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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Sep 13. 2023

커피값에 현타 온 국밥집 사장님

음식값 인상에 대한 고찰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현진건의 단편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인력거 끄는 일을 하며 입에 겨우 풀칠하고 사는 김첨지가 아픈 아내를 위해 포장해 온 음식은 다름 아닌 설렁탕이었다. 소설의 배경이었던 1920년부터 부담 없는 가격에 고기를 맛볼 수 있었던 음식인 국밥은, 일제강점기를 지나 보릿고개까지 서민들의 식탁을 지키며 고통을 함께 해왔다. 100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서민 음식의 대명사 하면 국밥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가난한 대중들의 배를 채우던 음식으로 같이 분류되던 떡볶이나 삼겹살에 비해 가격 상승률이 가파르지 않다.


우리 가게의 기본 국밥은 8,000원이고 여기에 배달료를 포함하면 한 그릇에 만 원이 훌쩍 넘는다. 그래서인지 리뷰에 국밥치곤 비싸다는 말이 종종 나올 때가 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나도 회사 다닐 때 점심으로 국밥을 먹는다면 지불 가능한 마지노선은 만 원 정도였기에 손님들이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밖에서 사 먹을 땐 몰랐다. 국밥 한 그릇 만드는 데 이렇게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지. 퇴근하기 전 돼지고기 60kg를 꺼내어 피 빼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여 손질한 뒤 3시간 푹 고아 삶는다. 그 사이 근처 시장에 들러 각종 채소들을 사 와서 다듬고, 국밥의 영원한 친구인 깍두기를 비롯한 각종 반찬들을 포장하기 바쁘다. 찬 준비를 마치면 삶은 고기를 맛있게 썰 차례이다. 60kg를 다 썰려면 대략 1시간은 소요된다. 손님들에게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대접하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다 보니 가게 근처 카페에 커피를 사러 갔다가 현타를 제대로 맞은 것이다.


커피 한 잔 가격이 4천 원부터 시작이었고, 손바닥보다도 작은 쿠키가 3천 원이 넘었지만 다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주문한다. 나는 기계 몇 번 터치하면 완성되는 이 검정 국물이 4천 원이나 하는 마당에 몇 시간이나 정성 들여 만든 고깃국은 왜 비싸다고 하는 건지 의아했다. 물론 카페 창업 비용이 많이 들기도 하고 커피값에 자릿세나 분위기를 즐기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원두의 원가를 생각해 보면 너무 비싼 게 아닌가.


네가 국밥집을 선택했으면서 왜 엄한 커피집 멱살을 잡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들인 노력 대비 가격의 갭차이가 너무 심하다 싶었다. 우리는 국밥 한 그릇 만 원에는 실망을 표하고, 그 가격이라면 차라리 다른 걸 먹지 라며 발길을 돌리지만, 커피나 빵은 가격이 얼마건 아무렇지 않게 지갑을 연다. 국밥은 서민 음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언제나 가격 후려치기를 당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원재료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고, 김밥 한 줄 조차도 4천 원을 넘어가는 세상이다. '국밥은 싸다'는 기대감을 맞추기 위해서 계속 낮은 가격을 유지하려면 품질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곁들임 반찬이 점점 줄어든다던지, 국내산을 중국산으로 변경한다던지. 그렇게 되면 원래의 맛을 지키기는 어렵다. 맛이 변했다고 등 돌리는 손님들이 분명 생길 것이다.


배달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플랫폼과 배달대행업체 간의 배달원 뺏기 경쟁이 시작되면서 기본 배달료가 800원이나 올랐다. 거기에 비나 눈이 오면 건당 추가금 1천 원이 더 붙는다. 기존보다 20% 이상 오른 배달료 때문에 창업한 지 4개월 만에 국밥 가격을 불가피하게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나는 가격을 올려서 손님을 잃을 것인가, 품질을 떨어뜨려서 잃을 것인가의 기로에 섰다. 그 어떤 선택도 손님을 잃는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품질과 타협하고 싶진 않았기에 결국 내 선택은 가격을 올리는 것이었다. 대신 손님 이탈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세트 메뉴를 개편했다. 기존보다 조금 더 오른 가격에 사이드 메뉴를 대폭 제공함으로써 이탈을 방어하는 것이다. 이때 사이드 메뉴는 원가가 부담되지 않는 것들 위주로 구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적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되는 손님은 떠나게 되어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순 없기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우리 가게를 계속 찾아주는 손님들과 새로이 주문하는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한다면 이 정도의 손해는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오픈발이 끝난 후에도 주문 수가 크게 차이 날 정도로 떨어지지 않은 걸 보면 내 방식이 아주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국밥은 싼 맛에 먹는 거야라고 생각 한다면 너무 섭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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