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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Apr 16. 2024

05.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써요

그놈의 크리스탈 정원

05


침묵으로도 대화할 수 있는 사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빠는 날 참 편안하게 한다. 아주 평화로워서 나 말고 세상의 모든 부분이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 세상 가운데에 있는 나는 적당히 배가 불러 어떠한 욕구에서도 자유롭고, 정신은 맑고,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상태가 된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대화에 마가 뜨는 공백을 민망해하는 나에게 타인과 공유하는 침묵은 힘든 것이었는데. 오빠와 공유하는 침묵은 내게 평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하지만 진실은 간단하고 거짓말은 복잡합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견디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항상 그랬어요. 난 마음먹은 건 다 해요.

(안나 2022)




 사람은 (혹은 그냥 나만의 이야기 일지도...) 참 이상하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한다. '안나'라는 작품에서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써요'라는 대사가 나왔을 때 글 좀 쓴다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차용했다. 그만큼 많이 공감했고, 공감하리라 생각한 구절이라서 그랬겠지?


 나 또한 그랬다. '일기장에 일기를 솔직하게 썼다.'라는 말을 다이어리에 몇 번 적어두었던데, 참 이상한 문장이다. 일기장에 솔직한 내용을 적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걸 따로 적어두기까지 했을까. 당연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 적었겠지. 그렇다고 대단한 거짓말을 한 건 또 아니다. 애초에 거짓말했다간 앞 뒤 안 맞고, 시간 순 안 맞을 것을 안다. 그리고 그걸 알기에 걸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가난한 마음이 을매나 고통스럽게요. 근데 그런 거짓말은 아니지만 적당히 그럴싸하게 살짝 덧칠하는 정도의 거짓말은 흔히 했던 것 같다. 것도 내 일기장에.


오빠를 만나 여기에서 훨씬 자유로워진 나이기에 답을 안다. 왜 그러는지에 대한 답.

그건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신감 결여' 좇는 곳은 저-만치 멀리 있는데 그곳을 향해 가는 길인 지금,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부족한 것은 틀린 상태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게다가 기준 시선은 또 밖에 있어서 남 눈치 엄청 보고. 어후. 생각만 해도 되다 돼.


오빠는 놀라지 않는다. 내가 길가다 갑자기 물에 뛰어들어도.


오빠는 내가 어떤 양상을 띠어도 놀라지 않는다. 다 그러려니 한다. 그게 자포자기 혹은 방목 개념의 그것이 아니라 오빠가 당장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만의 이유가 있고, 그걸 알게 되면 당연히 이해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몇 번 겪고 나니 '나를 믿는 힘'이 좀 길러졌다. 예전에 상담심리학을 공부할 때 담당 교수님이 말씀하신 게 생각이 난다. '마음이 아픈 사람은 절대로 혼자 나아질 수 없다. 건강하고 좋은 사람의 사랑이 필요하다. 이건 그저 감성적인 말이 아니라 실제 의학적인 근거를 통한 결론이다.'라는 내용의 말씀. 누구나 저마다 가슴 한편 아픈 구석 하나씩 안고 살아가는 요즘 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치유를 안겨줄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 데 있었다. 이 세상에 실로 존재했다.


그런데 그 '건강한 사람'은 티끌 하나 없는 '무결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 사람도 아픈 경험이 있거나 조금은 아픈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영향을 받는 나와 주는 그 사이에 어떠한 '차이'는 존재한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포용력'의 일종인 것 같다.



바닷가에서 함께한 저녁. 이 날도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사람과 함께하는 생의 첫 유럽여행. 특히나 책으로 접하고 어렴풋이 로망으로만 자리하던 포르투, 리스본으로의 여행은 봄날 오후의 햇살처럼 분명한 존재감을 띄며 따뜻함을 선사했다. 틈만 나면 '나'라는 사람의 본질에 대한 대화가 술술 나왔고, 누구보다 귀 기울이며 들어주는 모습에 나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대수롭제 않게 꺼내게 되었다. 진지한 이야깃거리이지만 전혀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라 투명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런 시간을 꽤나 흘려보낸 지금. 우리는 설명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오해받을까 걱정할 일 없고, 변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을 것을 알기 때문이고, 또 그럴 사람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신뢰가 이번 여행에서 많이 쌓였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것 투성이인 먼 타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과였다. 그래서 오빠와의 침묵은 내게 민망함이 아니라 평화고, 쉼이다. 수많은 대화 끝에 받은 보상 같은 그런 거.


왜 갑자기 길가다 과일을 먹어야 했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크리스탈 정원



물론 일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정원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나는 스스로 길치라는 것을 알기에 지도에 목적지를 찍고 나침반 기능까지 킨 상태로 길을 찾아 떠난다. 그러면 화살표가 내 방향에 섬세하게 반응하여 갈 곳을 알려주기 때문에 길을 잃을 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가보는 곳이기에 헤매는 것도 당연했지만 그래도 그 좋은 방법이 있어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정원 근처에 온 것 같긴 한데, 중심의 상징인 크리스탈  돔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근처를 둘러보니 돔이 하나 보였는데, 유리는 아닌 것 같았다.



오빠. 저게 크리스탈 정원인가?
아니 저건 공연장이야. 저기서 다양한 공연도 하고 그러나 봐
아, 그래? 그럼 대체 정원은 어디지?

...

오빠, 저거 크리스탈  정원 맞는 것 같은데? 이 지도 봐바. 위치가 딱 저기고 넓은 걸로 봐서 맞는 것 같아. 에이- 이거 봐 맞잖아! 저기가 유리정원이네!


응, 맞지. 저 쪽으로 가면 돼.
응? 오빠가 아니라고 했잖아, 아까. 그래서 우리 앞으로 더 갔다가 돌아온 건데?
근아가 저 건물을 가리켰잖아. 저건 공연장이고 저 공연장이 있는 곳은 정원이 맞지.
어..?


정말 꼭 가보세요. 크리스탈 정원


약간 이해가 안 되는 대화였지만, 여차저차 그 아름다운 공원을 잘 즐기고 오후 시간을 알차게 보낸 후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오빠가 이상했다. 되게 시큰둥하고 전혀 신나지 않은 차분한 분위기를 띠었다.



카페 한 잔 하러 가는데 얼마나 공기가 무겁고 눈치보이던지..


오빠, 혹시 오늘 뭐 기분 안 좋은 거 있어?
아니, 전혀 없어- 그런 거 없으니까 나 신경 안 써도 돼. 근아 하고 싶은 거 하자. (이 말부터 뭔가 이상했다)
뭔데- 지금 어디로 봐도 기분 안 좋은 거 티 나. 말 안 하면 모르니까 그냥 말해봐- 모르겠으면 잘 생각해 봐.
오빠 지금 분명히 기분 안 좋아, 확실해.

...

사실은 어제 크리스탈 정원 찾을 때 기분이 나빴나 봐.
응, 왜?
근아가 날 못 믿고 내 생각을 의심하는 것 같아서.
못 믿지~ 오빠나 나나 다 처음 와보는데 어떻게 믿어- 틀리는 게 당연하고 모르는 게 당연한데. 그러니까 나도 같이 크로스체크 해야지! 몰라도 돼 오빠, 어디가 어디고 뭐가 맞는 길인지. 그게 당연하지!
그런가?
오빠가 와 본 곳이면 오빠한테 길라잡이를 부탁했겠지만, 처음이잖아! 그리고 오빠 길눈이 그리 밝지 않은 것도 알아. 근데 어떻게 믿어. 그게 나쁜 게 아니라 당연하지. 그러니까 같이 찾아가면 되고. 둘 중에 한 명만 좀 더 맞으면 되는 건데 뭐.




 어우 귀여워. 그래도 여섯 살 오빠라고 자기가 더 많이 알고 나를 이끌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근데 그게 여섯 살이 무슨 상관인가. 이곳에서는 우리 둘 다 똑같은 타지인일뿐인걸. 그런데 이 대화가 난 참 좋았다. 일단 솔직하게 말하고 나니 그 내용이나 태고가 스스로 좀 멋있었고, 내가 물었을 때 빼지 않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며 말하고 또 내 생각을 받아들여준 오빠도 멋있었다. 이 대화를 통해 오빠가 나에게 어떤 존재이고 싶은지와 내가 어떤 생각으로 오빠와 더불어 가고 있는지 서로가 더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여 이해할 뿐, 판단하지 않는다. 이게 비법인 것 같다. 서로의 '자신감'을 끌어올려줄 수 있는 비법. 솔직하게 드러내도 판단의 심판대에 설 일이 없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믿음.




믿음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뢰를 깰 일을 하지 않으면 알아서 생겨있는 것이 아니라, 쌓일 만한 일을 해야 얻어지는 적극적인 활동의 산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신뢰가 없는 관계가 얼마나 서로에게 고통인지를 아는 쫄보들이다. 그렇기에 그 고통을 견디는 노력을 할 바엔, 그전에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의견이 잘 맞는 서로를 만난 것이고.


나는 이제 일기장에 거짓말을 쓰지 않는다. 그 조금의 덧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일기도 그전처럼 자주 쓰지 않는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함께 읽어주고 의견을 나눠주고 필요할 땐 온전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저장소 정도의 역할을 하고는 있다. 좋았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저장하는 곳.


그렇지만 그 크리스탈 정원 절대 못 잊어...


마무리는 귀여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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