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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Sep 19. 2023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달 시스템의 명과 암

예보에 없던 부슬비가 내린 날이었다. 비가 오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주문이 한 번에 몰아친다. 이런 날은 우리 가게뿐만 아니라 다른 가게들도 똑같이 바쁘기 때문에 밀린 주문들을 처리하느라 배달원들도 정신이 없다.


그러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 주문한 지 50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음식을 못 받았다는 손님의 말에 바로 배달원에게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국밥집인데 손님이 아직 배달을 못 받으셨다고 해서요, 혹시 언제쯤 도착하시나요?"

"사장님 죄송해요. 배달이 많이 밀려서 한 10분은 더 걸릴 것 같은데요."

"아 정말요? 손님이 많이 화나셨더라고요.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제가 목숨 걸고 한 번 달려볼게요."

"네?"


뚜뚜뚜.


우리 가게에서 오전 배달을 도맡아 하는 배달원 A씨는 주 7일을 쉬지 않고 풀타임으로 일한다. 한 번에 7~8개의 물건을 배달할 때도 있다 보니 조금의 지체도 용납하지 않는다. 3분만 기다리면 음식이 나온다는 말에도 배차를 취소하고 가버리기에 이모님들과도 트러블이 종종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A씨가 다리를 쩔뚝이며 가게로 들어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봤더니 배달 중에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조금 불편할 뿐,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며 호방하게 웃는다.


음식이 뭐가 그리 대단한 물건이라고 배달원들은 목숨까지 걸면서 도로 위를 달리는 걸까? 프리랜서인 배달원들에게 시간이 곧 돈이다. 남들보다 빨리, 그리고 많이 배달해야지 그만큼의 수익을 얻기 때문에 법도 무시한 채, 때로는 목숨을 담보로 맡기고 질주한다. 3년 바짝 돈을 벌고 양평에 집 지어서 서울을 뜨는 게 목표인 A씨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오토바이에 몸을 맡긴다.


몇 년 전이었을까.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수익률을 개선하겠다고 배달료라는 것을 만들고 나서 이 모든 일들이 발생했다. 소비자들의 반발은 컸지만 이는 금세 퍼졌고, 이제는 배달료를 받지 않는 곳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대게 배달료는 손님이 부담하는 금액으로 인지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플랫폼 상에서 보이는 배달료는 소비자가 지불하는 금액만 노출되기에 실제 지불하는 배달료는 플랫폼에 나와있는 금액보다 대략 2배 정도 비싸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가게와 손님이 반반씩 부담하도록 가격을 설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가 지불한 배달료가 5천 원인 경우, 3.3% 소득세와 배달대행업체에서 건당 수수료로 100원 ~ 300원 사이의 금액을 떼어가고, 나머지 금액을 배달원들이 수익으로 가져간다. 풀타임으로 빠짝 일하면 하루에 40만 원 정도 버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가게에 소속되어 고정된 월급을 받던 배달원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급작스럽게 생긴 배달료도 당황스러운데 플랫폼들이 단건 배달을 내세우면서 배달료가 택시비만큼 올랐다. 서비스를 시작한 초기엔 배달기사 유치를 위해 1건 배달에 8천 원이나 줬으니 배달원들이 대행업체 배달보다 플랫폼 배달을 우선 수락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 보니 대행업체에서는 원활한 배차를 위해서 배달료 상승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단건 배달이 정말 이름값을 하는 걸까? 배달원들은 기본적으로 대행업체 소속이다. 오토바이를 타면서 쿠팡과 배민의 단건 배달만 하는 기사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모든 서비스들을 켜두고 수익률이 높은 건 위주로 배차를 수락하기에 일반 배달을 하다가도 배민원을 할 때가 있고, 반대일 때도 있다. 더군다나 플랫폼은 배차 추천 시스템에만 의존하고 있어서 배차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아, 경험상 대행업체의 배달이 훨씬 빨랐다. (대행업체는 배차가 빨리 되지 않으면 소속된 기사들에게 강제 배차를 하기도 한다.) 따라서 단건 배달이 정말 효율적인 배달 방식인건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배달기사 뺏기 경쟁으로 생긴 가격 상승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와 자영업자들에게 돌아왔다. 배달 경쟁이 줄어든 지금도 여전하다. 플랫폼이 불편함을 덜어준 대신 지불하는 비용이 너무 큰 게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특식으로 이따금씩 시켜주셨던 중국집이 생각날 때가 있다. 동네 사람들에게 맛집으로 입소문이 자자하게 난 곳이었는데, 오토바이 소리가 종일 끊이지 않았고 배달원들은 은색 철가방을 들고 항상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 당시 중국집에서의 배달은 고객 서비스의 일종이었기에 지금처럼 배달료를 따로 받지 않았었다. 그리고 일명 철가방으로 불리던 배달원들은 신속배달을 내세우긴 했어도 지금처럼 난폭 운전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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