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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Jul 16. 2024

식혜 삭히며 맘을 삭이네(시골살이 9)

작은 엄니와 친정엄마


"작은 엄니~엿기름 있어요?"

"그럼!  있을 걸~ 뒤져보면 없는 거 빼고 다나와~"

다행히 김치냉장고 잡곡칸에서 한 봉지를 찾아냈다.


"엄니~식혜 어떻게 하더라? 가르쳐주세요"

살아생전 엄마가 해주는 것만 받아먹었지 직접 해보는 거는 처음 일이다.

예쁘게 치매가 온 작은 엄니는 내가 모르는 척하며 해달라고 하니 두 손을 걷어붙이고 신나 하셨다.





"식혜 만드는 거 천하 쉽지~"

"근데 왜 안 만들어요? 엿기름도 있고 더울 땐 최곤데"

"손이 많이 가고 이제는 명절 때나 하지 잘 안 해 먹어"


엄니가 순서를 말씀하시는 걸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았다.


식혜 만들기

1. 우선 큰 양푼에 엿기름을 물에 붇려 조몰락조몰락해서 몇 번 물로 거른다. 

2. 여러 번 가는 체에 밭쳐서 가루가 안 나올 때까지  거른다

3. 밥솥에 마른밥을 되게 한다.

4. 몇 시간 맑은 물이 다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5. 밥이 되면 밥솥에 그 가라앉은 물을 살살 붓고

6 밥을 저어 가라앉힌 물과 잘 섞이게 한다.

7 보온으로 해서 밥알이 삭을 때까지 적당히 넣고 기다린다.(4~6시간)

8. 다 된 7을 큰 냄비에 넣고 한소끔 끓여낸다.(편생강과 설탕가미)

 9. 냉장고에서 넣고 시원하게 해서 마신다.(잣을 동동 한과와 함께 냠냠)





엄니의 굵게 주름진 손으로 쑥쑥 비비고 짜고 거르는 모습을 보니 왠지 여장군같이 비장해 보이기도 하고 인고의 세월이 느껴져서 십 년 후 나의 모습도 어렴풋이 그려진다.



 12시에 밥통에 앉히고  맛있게 삭히기를 기다리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기대하는 마음으로 밥통을 열었다.

"  와우  밥알이 동동 떠올랐네!?"

"잘 삭혔어! 코드를 빼~~~"

엄니의 명령이 떨어졌다.


큰 솥에 넣고 한숨 끓이면서 편생강과 설탕을 가미한다.

팔팔 한소끔 끓이니 이제 식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맛을 보니 달지도 않고 심심하니 좋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긴지...

아침밥을 먹고 치우며 솥단지를 여러 번 만져본다.



..

식혜 한 그릇 떠서 엄니랑 먹다 보니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엄마생각이

동동~ 떠오르는 밥알처럼 그리움이 몽글몽글~


엄마한테 이북식 가자미 식혜 만드는 법이랑 오징어순대 만들기를 배우고 싶었는데... 엄마가 너무  아쉬운 나이에 하늘로 가셨다.(75세)


작은 엄니의 곁에서 간도 보고 이것저것 시중을 들다 보니 엄마생각에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엄마가 살아계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 나이는 엄마랑 행복했던 10대, 엄마 앞에서 응석부리던 그 나이에서 멈춘  같다.


식혜를 삭히 엄마생각에 그리움도 삭이는 시간이다.


'이쁘게 치매가 온 작은 엄니, 더 아프지 마시고 저랑 재미나게 보내요.'

화투도 치고요  살림도 가르쳐주시고요.

엄마의 빈자리를 작은 엄니가 채워 주시는 걸까?


엄마 같다.


모든 게 감사하다.





글 읽어주신 작가님들도 축복합니다.

옆에 계시는 분들과 많이 웃으시는 하루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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