반 헤드로 먼지를 완벽하게 제거한 후, 물걸레 청소를 시작한다.
재미있는 모습이 하나 있다. 일반 헤드를 쓸 때 아빠는 다소 거칠고 절도 있는 몸짓으로 청소기를 돌린다. 그런데 물걸레 헤드를 쓸 땐 부드럽고 천천히 움직인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어찌나 웃었는지. 청소에 몰두한 아빠는 요리하는 아빠만큼 건들 수 없다. 비누가 더 짖기 전에 안고 들어와 침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게 나의 일이다.
청소할 때마다 이렇게나 진지하게 집 안 구석구석을 돌보는 모습이 내겐 재미있기도 하고, 가끔은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빠는 청소를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예전에는 주말에만 오는 아빠가 우리 집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줄 알았다. 엄마가 아플 때 움직이기 힘드니까 도와주는 걸로만 알았다. 나도 깔끔한 걸 좋아하는 터라 청소나 정리 정돈에 예민하게 구는 편이지만, 아빠는 유난히 청소에 진심이다. 눈앞에 생기는 머리카락이나 먼지를 바로 떼기 위해 테이프를 동그랗게 뒤집어 말아 거실 테이블이나 냉장고 옆에 붙여두기까지 한다. 찍찍이로 한꺼번에 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곳곳에 바로 치울 수 있는 도구를 두는 셈이랄까.
청소에 대해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아빠는 “자기 자리가 제 모습이지”라는 말을 한 적 있다. 자고 일어나면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정리해야 하고 머물던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곱씹어 보면 아빠에게 청소는 단순히 집 안을 정리하는 것 이상이었다. 아빠는 청소를 통해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공간을 정리하며 마음을 다잡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먼지까지 쓸어내는 의식 말이다.
젊은 시절 사업에 실패한 뒤 아빠는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건설 현장, 도배, 공장 등 아빠가 서 있던 자리들은 언제나 변했지만, 그 모든 곳에서 나름의 질서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어디서 생활했는지, 어떻게 지내왔는지 꼬치꼬치 캐물어도 절대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는 아빠는 자존심도 정말 강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나의 상상에 불과하지만, 그런 아빠에게 청소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었을 거다. 분명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지저분한 이불을 덮어도 깨끗한 호텔 이불처럼 접어 놓았을 것이고, 뜯어진 장판이 있어도 무엇으로든 깨끗이 닦아 놓았을 것이다.
넓은 집으로 이사한 뒤, 아빠가 자주 하던 농담이 생각난다.
“집이 너무 넓어서 청소가 힘드네~”
아빠의 주말 자리가 된 우리 집이 오늘도 환하게 반짝이는 이유는 아빠가 자신의 삶 일부분을 닦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우리의 자리’를 환하게 닦아주는 아빠가 있기에 나는 오늘도 주말을 기다린다. 그저 청소하는 시간일 뿐인 일상이 또 다른 대화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