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드르렁드르렁
살면서 이만큼 엄청난 코골이를 듣는 순간이 또 올까 싶다. 아랫층 침대를 쓰는 아저씨가 귀마개를 뚫고 들어올만큼 웅장한 코골이를 하셔서 밤잠을 설쳤다.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여럿이서 한 방에 자는 도미토리에다, 남녀구분이 되어있지 않은 혼숙 시스템이다. 따라서 잠들기 전에는 우렁차게 코고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서 침낭에 들어간다. 많이 걸어서 피곤하니까 곯아 떨어질 것 같지만, 내 경우엔 워낙 잠귀가 밝고 예민해서 다른 순례자의 움직임이나 소리에 자주 잠이 깨곤 했다. 그 정도가 가장 심했던 어느 날, 더 이상 누워있어도 잠을 잘 수 없다는 확신이 들어서 자포자기 상태로 일어났다. 나만 일어난 건 아니었다. 내가 자고 있던 방에서 코를 고는 아저씨를 제외하고 모두 이른 출발 준비를 했다. 우리는 눈이 마주치면 ‘너도 잠을 설쳤구나’ 공감의 미소를 지었다.
일찍 일어나서 출발한 덕분에 새벽별을 무지하게 많이 보았다. 한국에서는 절대 이 시간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는데, 순례길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여러가지 일을 하게 된다. 15번째 걷는 날, 나는 프로미스타에서 출발해 까리온을 향했다. 까리온으로 가는 길에는 꽤나 유명한 길이 있다. 까미노 비석들이 쭈욱 길게 이어져있는 길이다. 내가 순례길에 오기 전에 여러 블로그와 책을 통해 정보를 모았는데, 그 때 접한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그 장면이었다. 그 길을 직접 걸으면서 기분이 묘해졌다. 내가 정말 순례길에 와서 사진 속에서 본 그 장소를 두발로 걷고 있다니 신기했다. 까리온으로 가는 길은 경쾌하고 가벼웠다.
순례길은 기본적으로 모두 시골길이다. 가끔씩 도시를 지나가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작은 마을과 들길 또는 산길로 이루어져있다. 따라서 걷다보면 끊임없이 자연을 대면하게 된다. 스페인은 땅이 넓어서 그런지 농사짓는 경작지의 단위가 기본이 만평쯤 된 것 같다. 어느날은 해바라기밭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이렇게 넓은 해바라기 밭이라니 신기하다며 사진도 찍고 즐긴다. 그렇게 세시간을 내리 걸어도 해바라기만 보이면 환공포증에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해바라기, 올리브, 포도, 밀, 보리밭을 질리도록 보았는데, 까리온으로 가는 길에는 옥수수였다. 이제는 적응이 되어서 옥수수밭이 계속되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까리온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숙소 주변 벤치에 앉아서 햇볕을 쬐며 따뜻하게 일광욕을 즐겼다. 머리를 감은 직후에 수건으로 대충 닦고 나와도, 밖에 있으면 30분만에 머리가 완벽하게 마른다. 드라이어가 굳이 필요가 없는 곳이다. 지나가던 길냥이가 한쪽에서 식빵을 굽고 있었다. 나른하게 골골거렸다. 그 모습을 구경하며 한참을 멍때리며 앉아있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햇빛을 적당히 받으며 바깥에서 앉아있는데, 그게 참 평화롭게 느껴졌다. 이런 여유를 한국에선 언제 느껴봤더라? 까마득하다.
고양이는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와서 몸을 비볐다. 심장어택의 순간이었다. 나를 집사로 간택해주다니! 눈물나게 영광이라고 생각하며 고양이가 기분 좋도록 머리와 목을 만져주었다. 같은 숙소에 머무는 다른 순례자 5명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합류해 6명이서 식당에 가게 되었다. 그 중에서는 남다른 인상의 인도계 이탈리아 남자가 있었다. 그는 다부진 체격에 몸에 타투가 아주 많고 앞니 하나가 금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몸에 있는 타투가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니, 파괴의 신 ‘시바’를 뜻한다고 했다. 나는 그가 마피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귀엽게도 그는 체중관리를 한다며 모두가 오징어튀김을 먹고 있을 때 샐러드를 씹어먹었다. 마피아가 샐러드만 먹다니 너무 귀엽지 않은가. 샐러드만 먹고 어떻게 파괴를 하려고 그러지? 점심을 먹은 뒤에 기부제로 운영되는 저녁식사를 위해 식재료를 사는데, 그는 귀엽게도 오랫동안 고민한다. 마피아가 저녁재료를 이렇게 신중하게 고민하기도 하나? 그는 삶기만 해도 완벽한 요리가 된다며 계란을 선택했다. 오며가며 마주칠 때 그는 포니테일로 묶은 내 머리를 톡 건드리며 인사한다. 씨익 웃으며 반가운 체를 한다. 금니가 반짝인다. 눈빛이 따뜻하고 선하다. 마피아가 이토록 부드럽게 웃을 수 있나?
당시에 나는 정말 그가 마피아 행동대장 쯤은 되지 않을까 진지하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마 격투기 선수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파괴의 신 시바 타투를 하고 체중관리에 신경쓰지 않았을까 싶다. 겉만 보고 나는 그에게 선입견을 가졌다. 그에게 다가가 얘기를 나누는 게 약간 무서웠다. 그의 범상치 않은 외모에 폭력적인 사람일거라고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그는 샐러드를 먹는, 계란을 기부하는, 사람을 반가워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너무 쉽게 사람을 판단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런식으로 내가 함부로 평가하며 지나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안좋아졌다. 일부분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아니, 아예 판단을 하지 말자. 그 사람과 깊게 얘기를 나눠보지 않는 이상 모든 판단은 가소롭다.
사실 나도 상대방이 쉽게 나를 판단해서 마음이 상했던 경험을 겪었다. 스위스 출신의 4번째 순례길을 걷는 능숙한 순례자 파르티였는데, 일정이 비슷해서 거의 매일을 마주쳤던 사람이었다. 파르티는 내게 순례길에 있는 한국인들이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는 것이 안좋아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순례자들의 행동에 대해 비판했다. 이 얘기를 듣고 멋지게 반박해주고 싶었지만, 짧은 영어실력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아 분하기도 했다. (영어도 짜증나고 영어를 능숙하게 못하는 나도 짜증나고 파르티도 짜증났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과 연락을 하기 위해 알베르게에서 와이파이를 잡고 있는데, 그 순례자가 내 모습을 보더니 ‘한국인들이란....’ 하며 지나갔다.
나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마치 내가 스마트폰 중독자에, 순례길을 진정 즐기지 못하는 어글리 코리안으로 판단하는 그의 태도는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한국인에 대한 선입견으로 기분이 나빴던 경험이 있던 내가, 외모에 대한 선입견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다니. 인간은 이토록 간사하다. 이 경험은 나의 간사하고 경솔한 마음에 대해서 반성할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 나는 깨달았다. 누군가가 나를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정말 기분이 나쁘다. ‘그 사람은 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잖아....’ 나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입장바꿔 생각해서 나도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해선 안된다. 나 또한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선입견을 쌓아 올리는 것 같다. 이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누군가를 보고 함부로 그사람의 직업, 학력, 나이, 외모 등에 대해서 판단하는 일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다. 집단의 평균을 판단근거로 성급하게 일반화하다가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모든 사람들은 집단에 속해있지만, 개별적으로 고유한 특성을 갖고있다. ‘한국인은 스마트폰만 봐, 문신한 사람은 폭력적이야’ 라는 집단에 근거한 판단들은 가소롭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아까 그 고양이를 만났다. 이번엔 다른 순례자가 고양이에게 간택당했는지 고양이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편견없이 다가가는 고양이가 나보다 낫다고, 역시 고양이는 섬김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어찌됐건 고양이는 진리다. 고양이에게 충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