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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스포인트 Aug 15. 2022

뭘 위해 그렇게 살았던 걸까

전 직장인 방송국에서 일할 때는 주 6일, 중계차가 잘못 걸린 날엔 주 7일을 일했다.


자그마치 10년 이상.

주말은 당연히 일해야 하니 고향 친구나 대학 동기 모임도 못 갔고.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인간관계는 더 좁아져 갔다.


선거가 있을 시기나 정치인이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괜히 휴가 내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이게 다 방송 제작 부서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다른 부서로 옮겨달라 요청을 했으나, 자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왔다 하더라도 나보다 연차가 높은 선배들이 우선으로 배정되었고.

어쩌다 신입이 들어와 가르쳐놓으면 다른 부서에 홀라당 뺏기기 일쑤.


그러다 보면 나는 또 제작 부서의 막내 생활.

온갖 귀찮은 일과 서류 업무 같은 건 내 차지가 되었다.


이번 연도 초만 해도, 설날 단 하루도 못 쉰 사람은 우리 부서에서 나밖에 없었을 정도였다.


이렇게 일하면 누군가 알아줄까?


정답은 아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 따지면, 오히려 나만 나쁜 놈이 되었다.

일단 선배들 마인드가 그랬다.


“이런 건 나이 어린 네가 해야지.”


그래놓고 내가 올린 보고서는 자신들이 작성한 것처럼 윗선에 보고될 때는. 하아.


방송하는 것이 좋아 방송국에 입사한 건데.

정작 나는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몫도 챙기지 못했다. 바보같이.

이렇게 여기저기서 이용만 당하는 기분에 울적했으나, 다른 대안이 없었는걸.


물론 급여는 높았다.

방송국의 급여는 대기업만큼은 아니었지만, 웬만한 강소기업 정도는 된다.


비록 다니는 내내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으로 버텼지만.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대사가 가슴을 울렸다.

유니콘 상사라 불리는 정명석 변호사가

병실 침대 위에서 내뱉은 말.


“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 살았던 걸까.”

그만두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 마음이 이랬다.

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던 건지.

다니는 내내 몸과 함께 정신력도 지쳐갔는데.


그런 회사를 한때는 사랑했었고.

결혼하고도 선배들께 피해를 주지 않겠다며 신혼여행도 가지 않았다.

(물론 당시에도 코로나가 한창이라 갈 곳도 없었지만.)


인터넷에서 본 글 중 ‘신입이 걸러야 하는 회사의 6가지 특징’이란 글을 본 적 있다.

놀랍게도 내가 다닌 직장의 모든 게 해당하였다.


내가 입사할 당시, 신입을 안 뽑은 지 꽤 되어 내 위 선배와 나는 10년 이상 연차 차이가 났었다.

술 담배 좋아하고 “인간이 되어라.” 하는 잔소리를 인생철학처럼 내뱉는 선배들 밑에서, 인수인계 체계도 안 잡혀 정말 고생했었다.


난 왜 더 빨리 탈출하지 않았던 걸까.


날 뽑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다니라는

부모님의 자존감 떨어뜨리는 말 때문에?


아니면 그렇게 고생해서 들어갔는데, 퇴사하면 무언가 지는 것 같은 느낌에?


친구들은 자리 잡아 결혼도 하고 집도 사는데.

나만 늦게 안정적인 곳에 취업하여서?


이런 여러 가지 사항들을 고려하다가 결국 이제야 퇴사했다.


일이 너무 바빠 당시 연인들과 만날 시간도 없었다.

그때는 소개받고 조금 만나다 금방금방 헤어지기 일쑤였다.


당시에는 날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대를 탓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난 정말 너무했다.


수습 6개월 때는 새벽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근무를 했고.

또 주말마다 각 지역의 축하쇼를 돌아다니느라 중계차를 타고 새벽 시간에 돌아오고.

그게 아니라면 주말 뉴스를 하느라 토요일과 일요일에 출근하고.


이러니 같이 여행을 가겠어, 제대로 종일 데이트를 하겠어.

생각해보니 입사 초반엔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못 쉬었던 거 같다.

지금이야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게 생겼지만.

그 당시에는 뭐 그런 게 있었나.


초과 근무를 하는데도 “수습사원이니 올리지 마라.” 이런 소리나 들었지.


다시 그 힘들었던 20대로 돌아간다면.

난 다른 길을 찾아봤을 텐데.

서럽고 힘든 방송일이 아니라.


찾아보면 내 적성에 더 맞는 일이 있지 않았을까.

그것이 참 후회된다.


신은 인간에게 선물을 할 때, 좌절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준다고 하던데.

어쩌면 내가 방송국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이, 지금의 날 만들어 준 걸지도 모르겠다.


선배들의 개 같은 갑질이 없었다면, 글을 써 볼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


글을 쓰며 울분을 토해내다, 결국 웹소설 작가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신이 내게 다른 길을 보여주시려고, 그때 그 좌절을 겪게 하신 건 아닐지 생각해본다.



작년에 썼던 글이 리디북스에 런칭하였습니다.

(출처. 리디북스)

미남이 꼬이는 양아치 기자 - 리디 (ridibooks.com)


잘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카카오페이지 12월에 런칭할 글을 열심히 쓰는 중입니다.

부족한 게 많지만, 더 노력해보려고요.

느리더라도 다작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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