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혹은...
회사생활 2년 차 건강검진을 하던 날, 문진표에 이런 항목이 있었다.
'당신은 일주일에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몇 번이나 하고 있습니까?'
'일주일에 세 번은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은 2주에 한 번 약속 없으면 세 번 정도입니다'라는 문항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애석하게도 5개의 문항에 이런 문항은 없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으로 체크했다. 그날 이후로 문진표의 질문이 머리 한편에서 계속 떠올랐다. 숨이 찰 정도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건강한 신체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압박을 받게 되었달까. 그렇지 않으면 마치 당장이라도 병에 걸려 끙끙 앓거나 루저로 전락하며, 앞으로 아무런 목표도 이루어 낼 수 없는 나약한 인간으로 변할 것만 같았다.(이미 좀 그런 인간의 모습과 닮았다만...) 스쳐가는 문진표 질문 하나가 왜 그리 굳게 머리 한편에 자리를 잡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 예전부터 건강에 대한 정보에 관심이 많았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나 음료를 꾸준히 복용하기도 하고, 틀어진 골반과 척추 건강을 위해 유튜브를 보며 곧잘 스트레칭도 잠들기 전 따라 하곤 한다.
야근을 하는 날이 아니거나,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퇴근 후 피로에 지친 몸뚱이를 어떻게든 일으켜 집 근처에서 달리기로 마음먹고 실천하였다. 그게 아니면, 동네 친구와 함께 야구공과 글러브를 챙겨 환하게 조명이 밝혀진 운동장에서 캐치볼을 하곤 하였다. 건강을 위해서 하는 움직임인지, 강박을 짓누르려 하는 몸부림인지 조금 헷갈리긴 했지만, 그렇게 밤에 땀 흘리고 나면 상쾌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아침 공기보다 저녁 공기가 운동을 하기 더 좋은 컨디션이라 한다. 실제로 풀냄새 살짝 섞인 밤의 공기는 지친 심신 깊은 곳으로 들어가 이곳저곳 어루만지며 마사지한다. 운동이 끝날 때 즈음엔 오히려 내일을 위한 새로운 기운이 돋아났다. 도시에 가득했던 한낮의 나쁜 공기는 퇴근과 함께 발 밑으로 가라앉는다.
작심 3개월 정도 꾸준히 밤 운동을 즐겼다. 그 후론 야근도 잦아지고 연말이 찾아오며 약속도 많이 생겨나는 바람에 달리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회사원 시절에는, 건강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로 복잡한 업무의 떼를 벗겨내고 정신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달리기도 하였다. 퇴사 후에는 자칫 너무 간단해버릴 수 있는 삶에 자극을 주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백수의 삶은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게 살기 위해 애쓴다. (2020년 5월에 작성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