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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Sep 28. 2023

나 다시 회사로 돌아갈래!

국밥집 사장의 선언

모든 직장인들이 비슷하겠지만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생각한다.


아.. 하루만 쉬고 싶다.


하지만 이내 현실로 돌아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출근 준비를 한다. 앞으로 이 짓을 30년이나 더 해야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서일까? 회사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솔직히 사장이 되면 다를 줄 알았다. 적어도 출근길은 가볍지 않을까 싶었지만 똑같았다. 돈 걱정 없는 거물의 장사꾼이거나 금수저면 다르겠지만. 다들 자기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이다.


돈이 많지도, 그렇다고 금수저도 아닌 평범한 사장인 나는 여느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은 쳇바퀴 같은 삶을 살았다. 다만 회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퇴근과 동시에 CPU가 종료된다는 것이다. 회사의 업무는 연속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퇴근하고 나서도 내 뇌의 일정 부분은 업무와 관련해서 꺼지지 않고 돌아가고 있지만, 가게는 셔터를 내림과 동시에 '시스템을 종료하겠습니다.'이다.


매출이 낮아 고민이었다면 잠드는 순간까지 가게 걱정을 놓을 수 없었겠지만, 다행히도 그런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정신적 피로도는 굉장히 낮았다. 하지만 회사 다닐 때가 몸은 많이 편했다. 머리는 아프지만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앉아 일하니까.


밥장사는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한다. 힘쓰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체력적 한계가 6개월 만에 찾아왔다. 평소처럼 아침 일과 중 하나인 고기를 손질하는데, 손이 심상치 않다. 분명 전날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칼을 쥘 때마다 손목까지 시큰시큰 저려온다. 스트레칭 몇 번하고 별일 아니라는 듯 고기 삶을 준비를 한다. 가게에서 그나마 나이가 어린 내가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일을 도맡아 했는데, 육수에 필요한 정수물 15L를 받아 주방으로 옮기는 것도 내 일중에 하나였다. 이 날도 어김없이 물을 옮기는데 극심한 손가락 통증에 양동이를 놓쳐버리고 말았고, 카운터는 물바다가 됐다.


결국 뒤처리는 이모님들께 맡기고 근처 정형외과를 찾았다. 며칠 물리치료받으면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었는데 방아쇠수지증후군이라는 다소 생소한 질병을 판정받았다. 키보드 몇 번 두드리고 마우스질 하던 손이다 보니 요 몇 개월 간 힘쓰는 일을 많이 했다고 금세 과부하가 온 것이다. 병원에서는 쉬는 것 외엔 답이 없다고 했지만 지금 당장은 대안이 없기에 다시 가게로 나간다.


병원에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이모님들과 미스터트롯을 시청하면서 반찬 포장을 한다. 트롯 열풍 덕분에 가게를 하면서 내 평생 듣던 트롯보다 더 많은 양의 트롯을 들었다. 차라리 그 매력에 스며들었더라면 덜 고통스러웠을 것 같은데 아무리 들어도 귀에 익질 않는다. 하루종일 트롯 프로그램을 보고 하하 호호 수다 떨고 나면 나에게 남는 건 없다. 젊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없다 보니까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고, 이러다가 도태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회사가 격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힘들었지만 치열하게 논의하고 배우고, 성장해 나가던 순간들. 당시에는 평범한 일상 하나하나가 소중하단 걸 알지 못했는데, 지나고 나니 그리움이 밀려온다. 회사 안에서 접하는 수많은 정보들과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보니 그 안에서도 다양한 배움과 성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가게에 하루종일 있으면서 미스터트롯과 관련된 이야기만 할 뿐이다. 어제는 임영웅이 뭘 했다더라, 오늘은 정동원이 어디에 나온다 등. 그렇다고 이모님들의 낙을 빼앗을 수는 없다.


퇴근길에 습관적으로 열어 본 페이스북과 링크드인에는 지인들이 오늘 어떤 성장을 이뤘는지에 대한 글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닌데, 뭔가 한참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 초초해진다. 가게를 하면서도 배우는 것은 많다. 초기에는 모르던 것을 배우고 실제 가게에 적용해 나가면서 성장의 재미를 느끼기도 했고, 새로운 분야에서 도전해서 성과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도 일하는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지금에서의 할 일은 다소 한정적이다. 내가 가게를 확장하거나, 프랜차이즈를 설립하는 게 아니라면. 더군다나 내가 학습한 내용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곳도, 의논을 나눌 사람도 없다.


건설적인 이야기나 새로운 시장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어쩌면 손이 아픈 것보다 더. 개인적 성향일 수도 있지만 배움과 성장을 중요시하는 나에게는 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다시 회사로 갈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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