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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Oct 05. 2024

손을 올리기 전에 ~

아빠가 그리운 날

"짝!!"

아빠의 우둘투둘한 알 박힌 손바닥이 불시에 날아왔다.

나의 왼쪽 뺨이 불에 덴 듯 날아가는 듯 번쩍 불이 튀었다.

난생처음 아빠의 볼 따귀를 맞은 날은 바로 그 밤이었다.



성대결절로 음대입시도 치르지 못한 채 재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종합반 학원을 등록하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험난한 인내의 연속이었다.

밤 10시까지는 담임선생님의 지휘아래 이제 몇 달 남지 않은 학력고사 준비에 매진하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10시에 야간학습을 마치고 학원을 나서고 있었다. 학원은 골목길에 있었고 대로로 나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은 거리다. 10시 10분 차를 타면 30분에는 버스에서 내린다.



"잠깐 나 좀 봐"

중저음의 내리 깐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린다. 같은 반에 있는 몇 번의 쪽지를 내 책상에 놓고 갔던 그놈이 확실하다. 언뜻 듣기에 삼수생이라고 들었고 담배 피우고 여자들 만나고 다니는 까진 애 같아 보였다. 그때는 그런 껄렁껄렁한 아이들이 반에 몇 명씩은 있었다.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재촉하며 걸었다.

나는 이럴 때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시선을 주지 않고 말을 걸어도 대꾸를 하지 않고 무시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그렇게 반응을 보이지 않자 걸어가는 나의 손목을 잡아끌고 벽에다 다짜고짜 밀어붙이며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옆에 몇 명의 아이들이 나를 둘러쌌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작은 체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놀라서 얼굴을 돌리며 가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발로 있는 힘껏 내리 찼다. 그러자 눈도 한 번  꿈쩍도 하지 않고 다시 달려들어 내 따귀를 치는 게 아닌가?

"네가 뭔데 나를 무시해?"

"왜 이래요? 왜 때려요?!"

"그니까 한번 만나 달라는데 왜 말이 없냐고?"

"간이 없어요."

나도 맞은 상태라 격앙된 목소리가 학원 앞에 쩌렁쩌렁 울렸다. 누군가 아는 사람의 도움이 간절했기에 소리를 높였다. 그 남자애와 일당은 막무가내로 나를 오도 가도 못하게 막고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지나가는 학생들은 남자애의 험상궂은 모습에 두려운지 나서지도 말려주지도 않았다. 나는 점점 더 무서워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우리 담임선생님이 달려오셨다. 선생님 얼굴을 보자 그때까지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너 이 자식! 말썽 부리지 말라고 했지?... 널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너희들 다 교무실로 왓"

선생님은 그 아이의 행실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밀씀하셨다.

"막차 놓치겠다, 어서 가라 저 애는 다시는 네 근처에 못 가게 할 테니 걱정 말고 어서!"


나는 선생님만 믿고 덫에서 탈출한 쥐처럼 부리나케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얼굴은 눈물범벅이에 맞은 뺨은 아직도 얼얼하고 더구나 내가 탈 버스가 꽁무니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떠나는 걸 봐야 했다. 옥신각신하는 바람에 두 대의 버스를 놓쳤다.

나는 얼떨결에 맞고 분했고 무섭기도 했지만 또 따라오면 어떡하지 하며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보이지는 않았다.



'왜 나를 때린 거야? 미친 거 아냐? 아빠한테도 안 맞아봤는데.. 저거를 어떻게 하지? 나도 맞받아 한 대 쳐 줄걸....

시험이 이제 몇 달 안 남아서 스트레슨데 왜 나를  힘들게 하냐고 진짜 머리 아프네..'

버스 안에서 혼자 분을 삭이며 눈물자국을 닦았다.

 '부모님께 말을 했다간 저자식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고 그러다 보면 인생이 불쌍하고 더구나 해코지를 하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었다.


여러 가지 답도 없는 생걱머릿속으로하다보니 집이 가까워졌다. 정류장에 나와 계실 엄마를 생각하니 빨리 차가 도착하기를 바라며 발만 동동거렸다.

J시에서 8킬로 떨어진 군 단위에 집이 있고 버스에서 내리면 300미터 정도 둑길을 걸어야 나오는 외딴집.  혼자 가긴 위험한 길이어서 그 시간에 주로 엄마나 오빠가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내리기 전에 힐끗 보니 아빠까지 서 계신다.


'아이고 나는 죽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하고 투벅투벅 걸어가는데

다음에 기다리고 있던 건 아빠의 따귀세례이다.

난생처음 아빠한테 맞아 본 느낌은 글쎄 뭐랄까 벼락을 맞은 듯하다고 할까?

한 번도 손대지 않던 아빠가 나의 따귀를 날리셨다.

'오늘 뭔 날이야? 내 생에 잊을 수 없는 모욕이다.'

그건 생각지도 않은 일이다.

뭐라고 말을 했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밖에는................

입에서는 할 말이 많고 억울했는데 그 자리에서 뭐라고 할 수가 없다. 불과 한 시간 전의 일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 와중에 그 아이의 만행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워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젤 큰 거는 아빠한테 맞은 사실이다.

아팠다. 아까 맞은 건 1이라면 아빠는 5 정도 되었다.


아니 내가 왜 하루에 두 번씩이나 따귀를 맞아야 하냐고?

지금도 생각해 보면 평생 맞은 따귀는 그 딱 두 번이다.




아빠...

 흉흉한 세상에 재수하는 딸이 늦으초조하걱정되셨죠ㅡ? 지금같이 휴대폰이 있어서 늦으면 버스를 놓쳤다며 연락을 할 수도 없는 그런 때이기에 애가 잘못되었을까 봐 걱정하시며 그 40분을 기다리셨겠죠...

그래도 손이 올라가기 전에 딸아이의 얼굴 표정도 함 읽어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물론 깜깜한 밤이라 살짝 비춘 달빛에  잘 보이지도 않았겠지만요. 그때는 아빠한테 첨 맞아 본 지라 며칠을 아니 한동안 아빠랑 좀 서먹서먹하고 가까이 가기가 어려웠어요. 아빠한테 맞은 충격은 좀 오래갔어요.


그 남자애한테 맞은 건 미친개한테 물렸다했고 사람으로 안보였으니까요. 이후로 그 아이는 학원을 옮겼는지 다시는 안 봐도 됐고요.

그런데  왜 늦었냐고 묻고 그때 때려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빠의 손엔 걱정 반 분이 반 담겨 있었죠. 그땐 원망만 했어요.


세월이 흘러 아빠한테 그 사건을 영영 해명도 못하고 어른이 되어 출가를 했습니다.

저도  아이들 낳고 키우다 보니 해가 져서 늦게까지 애가 돌아오지 않으면 손에 일도 안되고 문 앞에서 골목길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발견했어요.

'아빠는 더 하셨겠구나 세상이 어떤지 더 잘 아실 분이었으니까..'

그제야 먼저 손이 올라간 아빠의 심정을 완전 오롯이 알게 되었답니다.


그때 잘 맞았어요.

이후론 시간을 더 지키려고 노력했고 부모님 속 안 썩여 드리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통행금지시간 엄수 여름엔 7시 겨울엔 6시, 대학 2년 때 시내로 이사 나올 때까지)




자식은 다 자기가 잘나서 스스로 컸다며 할 말이 있겠지만 부모님의 깊은 속은 겪어봐야 알겠더라고요.

"아빠, 그때 원망했던 거 용서해 주실 거죠? 제가 몹시 철부지였어요.

그래도 늘 안아주시던 아빠의 사랑으로 이제껏 버텨왔고 엄하게 키워주신 거 감사합니다. 저에겐

최고의 아빠예요!"


찬바람이 부니 아빠의 따뜻한 품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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