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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밤 Apr 24. 2022

체력은 없지만 운동은 좋아진다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가 아니라 그 운동을 얼마나 좋아하게 되었는지

체력을 키우기 위해 운동하는데 운동하니까 살아갈 체력이 모자라다. 지난 수요일엔 저녁 아홉시 반에 까무룩 잠들어서 열두 시간을 내리 잤다. 요새의 운동 루틴은 월수금 새벽수영과 화목 저녁 PT. 잔잔한 피로가 매일 이어지다가 하루 야근이라도 할라치면 몸이 아우성을 친다. 그만좀 ! 죽겠다고! 피곤하다고 무심결에 초콜릿 같은  입에 털어넣고 우물거리다 퍼뜩 정신이 들면 식단 조절을 못했다는 자책도  다른 피로로 다가온다.


오래 운동해온 사람들은 처음  달만 그렇고 괜찮아진다는데 같이 운동하는 친구들은 맨날 죽겠단다. 우리에게 아직 괜찮아지는 ' ' 오지 않은 건지, 운동맨들이 나를 속이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PT 시작한 지는 이제  . 인바디 상으로는 몸을 이루는 근육과 지방의 비율이 좋아졌다는데 실생활에서 체력이 좋아졌다고 느끼진 않는다. (... 저도  달로 크게 나아지는  바라는게 도둑놈 심보라는  알지만 그래도 인간이 자기가 애쓴 결과를 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주시옵소서)


심지어 운동은  생활 시간을 단축시키고 있다. 운동을 준비하고, 운동하고, 정리하고 씻는  하루에 한시간 반은 족히 쓰고 밤엔 피곤해서 일찍 자니 누가 시간을 훔쳐간 것마냥 시간이 없다. 매일 피곤한 사람으로 살기 싫어서,  활기차고 옹골찬 정신으로 하루를 살고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운동하므로 매일 피곤한 사람이 된다. 내게 한정된 돈과 시간과 집중력을 크게 떼어 운동에 쓰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똑같은 만성피로자라는 사실은 억울하다. 물론 매일 피로한  맞는데요.


지금 운동을 그만두면 일상 살기에는 오히려 쌩쌩해질 것이 분명하다. 솔직히 그게 너무 나를 유혹한다. 그럼에도 운동-만성피로자의 삶을 선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는 내일의 나를 위해서다. 월급통장에서 째끔씩 생활비 까먹으면서 점점 줄어드는 잔고를 힐끔거리는 게 그냥-만성피로자의 삶이라면, 이번달 좀 궁핍하더라도 미래의 나를 위해 적립식 펀드 넣는 결단은 운동-만성피로자의 삶이라고 느낀다. 누군가 말했던 '근육을 저축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냥 한다.


둘째는 운동 자체에 재미가 붙어서다. 자유형을 하다 손동작을 어떻게 하면 몸이  멀리 나갈  있는지를 갑자기 깨치는 순간이 있었다. 머리를 모로 들어 숨을 쉬고 나서 오른손을 입수할 ,  엇갈리는 타이밍에 어깨를  밀어 손끝을 멀리 보내면 물을  많이 가를  있었다.  밖에서 선생님이 분명 알려준 내용이었는데  속에서 깨우쳐지는 순간은 달랐다. 레인의 끝까지  번이라도  팔을 뻗고 싶어진다. PT 마찬가지다. 8kg 플라스틱으로 시작한 데드리프트가 40kg 가능해지는 순간, 엉덩이와 햄스트링의 자극점을 찾아내 바로  지점에 바벨을 위치시키는 순간, 바닥을 누르는 발에  힘을 주고 코어를 곧게 다잡는다. 세트의 끝까지 실패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이를 앙문다.


체력 향상이나 체중 감량 등 부수적인 목표를 두고 운동을 시작하지만 사실 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건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가 아니라 그 운동을 얼마나 좋아하게 되었느냐인 것 같다. 안 하던 운동을 하니 체력이 본래보다 떨어지는 기분이 들고, 운동하니 잘 먹어서 체중이 생각만큼 빨리 줄지 않는다. 그런데도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기쁨, 퍼포먼스가 향상하는 희열이 더 크다면 본래의 목표는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 된다.


앞으로도 운동이 쭉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겸사겸사 선물처럼 체력도 좋아지고 체중도 감량하고 근육도 멋지게 붙었으면 좋겠다. 운동하기 싫을 때 '살 빼야 하니까 가야지' 말고, 물을 가르는 몸의 경쾌함이나 근육을 부위부위 찢어놓은 뒤의 기분좋은 녹초감을 기억하며 몸을 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다. 목요일 PT때 무게를 크게 올렸다가 근육이 놀랐는지 무릎 근처가 아픈데, 주말에 잘 회복하고 월요일 새벽 수영에서 힘차게 물을 차고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일요일 저녁엔 가기 싫다고 또 징징대겠지만 결국은 부은 눈으로 수영가방을 챙길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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