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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Oct 26. 2024

열 네 번째 주말, 주말을 돌보는 집

몇 살 때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가장 아끼던 곰 인형이 하나 있었다. 진한 갈색, 푹신하고 부드러운 촉감, 그리고 내 몸만 한 크기였다. 그 곰돌이를 끌어안고 자는 건 나의 일과이자 습관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포대기에 싸서 곰돌이를 업고 다녔고, 마치 나만의 아기가 생긴 듯 돌보는 흉내를 내며 지냈다. 아빠가 그런 나를 보며 한 일은 ‘곰돌이 집 만들어 주기’였다.


아빠는 한동안 알맞은 크기의 박스를 구하러 다녔고 며칠이 걸렸는지는 몰라도, 그 곰돌이만을 위한 인형의 집이 완성되었다. 커다란 개집처럼 생긴 박스 안에 곰돌이를 조심스럽게 눕혀 두고, 나는 밤마다 “잘 자”라고 속삭였다. 그 집 안에서 곰돌이는 내 보호를 받으며 잠들었고, 아침이면 그 집을 나와 나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그 인형은 나의 첫 인형 친구이자 돌봄의 대상이었으며 아빠가 만든 작은 박스 집은 내가 마음을 둔 첫 번째 집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집’이란 누군가를 돌보고 보호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레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집은 내가 아끼는 곰돌이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아빠가 나를 돌보는 모습과도 겹쳐 보였다.


아빠는 늘 나의 집이었다.


그림으로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무렵부터 내가 머릿속에서 그렸던 ‘살고 싶은 집’의 모습은 항상 비슷했다. 창이 넓고 큰 이층집. 2층에는 다락방이 있어야 했고, 마당에는 연못이 자리 잡고 있어야 했다. 돌멩이로 사방을 두른 연못 한가운데에 물고기가 헤엄치며 커다란 나무와 벤치까지 있다. 전형적인 전원주택의 모습. 아빠와 나는 종종 그런 집에 대해 상상하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빠는 “그 집에 꼭 살자”고 말했다. 그 말속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한 공간에서 안전하게 지내길 바라는 아빠의 다짐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더 이상 꿈꾸는 집을 이야기할 여유가 없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내게 집은 따스하고 넓으며 가족의 웃음으로 가득 찬 안락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에서 떠나야 했다. 122동. 내 유년의 전부였던 그 집을 떠날 때, 우리는 그 집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요한 이별이었다.


그 후로 우리의 집은 반지하 또는 곧 재개발될 오래된 빌라였다. 낮은 천장, 습기 가득한 공기, 많은 벌레, 한 번 창문을 열면 외부의 소음이 그대로 밀려 들어오는, 불안하기만 한 공간들. 아빠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가족을 지켜주려 했지만 아쉽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빠가 집 밖을 떠도는 사이 집이라는 공간에는 나와 동생, 그리고 엄마만이 집에 남아야 했다.


야간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다 보니 당뇨 합병증으로 신부전증을 얻은 엄마는 점점 병약해졌고, 나는 엄마를 돌보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곰돌이를 돌보던 어린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돌봄이었다. 난 20대의 절반을 술 아니면 글, 절반은 엄마 걱정으로 채웠다. 나는 초등학생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내 방을 가져본 적 없는 채로 아픈 엄마를 돌봐야 했고, 동시에 스스로를 돌보아야 했다.


혼자 일기 쓸 공간이 필요하면 카페로 나가야만 할 때, 혼자 영화를 보며 잠들고 싶을 때마다 동생과 나눠 쓰는 방안에서 ‘나 여기서 영화보다 잘 거야!’ 하고 소리치며 신신당부해야 할 때, 행여나 남자 친구에게 전화라도 올라치면 잠든 엄마가 깨지 않게 몰래 일어나 다용도실 세탁기 앞에 쪼그려 앉아 전화를 받은 날…. 집을 생각하면 억울한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이란 무엇일까? 이 집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의 빈자리가 오히려 감사한 이 좁은 집에서 나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 그렇게 “집”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서글프고 외로운 돌봄의 장소였다.


보통의 집안에 살아가는 친구들이 부모님과의 이런저런 사소한 고민을 토로할 때, 나는 그저 가만히 듣고 있는 수밖에 없다. 그렇구나. 아빠가 집에 있다면 저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군. 엄마가 아프지 않다면 저런 일상을 보내겠구나. 상상해 보는 수밖에. 보통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집은 보호와 애정을 제공하는 곳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집은 보호라기보다는 생존의 장소에 가까웠다.


지금 아빠와 나는 또 하나의 새로운 집, 주말을 함께 나누고 있다.


우리가 마주하는 주말의 집은 이제는 나의 집이자 아빠의 집이기도 하다. 아빠는 여전히 한때 곰돌이 집을 만들어주던 그 다정함을 지니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의 일방적인 보호자는 아니다. 아빠와 나는 서로를 돌보는 관계로 변해가고 있다. 아빠는 주말마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이런저런 음식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이 집에서 나는 아빠와 함께 주말을 보내며 나만의 일상을 지켜간다. 우리가 오랫동안 꿈꾸던 창이 넓고 2층이 있는 집, 마당에 연못이 있는 전원주택은 아니지만 이곳은 내가 선택한 공간이다. 곰돌이를 재우던 작은 박스 집에서 시작된 돌봄의 연습은 아빠와 서로를 돌보는 지금으로 이어졌다.


나에게 집은 여전히 ‘돌보는 곳’이다.

어릴 적, 아빠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작은 곰돌이 집,

내가 아빠가 없는 동안 엄마를 돌보았던 좁은 집,

그리고 억울한 질문으로 가득 채웠던 빈 마음,

이 모든 것을 품고 내가 나를 돌보는 집이다.


집이란 무엇일까? 집은 때로 보호의 장소였고, 때로는 생존을 위한 공간이었으며, 지금은 아빠와 나의 추억과 미래가 함께 얽혀 있는 하나의 장소가 되었다. 이 집에서 나는 나의 곰돌이 인형을 안아주는 마음으로 주말을 맞이한다. 집은 단순히 한 공간을 넘어 일종의 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아빠와 내가 함께 지켜가는 주말이라는 시간이야말로 아빠와 나의 삶을 다시 이어주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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