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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Apr 19. 2023

앙(仰) 이목구심서 18

"난 죽으려고 성당에 간다"

82세 김ㅇㅇ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평상시 성격이 급하시고 완고하여서 할아버지 곁에 다가가기가 부담스러웠던 분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 괄괄하던 목소리도 잦아들고, 여기저기 쏘다니시던 활동도 거의 없이 침대에만 계십니다. 움직일 때라곤 화장실과 식당에 가실 때뿐입니다. 이리된 직접적인 원인은 최근에 시력을 거의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방에서 화초를 취미 삼아 키우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방에 들어서면 십여 개의 화분에서 자라나는 푸른 이파리들로 화원에 들어선 듯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눈이 잠겨 다시는 열 수 없는 문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습관이 된 기억을 더듬어가며 휠체어를 타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식당에 가시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떨어져 나가 뭉툭해진 손끝의 무딘 감각으로 숟가락을 듭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성당 미사에 가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매일 아침 미사에 가셨던 분이셨는데요.

직원들이 저마다 돌아가며 권유했지만 마음을 닫고 "안 간다"라고 무 자르듯 답을 할 뿐입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어떤 일로 해서 단단히 화가 나신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를 잘 아는 직원들은 '한동안 저러시다 마실 거야'합니다.


  나이가 몇 살 아래지만 친구로 지내는 한센 어르신 한 분이 마음을 풀어주고자 찾아왔습니다. 이런저런 담소를  주고받은 끝에

"니이 성당에 안 가면 벌 받는다이. 죽지도 하고 오래오래 살고 싶나아?" 그러자

ㅡ"내는 빨리 죽는 게 소원이다"

"그라면 성당에 가야제. 가서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 아니여~"

이렇게 큰소리로 대화를 하셔서 모두가 듣게 되었습니다. 비록 농담처럼 하신 말이었겠지만 내겐 순간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알 수 없는 슬픔이 건조한 마음에 빠르게 스며들었습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잘 살게 해달라고,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두 한센인 어르신들은 오히려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 기도하십니다. 왜, 왜 그럴까요? 감히 이유를 묻지 못했습니다.

이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하기 싫었습니다. 아니기를 마음 속으로 바랬습니다.

한센. 한센인. 문둥병자.

나는 감히 짐작하지 못합니다. 그분들의 삶을. 

구겨지고 멍들고 찢긴 속마음을. 

무슨 죄가 있어 한 사람의 싱그러운 삶을 마구 짓밟아 버렸습니까

어느 누가 두 번은 없는,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이리 망쳐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밤하늘의 별들보다도 빛나는 눈동자, 무수한 봄꽃보다도 어여쁜 꿈과 사랑을 함부로 지워버린 운명의 굴레는 누가 씌운 것인가요?


날마다 아침을 맞이하면서 망가진 당신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오늘도 운명이라는 힘겨운 짐을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꿈이라면 좋을 이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아주 미세한 거리를 오늘도 애써 무시해야 합니다.

이젠 기억하기도 힘든 청춘과 웃음과 사랑은 불현듯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나는 이분들의 아픔을 가늠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위로하거나 같이 울지도 못합니다.

나는 그냥 바라볼 뿐입니다.

왜인지 모르게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곁에 있을 뿐입니다.

빨리 죽고 싶다는 기도는 하느님께서 절대 들어주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세상살이 오래오래 건강하시라고 말하면 오히려 할아버지께 악담을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살아서 사지 멀쩡한 우리를 혼쭐 내주십시오. 똑바로 살라고 세상에 외쳐주십시오.'


이틀지나  김ㅇㅇ할아버지는 성당에 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성당에서 한동안 우셨다고 합니다.

왜  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도 걱정이 됩니다.

혹시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으셨겠지요?

황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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