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는 같은 주제로 자주 부딪쳤다. 어렵게 대학에 가더니 위대한 시인이 되겠다며 술만 먹고 다니고 ‘딴짓’만 일삼는 나를 보며 늘 이렇게 말했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아.” 그 말이 왜 그리 듣기 싫었는지, 나는 속으로 반발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딘가 마음이 복잡해졌다. 평범한 삶이란 무엇일까? 평범함은 정말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걸까?
나는 엄마가 말한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으라’는 조언이 마치 나를 위해 정해 놓은 목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것을 따르지 않는 내 모습을 변명하고, 내면의 불안을 가리려고 애썼다. 치열하게 공부해서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보내고, 그러다 가끔 여행을 가는 그런 ‘평범함’. 내겐 그 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세상에 ‘남들처럼 사는 길’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고, 그래서인지 스스로 그 길을 피해가려고 애썼던 것 같다.
대학 시절 나는 아르바이트와 장학금, 학자금 대출로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주말에 쉬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운 좋게 학교 도서관 근로를 하면서는 공강 시간을 근로 시간으로 채웠다. 공강이 많을수록 용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근로 시간을 늘렸다. 다음 달은 여유로울 것이라는 커다란 착각 속에서. 여유로운 달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방학이면 국내외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친구들이 신기했고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는데 명품 지갑이나 가방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이 이상해 보였다. 그들이 걷고 있는 길과 내가 가는 길은 조금 다르다며 막연하게 생각했다.
평범한 일상이라고 불리는 삶은 내게 늘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만의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다독였다. 평범한 길이 아니어도, 그 길에서 찾을 수 있는 나만의 의미가 있기를 바랐다.
어느덧 나도 나이가 들고, 평범하다는 말이 그리 무겁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삶이 지나치게 다이내믹하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안정감과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와 함께 주말을 보내면서, 내가 그토록 거부하던 ‘평범함’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주말 부녀다. 주말마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빠는 주말 아침저녁마다 함께 먹을 음식을 차리고, 나는 아빠와 함께 주방을 오가며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주말 부녀라는 루틴은 크게 변화가 없다. 아침이면 아빠가 청소기를 돌리고, 우리는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커피나 차를 마신다. 내가 커피를 내릴 때 “냄새 좋다!”라고 하는 아빠의 목소리는 덤이다. 오후에는 가까운 시장이나 다이소에 가서 필요한 것을 사거나 저녁에 비누를 데리고 집 근처를 산책하기도 한다. 어쩌면 반복적이고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이 일상에서 나는 평범의 소중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평범함’이란, 꼭 거창한 것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오히려 매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애써 찾아 헤매던 평화일 수도 있다는 것을. 평범함이란, 결국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소박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이 진실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아버린 것은 아닐까.
주말 부녀로 살면서 나는 내 안의 평범을 발견해 나간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소한 일상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라는 아주 뻔한 사실을 말이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아.”
엄마의 말은 여전히 내게 강하게 남아 있지만, 그 의미는 예전과 달라졌다. 엄마가 바랐던 ‘평범한 삶’이란 단지 안정적인 직장이나 부유한 생활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매일매일을 건강하게 살아내고, 사랑하는 사람과 반복되는 하루를 나누는 것. 그것이 엄마가 말한 평범함의 진짜 의미였을지도.
이제 나는 ‘남들처럼 살아야지’라는 말이 단지 현실적인 타협이 아닌, 오히려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위로와 안식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난 여전히 아빠와 함께 맞이할 다음 주말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