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토요일은 아빠가 오는 날. 주말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의 방문은 이제 내 일상이 되었다.
“오늘은 아버지 오셔?”
친구들이 나의 주말 일정을 물을 때면, 그들은 꼭 아버지의 존재를 함께 묻곤 한다. 평일 동안 나는 혼자 집을 지키고, 아빠는 일하는 곳의 숙소에서 생활하다가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나의 안부는 아빠의 집 방문 여부와 함께 연결되어 있다.
꽤 오랫동안 엄마아빠는 주말 부부로 살아왔다. 정확한 시작은 몰라도 내가 20살 무렵이라고 치면 약 13년 정도다. 그리고 그 시간은 엄마가 신장 투석을 받으며 투병한 기간이기도 하다. 부부 사이가 좋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말은 늘 아빠가 가족이 있는 집으로 오는 시간으로 오랫동안 굳어져 있었다.
2020년 엄마가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그 뒤로 나는 주말 부부의 바통을 이어받아, 주말 부녀의 삶을 살고 있다.
엄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당뇨 합병증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한 쪽 다리만 갖게 된 엄마를 간병하기 위해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주말 부부가 아닌 매일 부부의 삶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그 선택을 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엄마가 떠나고 말았다. 엄마의 장례식을 마치고 아빠는 퇴사를 취소한 뒤 다시 주말의 아빠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엄마 없는 주말에 적응해 가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주말 부녀가 된 우리는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엄청나게 슬퍼하지도, 서로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나누지도 않았다. 각자 알아서 슬픔을 품고, 주말마다 그저 열심히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옛날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빠를 발견하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처음 몇 달은 엄마의 흔적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집은 온통 아픈 엄마를 위한 공간으로 맞춰져 있었다. 나는 10대 때부터 늘 엄마와 잠을 잤다. 어릴 땐 내 방이 없어서였고 나중에는 엄마가 밤새 안전한지 보초 서는 개념으로였다.
그래서 아빠는 항상 방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잤다. 거실이 없던 좁은 집에서는 주방도 거실도 아닌 공간에 이불을 폈고, 넓은 집으로 이사한 후에도 거실 한가운데에서 TV를 켜고 누웠다.
그날도 주말마다 집에 돌아온 아빠는 방이 아닌 거실 한복판에 이불을 깔고 TV를 켠 채 잠을 청했다. 나는 의아한 생각에 불을 켜고 잠드는 이유를 물었다
“이제 방에서 자도 되는데 왜 자꾸 여기서 자?”
아빠는 이렇게 답했다.
“무서워.”
엄마의 마지막을 본 그날이 자꾸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맞다, 아빠는 엄마의 마지막을 본 유일한 사람이다. 엄마가 숨이 멎기 전까지 손을 주무르고, 병실을 지켰으며 갑작스럽게 심정지가 와서 ‘코드 블루’ 방송이 나오고 심폐소생술을 하며 중환자실을 내려가는 것을 모두 지켜본 것 또한 아빠였다. 정신없이 엄마를 잘 보내는 일에만 신경 썼던 나는 그제야 처음으로 아빠를 조금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 아빠 무서웠구나. 힘들었구나.
자신의 상처나 아픔에만 몰두하느라 아빠도 나도 서로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아빠는 “그동안 고생했다”라는 말로 오랜 시간 아픈 엄마를 돌봐 온 나를 격려해 주려 했고, 나는 엄마를 책임지지 못한 아빠를 탓하고 미워하는 데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썼다.
주말마다 아빠와 조금씩 더 친해지는 기분이 든다. 진짜 아빠랑 사는 느낌이다. 아빠는 내가 중고등학생 때는 전국을 떠도느라 어린 시절 외에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내게 아빠의 이미지는 너무 많아서 정확하게 어떻게 아빠를 생각해야 할지 헷갈린 적도 많다.
내게 아빠란,
아주 어릴 때는 화 한 번 안 내고 다정하기만 한, 뭐든 다 해주는 사람이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갑자기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20대 때는 주정뱅이였다가, 마라토너였다가, 여전히 낭만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에 아빠를 향한 미움으로 똘똘 뭉쳐 있던 나에게 말했다. 그때 나는 철저히 엄마의 편에서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 잘못이 아냐.”
엄마는 이 모든 아픔은 당신이 몸 관리를 소홀했고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아빠와 아빠 식구들을 모른척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게 참 이해가 안 돼서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내내 아빠를 째려보고 있었다. 동시에 아빠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게 엄마의 바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아빠를 용서할 자격이 있는가? 물으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나의 아빠, 진형.
주말 부녀 속에서 아빠의 이름을 발견한다.
내게 진형이라는 이름은 아버지라기보다 한 사람, 낯선 누군가다.
주말 부녀의 이야기는 아빠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 나의 노력이자, 아빠를 새롭게 발견하고, 아빠와 처음 친해진 딸의 고백이다. 나와 아빠 사이에 흐르는 복잡한 감정의 끈을 따라 아버지로서의 진형,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진형을 찾아가는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