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과 저녁을 먹고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을 함께 걷는다. 오늘도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섰는데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이 맞이했다. 일기예보에선 저녁에 비가 오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금세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날씨였다. 그때, 남편은 묻지도 않은 말에 대답하듯 말했다. “비 오면 비 맞으면서 집에 가지 뭐” 그리고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먹빛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갑자기 벼락이 칠 것 같은 두려움이 스쳤고, 나는 그 불안을 남편에게 고스란히 털어놓았다. “갑자기 벼락이 치면 어떡하지?” 남편은 피식 웃더니, “무슨 벼락이야”하며 내 손을 붙잡고 빨리 걸어가자고 부추겼다.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일상 속에서 불안과 공존하며 살고 있다. 산소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듯, 불안도 내 안에서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불안하다는 건 어쩌면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삶이 순조롭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불안이란 손님이 자주 찾아오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
예전에 지피티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리움’이라고 말했다. 기억과 시간, 관계, 실재하지 않은 대상까지 얽혀 있어, 같은 단어를 써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무게와 온도를 지닌 감정이 그리움이라고. 그래서 묘사는 가능해도, 마음속 ‘그리움’의 결까지는 따라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 대답 이후, 지피티는 내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가장 어려운 감정은 무엇인가요?” 나는 ‘행복’이라고 했다. 행복은 늘 혼자 오지 않고, 부산물의 감정-불안과 두려움, 상실의 예감-이 뒤따라와서 자꾸 탁해진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떠날까 봐, 행복이 클수록 그만큼 불안도 함께 커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행복을 온전히 누리는 데 서툴다. 그런 감정이 찾아오면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고, 언젠가 사라질 것만 같아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오늘 저녁, 남편이 내 손을 붙잡고 운동장을 몇 바퀴 함께 걷는 동안 언제 그랬냐는 듯 불안이란 손님은 자취를 감췄다. 곁에 누군가가 온전히 함께 있어 준다는 것, 그리고 운동장을 걷는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마음을 조금은 덜어준 것 같다.
동행의 위로가 깊이 스며드는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