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폭염주의보 안전안내문자 알림이 오고 있다. 여름을 호기롭게 맞이해 보겠단 마음은 밖을 나가자마자 잠적해 버렸다. 순간 눈사람이 된 듯, 나는 내리쬐는 뙤약볕에 천천히 녹고 있었다. 출근해서 거울을 보니 앞머리가 다 젖어 있었다.
'이래서 내가 여름에 앞머리를 안 잘랐는데'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에어컨을 튼다. 창문 하나 없는 회사의 내 방에 애정이 가질 않았는데, 완연한 여름이 오고 나니 사랑이 절로 샘솟는다. 볕이 들지 않는 완벽한 그늘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두 시간 동안 시원한 곳에서 일을 하며 다시 여름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던 탓일까. 점심을 먹고 밖을 보니, 또 산책할 용기가 생겼다.
양산 챙기니까 괜찮겠지? 1층에 도착하자마자 숨 막히는 듯 더웠지만, 양산을 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양산을 피고서도, 눈은 분주하게 그늘을 찾고 있었다. 그 더운 날, 산책 종착지는 결국 카페였다. 시원한 커피를 포장했지만 한 손엔 양산, 한 손엔 카드 지갑과 아이스커피를 들고 산책하는 게 다소 불편함이 있었다. 하필이면 오늘 얕은 주머니가 있는 치마라, 손을 도와줄 수 없었다. 이렇게 불편한 와중에 내일은 미니 선풍기까지 동참시키려는 내 계획성에 넌덜머리가 났다.
여름을 잘 나는 방법?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여름을 외면하지 않으려 했다. 장마는 발만 담그고 떠났고, 무더위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마음은 열었지만, 두 팔 벌려 맞이할 용기는 없었다. 즐기지 못한 지금을 기록하는 내가 애석할 따름이다. 그렇다고 에어컨 그늘 밑에서 피하고만 있자니, 그것도 여간 찜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하는 여름 음식을 부지런히 찾아 먹어야겠다. 수박, 복숭아, 자두, 콩국수, 냉면, 밀면, 블루베리, 토마토, 참외, 감자, 삼계탕.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여름을 사랑하는데, 내겐 음식만 한 게 없다. 그러고 보니, 저녁에도 후식으로 토마토를 챙겨 먹었다. 내일 여름의 문은 무엇으로 열어볼까? 블루베리? 토마토? 역시 금세 행복해지는덴 음식만 한 게 없다.
뜨거운 마음을 품고 다가오는 여름에 아직 뒷걸음치기도 한다. 열린 마음으로 여름을 나다 보면, 나만의 계절 사랑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양산과 선풍기로 여름에게 한 발자국 다가서는 법을 배우고, 계곡과 시원한 음식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