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멍이 짠이와 24시간》 #6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 건 5년 전이다. 2019년 여름. 독립을 한 이후 작은 원룸과 투룸을 몇 군데 거쳐 살다가 가게 된 첫 아파트였다. 깨끗한 신축에 첫 입주, 저렴한 임대료, 지하주차장, 단지 내 작은 산책로…. 전에 살던 곳과 어떤 것을 비교해도 좋은 것 투성이었지만 그중 가장 좋았던 건 짠이가 좋아하는 공놀이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넓은 공간이 생겼다는 거였다.
아파트는 9세대가 T자 모양으로 자리한 복도식이었고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와 가까운 정가운데에 위치했다. 이미 양 옆집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세대가 입주를 해 있는 듯했다.
낯선 곳에 가면 으레 그렇듯 짠이는 긴 시간을 들여 집안 곳곳을 탐색했다. 구석구석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맡았다. 한참 뒤 짠이는 화장실에 들어가 내가 찾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는 듯 늠름하게 영역표시를 했다. 새 아파트라 아무런 냄새도 안 날 텐데 어떻게 아는 건지 인간인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기특하고 영특함에 아낌없는 칭찬을 해드릴 밖에.
그렇게 짠이는 새로운 집에 적응을 해갈 터였다.
사건은 며칠 뒤에 일어났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가운데 호수인 우리 집 현관문이 바로 보이는데 그날은 회색 현관문에 뭔가 붙어있는 게 보였다. 쪽지였다. 쪽지에는 연륜이 묻어나는 글씨체로 강아지가 짖어서 못 살겠으니 어떻게 좀 하라는, 계속 그러면 신고하겠다는 항의가 노여움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 쪽지를 읽은 내 심장은 곧바로 크게 뛰기 시작했다.
등 뒤로 현관문이 닫혔고 짠이가 집에 돌아온 집사를 반기며 달려들었다. 나는 그대로 짠이를 안아 쪼그려 앉은 채로 짠이를 내려다봤다. 가슴팍을 묵직하게 누르는 짠이 때문에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잘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며칠에 거쳐 외출하는 것처럼 다녀오겠다고, 금방 오겠다고 단단히 이르고 나가 짠이의 반응을 살폈다. 5분, 10분, 30분. 나간 직후에야 낑낑댔지만 이내 잠잠해졌고 다른 말썽은 없었다. 1~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녔던 지난 시절, 그때마다 치렀던 의식 같은 것이었고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잘 치러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뒤 쪽지를 받았다. 짠이와 살면서 이런 식의 쪽지, 아니 항의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왜 짖었어? 불안했어? 많이 짖었어? 얼마나? 누가 썼을까? 옆집? 윗집? 아랫집? 많이 화나셨을까? 정말 신고할까? 그럼 나는 쫓겨나나? 집에 쫓아오진 않겠지? 해코지하면 어떻게 하지?
나 없는 사이 짖어댔을 짠이와 쪽지를 남긴 누군가 대한 물음표 그리고 그 ‘정체 모를’ 누군가의 쪽지가 가져온 불안과 무서움이 쿵쾅대는 가슴 위로 어지럽게 솟아났다. 혼자 살다 보면 별 게 다 무서운 법이다. 평화의 메시지가 붙어 있어도 무서울 판인데 오죽하겠는가. 스릴러 쪽으로 펼쳐지던 상상의 나래는 동생들에게 이 일을 털어놓으며 조금씩 잦아들었다. 곧 진정을 되찾았다.
어쨌든 짠이는 짖었고 그 소리에 누군가가 힘들었다. 나는 사과를 해야 했다. 문제는 사과할 대상을 특정할 수 없다는 거였는데 보통 이런 성격의 쪽지가 그렇듯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 할까. 벽을 마주하고 있는 양 옆집이 가장 유력했지만 바닥과 천장을 맞대고 있는 윗집, 아랫집도 못지않을 듯했다. 오히려 소음에 더욱 예민한 옆옆집이나 옆옆옆집 사람이 쪽지의 발신인일 수 있었다.
그냥 다 사과하자. 누군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짠이 짖는 소리가 한 사람만 괴롭혔을 리도 없으니 그냥 다 사과하자.
그렇게 나는 옆집, 옆옆집에 옆옆옆집, 윗집, 아랫집 모두에게 사과를 하기로 마음먹고 작은 티세트를 여러 개 주문했다. 쪽지도 썼다. 내용은 대강 이랬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000호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한 가족 같은 반려견과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이사를 오고 새로운 공간이 낯설어 혼자 있는 동안 많이 짖었던 모양입니다. 미처 헤아리지 못해 불편을 끼쳐 드렸습니다. 앞으로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다음날 나는 짠이와 함께 집을 나서며 쪽지를 끼운 티세트를 이웃집 현관문 손잡이에 하나씩 걸었다. 그리고 홈캠을 주문했다. 특별 훈련 및 관리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