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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Oct 25. 2024

열 두 번째 주말, 아빠 진형

“우리 진형이.”

고모는 항상 우리 아빠를 이렇게 부른다. “느이 아빠가 어릴 때 얼마나 착했는 줄 알어” 라며, 막내 동생과 가장 가까웠던 시절을 우리에게 들려줄 때 빼고는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시 낯설어진다. 진형. 아빠가 아닌 진형이라는 이름은 내게 어색하다. 이름을 들을 때마다 아빠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어느덧 아빠가 진형으로 산 삶보다 내 아빠로서의 삶이 길어졌기 때문일까? 진형이라는 이름 속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한 인간이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다.


진형은 굉장히 곱게 자란 사람이다. 내가 아는 진형은 어린 시절에 배고픔을 몰랐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삶을 살았다. 그런 진형이 도시로 상경해 순박한 시골 처녀와 가정을 꾸렸고, 자신과 닮은 얼굴을 한 딸과 아들을 데리고 자신의 삶을 나누었다. 그 사이에도 그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자라났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원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진형은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실패란 없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완전히 뒤집혔다. 진형은 성공의 경험만 있는 도시 남자였고 무언가 어긋나는 일은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그러다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이 그를 집어삼켰다.


진형은 이름도 버리고, 그저 떠돌았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동안, 진형은 전국을 떠돌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노가다, 막노동, 숙식 제공되는 일자리가 있으면 어디든 찾아갔다. 취향도 확고하고 취미도 많았던 진형에게는 더 이상 선택할 권리나 여지가 없었다. 몰락한 진형의 삶에 대해 나는 그저 가늠하고, 상상해볼 뿐이다.


진형.

그 이름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鎭衡. 진할 진, 저울대 형. 진형에게 이름 뜻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형평이 진정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


물론, 그건 아빠의 뇌피셜이라는 말과 함께였다. 그런데 그 말에는 그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가 담겨 있었다. 세상을 공정하게 보고, 모든 것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마음. 그러나 그의 삶 속에서 그 균형이 얼마나 흔들렸는지를 떠올리면, 왜인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진형은 무너진 삶 속에서도 그 균형을 찾으려 했을까? 진형이라는 이름이 그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을까? 아니면 그 이름 덕분에 세상과 어느 정도 타협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그날은 오랜만에 아빠를 보러 가자며 엄마와 동생, 친할머니까지 나섰던 날이었다. 북적이던 모란시장 안을 걸으며 구경했던 이런저런 풍경이 떠오른다. 개들이 빽빽하게 갇혀 있던 철창, 먼지 날리며 배달 다니는 사람들, 시끄럽게 호객하는 상인들... 우리는 골목을 지나 녹두를 직접 갈아 부쳐주는 빈대떡 집에 앉아 이런저런 안주 거리를 시켜 먹었다. 무슨 맛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그 정신없는 공간에서 숨 막히게 적막이 감돌던 우리 가족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식과 아내를 내버려두고 떠도는 남편을 오랜만에 만나 무슨 다정한 얘기를 할 수 있었겠는가.


진형은 어머니와 아내, 자식들을 데리고 자신이 새로 일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산 중턱이었는지, 초입이었는지, 그저 동산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외딴 숲속에 비닐하우스가 그의 숙소였다. 층고가 높고 부엌까지 마련된, 집에 가까운 비닐하우스였다. 진형은 소나무를 키운다고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나무도 키워 판다는 걸. 물론 그의 땅도 사업도 아니었지만, 진형과 참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어떤 감정으로 그 시간을 견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 소나무 숲 한가운데에서 잠든 진형을 떠올리곤 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 진형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은 눈물 많고 무거운 짐을 진 아빠의 모습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진형도 한때는 해맑은 호기심 가득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건 마치 소설을 쓰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지나가듯 들려준 이야기나 그가 남긴 사진을 보면 조금은 가능해진다.


진형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출장 갔을 때, 사막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그 사진 속 진형은 젊고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광활한 사막 배경 앞에서 그는 마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때의 진형은 사막에서 새로운 기회를 꿈꿨을까? 아니면 그저 하루하루를 견뎠을까? 젊은 시절 사진 속 진형은 잠자리 안경을 쓰고 있는데, 그 안경에서조차 자신만의 취향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것 같아 피식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사진이 떠오른다. 진형은 나와 동생이 신생아였을 때 일력 달력을 찢어 매일매일 이불 위에 올려놓고 달력과 함께 사진을 찍어 두었다. 한 달 정도, 그러니까 우리는 신생아 시절 사진이 30장 정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 삶의 시작을 기록하려는 듯 선명한 숫자가 더 먼저 보이는 사진을 볼 때면 엄마는 칭얼거리고 고집스럽게 달력을 찢고 사진기를 챙겨 드는 진형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프로 기록러였던 진형. 만약 그가 지금 이제 막 아빠가 된 30대라면, 아마도 극성스러운 육아 인플루언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진형은 여전히 자신의 이름처럼 균형을 찾고 있는 듯하다. 아빠라는 위치와 진형이라는 한 개인 사이에서, 또는 노동자와 자유 사이에서. 그의 삶을 관통하는 기다란 저울대가 그를 괴롭히지 않기만을 바란다. 저울대는 어느 순간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그걸 일자로 유지하려는 힘을 주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저울질할 수 없는 무의미한 저울이 될지도 모른다. 그대로의 진형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저울대가 기울면 기우는 대로, 빳빳하게 멈춰 있으면 멈춰 있는 대로, 그저 그 자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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