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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Oct 08. 2023

본격 투잡러의 삶

회사 일이 가장 쉬웠어요.

누군가 나에게 '월 순수익 1천 만 원 이상의 자영업자 VS 그럭저럭 돈 버는 직장인'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묻는다면 둘 다 선택할 순 없냐고 되물을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은 돈을 벌어두는 게 좋지 않는가.


취업을 하겠다는 선언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물어본다. 잘 되는 가게 버리고 왜 회사로 돌아가냐고. 이럴 때마다 나는 의아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회사를 간다고 했지 가게를 그만둔다고 한 적이 없는데?


계획이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처음부터 투잡을 염두로 두고 시작했기에 회사로 돌아간다고 해서 가게를 접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지금 장사가 잘 된다고 해서 영원하 잘 될 거라는 보장이 없기에 안정성이 있는 본업이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공백이 길어지게 되면 회사에서의 적응도 어려울 것이고, 업무의 감도 다 잃어버릴 것 같았기에 경력 단절이 6개월이 넘어가지 않도록 빠르게 취업을 준비했고, 다행스럽게도 이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임원분께서 좋은 포지션을 제안해 주셔서 회사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대략 한 달 만에 재취업에 성공했다.


간혹 겸업 금지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근로 시간을 활용해서 부업을 하거나, 동일 업종을 운영함으로써 회사에 기밀을 빼내어 불이익을 초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부업은 금지 사유가 아니다. 다만 회사 취업규칙마다 다 다를 수 있으니 부업할 계획이 있다면 사전에 체크해 보는 것이 좋다.


다만 회사로 돌아갔을 때 걸리는 점은 직원들을 100% 믿고 가게를 맡겨야 하는 것이다. 흔히 이런 상황을 업계 용어로 '오토로 돌린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오토로 운영하는 경우 잘되는 것보다 망하는 쪽을 더 많이 봐왔기에 최대한 덜(?), 느린 속도로 망하게 하기 위해 주중에는 퇴근 후 가게로 다시 출근했고, 주말은 풀타임으로 근무하여 사장의 부재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고자 했다. 사실 말이 쉽지 실제로는 힘들어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내가 실제 가게에 머무는 시간은 이모님들에 비하면 반에 반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들과 신뢰관계를 두텁게 형성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장사가 잘 되면 사장님만 기분 좋고 나는 힘만 든다'는 말을 할 때가 있는데, 종종 맛있는 음식을 사주거나 시급을 올려주면 다시 충성충성 모드로 돌아온다. 사장이 자리에 없더라도 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일해주길 원한다면 사기를 올려주는 트리거가 중요하다. 코로나 배달 버프가 예상보다 오래가기도 했지만, 직원들의 노력이 빛을 발했기에 엔데믹이 오기 전까지는 매출의 큰 하락 없이 오토로 잘 운영되었다.


나는 약 3년간 주 80시간 이상 일했었는데 다시 하라고 한다면 절대 못할 짓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옷만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향한다. 50분 간 열심히 강습을 듣고 씻고 나와 본격적으로 출근 준비를 한다. 회사에서는 배민, 요기요 등 모든 알림을 꺼두고 일에 집중한다. 신사업 팀이어서 업무 양이 많아 야근은 필수였기에 대략 밤 9시 정도까지 일하고 퇴근한 뒤 국밥집으로 다시 출근한다. 한 시간 동안 마감 청소와 매출 정산을 마치면 진짜 퇴근을 한다. 집에 오면 12시. 씻고 누우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어버린다. 한참 벚꽃이 흩날리던 봄날, 몸에 기름 쩐내 풀풀 풍기며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데 '과로사하기 딱 좋은 날씨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었다.


하지만 통장을 보면 힘이 솟구쳤다. 말 그대로 돈을 펑펑 썼는데도 불구하고 전보다 저축 비중은 몇 배로 늘어났다. 재료 소진으로 주말에 가게 문을 일찍 닫게 되면 바로 백화점으로 직행할 정도로 지출이 컸는데도 말이다.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는데도 월 500만 원 넘게 저축하는 삶이란 아주 황홀하다. 피곤에 눈이 감길 때마다 계좌를 보고 있으면 오던 잠도 깬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남은 순수익은 모두 입고, 먹는데 지출하고 남은 돈 몇 푼과 회사에서 받은 월급은 입금되는 즉시 주식계좌에 헌납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식 시장 또한 호황이었기에 돈이 돈을 만든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예전엔 투자를 해봤자 시드머니가 워낙 소액이었어서 간혹 운 좋게 100%가 넘는 수익을 올려도 소소하게 버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시드가 천, 억 단위로 늘어나니까 10%의 수익을 올려도 기존에 100% 수익을 올리는 것과 동일한 돈이 들어왔다.


회사에서는 의도치 않게 갓생러로 유명해졌다. 방학 생활 계획표와는 반대로 살던 내가 갓생러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님께서 알게 된다면 아마 코웃음 치시지 않을까 싶은데,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삶에서 오는 성취감은 꽤나 짜릿했다.


누군가는 회사를 떠나는 것을 간절하게 원할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실제로 퇴사하고 다른 일을 해보면 회사 일이 제일 쉽다는 걸 알게 된다. 큰 돈에는 큰 노력이 따르는 법이다. 직장인들이 더러운 회사 생활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장사나 사업에 비하면 회사는 순백 그 자체다. 때론 엄마품처럼 포근하다. 나도 가게를 하기 전까지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를 떠나서야 비로소 내 직업을 엄청나게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계속 회사만 다녔더라면 퇴사만 각재며 일했을 터인데, 바깥이 더 힘들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늘 감사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혹시 회사 생활이 지긋지긋한가? 그렇다면 회사를 떠나 외도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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