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생각이 나를 지치게 할 때,
나는 몸을 꺼낸다

생각 에너지를 몸 에너지로 전환하기

by 허지인

회사 때문에 하루 하루가 힘들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고립되어 생각의 땅굴을 파나갔다.

마치 하루 종일 작동하는 공장처럼. 그리고 그 안에 나는, 이따금 멈추고 싶은 부품처럼 끼어 있었다.


집에서는 혼자 술을 마셨다. 좋아하는 대창, 곱창과 함께 혼자서 소주를.

그때 당시에는 이런 행위가 건강하지 않구나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지금와서는 절대 그러지 않을 행동들이지만 말이다.




생각 에너지를 몸 에너지로 전환시키기


“이 생각은 도대체 어떻게 멈추지?” 지긋지긋한 질문이었지만, 그 답은 생각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진짜로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 보기로 했다. 밖으로!

처음에는 산책으로 시작했다. 걷는 게 기분 전환에 좋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개천을 걸으며 바람을 맞았다. 비린내가 나긴 했지만 왠지 혼자 고립되어있었던 집보다 좋았다.


걷는 내 옆으로 달리는 사람들이 빠르게 지나쳐갔다. 하나 둘 하나 둘 박자를 맞추며 그들은 내가 가지 못할 곳으로 턱턱 가는 것 같았다. '그 때 나도 뛰어볼까?' 생각했다.


나이키 코르테즈. 밑창은 다 떨어졌고, 발목은 시렸지만, 그날 나는 그 신발을 신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고, 정강이는 따끔거렸고, 뺨에는 찬 바람이 스쳤다.

그제야 생각이, 아주 조금, 조용해졌다. 사라지진 않았지만,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머릿속을 뱅글뱅글 맴돌던 생각들이, 땀과 함께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뭐 어때, 그러라지' 라는 마음의 말들이 생각을 지워버렸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현재로 데려왔다. 그전까지 나는 언제나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 어딘가에 있었는데, 그날만큼은 숨을 쉬는 지금, 심장이 뛰는 이 순간에 나를 앉혀두는 데 성공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달릴 때 우리 몸에서는 엔돌핀,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기분을 조절하고

안정감을 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사실이었다. 이 호르몬들은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과도하게 흥분된 뇌의 회로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날 나는 생각으로부터 처음으로 ‘구제받았다’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내 생각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지금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유산소 운동처럼 호흡을 빠르게 몰아붙이지는 않지만, 집중해서 움직여야 하는 작은 동작들이 오히려 더 깊은 몰입을 유도한다. 무게를 들어 올릴 때, 근육이 떨릴 때, 이 동작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생각하게 된다.


한 번은, 팔뚝 안쪽의 작고 여린 근육이 욱신거렸다.

“내가 이런 근육이 있었구나.” 그건 작은 놀라움이자, 은근한 기쁨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생각으로만 나를 설명해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몸도 나의 일부이며, 생각 못지않게 나를 규정하는 중요한 축이라는 걸 느낀다.


웨이트를 하면서 새로 깨달은 건 또 있다. 근육은 쓰는 곳만 발달한다는 사실이다.

이건 처음엔 당연하고 단순하게 들릴 수 있지만, 생각보다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발달된 근육은 좋기만 한 걸까? 그건 그렇지 않다.

특정 동작에서 여러 근육이 협업해야 할 때, 이미 발달된 근육만을 과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다른 근육의 사용을 방해하게 된다. 결국 발달된 부분은 더 발달하고,

사용되지 않은 근육은 잠든 채 남는다. 그 결과는 불균형이다.

어느 날은 통증으로, 또 어느 날은 움직임의 어색함으로 드러난다.


생각도 그렇다. 나는 평생을 생각으로만 나를 해석했고, 문제를 해결했고, 나를 지탱했다.

그 결과, ‘생각하는 근육’만 과하게 발달했다.

그래서 때때로는, ‘몸’이라는 다른 근육이 필요한데도, 습관처럼 생각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


이제 나는 안다. ‘나’라는 사람은 생각과 감정, 그리고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어느 하나만 반복해서 쓰고 있지는 않은지, 가끔은 돌아봐야 한다.

특히 생각이 너무 많아 스스로가 버거워질 땐, 일부러라도 몸을 써야 한다.

생각하는 나에서, 살아 있는 나로 돌아오기 위해서.




나를 확장시키기


주변 사람들을 보면, 생각이 많을 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뜨개질, 자수, 도예, 비즈 꿰기 같은 활동들.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이런 활동은 뇌의 전두엽을 진정시키고, 마음의 흥분 상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꼭 운동이 아니더라도, 몸을 쓰는 활동은 분명 우리를 지금 이곳으로 데려오는 힘이 있다.


나는 여전히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도 어느 날 갑자기 몰려오는 불안이나,

벗어날 수 없는 회상의 수렁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날에는, 무조건 생각으로 정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 대신, 몸을 먼저 움직인다. 손을 씻고, 땀을 흘리고, 근육을 당기고, 허리를 세운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 몸을 데려오면, 마음도 천천히 따라온다.


생각이 나를 지배할 때, 몸은 나를 구원한다. 살고 있다는 감각은 결국, 몸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생각이 너무 많아져 도무지 어쩔 수 없을 땐, 일단 움직여보자.

숨을 헐떡이고, 팔을 들어 올리고, 발을 구르면서, 생각에서 벗어난 나를 만나보자.

심장이 뛰는 그 순간,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keyword
이전 04화실타래 같은 생각, 글로 엮어 내옷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