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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Mar 15. 2023

앙(仰) 이목구심서 5

2월 예찬

  2월의 꼬리는 짧다. 

다른 달보다 이삼일이 짧아 더 빨리 지나가 버리는 2월이다. 

그래서 마음을 다지고 똑바로 살지 않으면 그물을 비켜 간 물고기의 군무를 바라보는 어부처럼 탄식과 진한 아쉬움을 토하게 된다.


  곧 3월이지만 아직은 겨울이다.

산그늘과 마을 골목엔 잔설이 웅크리고 있다. 

그러나 매화가 이미 웃고 있다. 

볕이 모여드는 화단엔 수선화 어린싹이 손톱만큼 고개를 내밀었다. 

계절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현장이 2월이다.


  2월은 만삭의 임산부이다. 

곧 생명을 출산하게 될 산모와 같다. 

겨우내 싹을 잉태하고 품었다가 봄이 되면 산고를 이겨내고 푸른 생명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2월은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새싹과 빛깔을 품어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고 긴장되는 몸이다. 

3월이면 잎과 가지와 꽃을 내놓는 출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에 한 해 동안의 꿈이나 희망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그 기대가 최대치로 커지는 달이 2월이다. 

희망으로 가장 크게 부풀어 오르는 달이다. 

한겨울 내내 몸 안에서 자라나던 씨앗이 한껏 커지는 달이다. 

그 씨앗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얼마 후 틔우게 될 이파리와 꽃이다. 

이들은 곧 일 년의 결실이 될 열매를 좌우하는 요인들이다. 

잎과 꽃이 건강하다면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몸 안에 작은 태아로 시작하여 희망을 먹고 자라다가, 3월이 되어 잎이 나고 꽃이 피게 되면 어느 정도 열매가 결정된다. 

이때 노련한 농군은 일 년의 수확을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무와 사람이 기대하는 희망은 봄이 터지기 직전인 2월에 가장 크다고 보는 것이다.

  어느 시인은 말한다.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라고(진은영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중에서). 

가장 짧은 달이기에 눈물이 적은 달이다. 

방황과 비애가 적은 달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죄를 쌓아가는 일이기에 죄가 줄어든 만큼 후회와 탄식도 줄어드는 달이다. 

그래서 가장 복된 달이 2월이라고 말하고 싶다.


  창밖으로 겹겹이 엎드려 있는 지리산의 능선이 보인다. 

부드러운 곡선의 율동이 어떤 생각에 몰두하다가 그대로 멈춰 섰다. 

잔뜩 몸을 웅크린 개구리처럼 말이다. 

이제 곧 지리산이 어깨를 들어 목전에 와 있는 봄마당에 뛰어들 것이다. 

2월은 웅크린 개구리를 닮은 달이다.


  올봄이 어떤 모습일지 2월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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