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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미 Nov 02. 2024

수영장 옆 레인, 젊은 새댁의 수영복

한눈에 봐도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젊은 새댁은 탈의실에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다. 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형광빛 진한 핑크색의 수영복 때문이리라.


오전 수영강습의 멤버들은 주로  남편과 아이들을 각자의 위치로 내보내고 나온 30대 젊줌마에서부터, 무릎이 아파 수영 말고 다른 운동은 못한다는 6-70대 할줌마가 주를 이룬다. 


그녀들에게 있어 수영복이란 최대한 노출이 없어야 하는 것으로 색상은 블랙이나 네이비, 진한 녹색정도 즈음의 것을 선호하며 너도 나도 현대판 전통 지킴이 유교걸의 위상을 드높였다. 물론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젠가 남편에게 수영강습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넌지시 운을 띄웠을 때 수영복 걱정부터 하던 그였다. 가슴 부분은 높게, 치골 부분은 낮은 옷을 입는 게 좋겠다며 흡사 해녀복과 같은 정숙한 물옷을 찾아서 굳이 카톡 링크로 보내준 친절함이 눈 부셨었더랬지.




여보, 이런 수영복을 바란 거요?       출처:pixabay




까무잡잡한 피부에 군더더기 없이 늘씬한 몸매, 쨍한 핑크색 수영복을 입고 준비운동을 하는 그녀를 쫓아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흡사 불 꺼진 무대에 주인공을 비추는 핀조명이 떨어진 듯했으니 수영장 조명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대로 심장을 폭격당한 기분이었다. 이내 늑골전체에 나의 질투가 퍼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저런 수영복을 입으려면 달면 삼키고 써도 삼켜서 다이어트를 실패했던 지난날의 나는 지워내 버려야 했다. 형광 핑크색의 수영복이 파란색 물에 대비되어 더욱 영롱해진 그녀와 나를 번갈아 보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물옷 쇼핑을 하리라.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국내외 물옷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편집샵 사이트를 검색했다. 손바닥 속 네모창으로 무아지경 빠져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찾았다 내 수영복! 나이땡 브랜드의 탄탄이 옥시즌 퍼플(oxyzen purple)'

수영복 이름이 좀 거창하긴 했다. 이름하여 산소 같은 보라. 산소 같은 여자는 못 되어도 산소 같은 보라는 입을 수 있지. 암. 흰색 느낌의 뽀얀 색이 감도는 연보라색의 수영복을 장바구니에 담아 착착 결제까지 하고 나니 짜릿함이 온몸을 감쌌다. 






배송받은 후 손꼽아 기다리던 강습이 있던 날, 옥시즌 퍼플 물옷을 걸치고서 수영장 탈의실을 런웨이 삼아 사뿐사뿐 걸었다. 옆 사물함에 짐을 넣던 같은 레인 회원이 어깨를 톡톡 치며 알은체를 해왔다.

'알아요 안다구요. 새로 샀어요. 진짜 예쁘죠?' 중 어떤 말을 먼저 뱉을지 행복회로를 돌리던 찰나, 그녀의 손에 들린 또 다른 옥시즌 퍼플을 보고 말았다. 당황하며 오갈 데 없는 눈동자들이 만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낄낄낄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걸까. 야 너두? 응 나두!


옥시즌퍼플 쌍둥이를 볼 수 있었던 건 그 강습이 마지막이었다. 물 안에서 집중해야 하는 건 꾸민 내 모습이 아니라 더 깊이 더 멀리 나아가는 법을 아는 거니까.   

에잇. 수영복은 무슨 수영복이야 근육 저축이나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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