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Life BGM 2 09화

LifeBGM | 집으로 가는 세 개의 길

Daniel Erdmann-Three Roads Home

by Ggock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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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은 한 가지가 아니다. 1호선 지하철 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면 도보로 3분 거리에 내린다. 또는 마을버스가 아닌 파란 버스를 타면 도보로 5분 거리에 내리게 된다. 지역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버스를 탈 필요 없이 도보로 10분이 걸린다.

아파트 단지는 정문고 후문과 옆문이 있다. 옆문은 애매하고, 정문과 후문은 각각 다른 버스 정류장으로 연결된다. 그중 나는 후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호한다. 후문은 작고 여러 개다. 단지 내로 들어가면 가로수 사잇길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희끄무레한 가로등 세 개가 드문 드문 있다. 가로등이 있는 길목은 바람이 드나드는 곳이라 쌀쌀하다. 나는 바람이 드는 길을 같이 이용하는 게 좋다.


조금이라도 옆에 자연을 끼고 걷다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내가 사는 집이 아무리 콘크리트 덩어리래도 옆에 나무가 있고 덤불이 있고 봄이면 꽃이 피기도 하는 목련 나무와 철쭉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가고 싶다.

후문으로 들어가면 영락없이 담배 피우러 나온 주민이나 강아지와 산책하고 있는 주민을 만나게 된다. 주민들이 하나 둘은 나와 있는 곳을 거쳐서 집에 들어가는 게 좋다. 사람냄새,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기계나 아스팔트나 자동차 매연을 거쳐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게 좋다. 집은 조금 더 자연스러워야 한다. 여기서 자연은 그 자연이 맞다.


두 번째 |


너무 늦으면 가족에게 마중을 부탁한다. 아버지는 차를 끌고 15분 거리의 역 앞으로 나온다. 아주 늦지 않은 길이면 정류장에서 기다리기도 한다. 한 번은, 갑자기 비가 와서 전화하기도 했다. 함께 사는 집에 함께 들어간다는 건, 혼자 집에 가는 것과 사뭇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일방적이기 않고, 조금 덜 외롭다. 가끔은 가족과 만나 바로 집에 가지 않고 편의점이나 문을 아직 닫지 않은 카페로 가서 뭐라도 하나 사들고 가기도 한다. 오늘 있었던 길을 이야기하기에는 이 편이 훨씬 편하다. 혼자 집에 들어가면 모두 아늑하게 이미 쉬고 있는데 나 혼자만 너무 지치고 너무 흥분해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기 두려워진다.

내 귀갓길의 끄트머리를 목격하고 바통을 이어받은 가족의 책임도 한 몫한다. 그들은 뭐라도 나눠 들어주려 하면서 오는 길은 험하지 안 핬는지 묻기 시작해서 하루의 일과를 역행해 술술 불게 만든다. 사실 거기서부터 집은 이미 시작이다. 가족이 집이기 때문이다.


홈, 과 하우스,라고 달리 구분해서 이야기하긴 좀 그렇고, 사람이 집이라는 인테리어 광고 멘트도 좀 유치하지만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비어있는 집은 집이긴 하지만 가끔은 아직 집에 뜸이 덜 든 것 같이 느껴진다. 모두가 모이면 집에 도착했다.


세 번째 |


나는 가끔 집에 있으면서도 '나 집에 갈래.'라고 중얼거린다. 내 마음이 아직 집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아니라 내 집은 내 마음속에 있다. 속 시끄럽고 마음이 번잡하면 아무리 집이라도 나는 집이 아니다. 내면의 내 집에 들지 못하면 잠도 자지 못하고 하루가 붕, 떠서 흘러간다.


크리스토트 마르게 와 다이넬 에르드만의 <Three Roads Home>이 말하는 세 개의 길은 세 개의 '집으로 가는 길'을 말한다.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물은 적은 없고 앨범을 유심히 들은 적은 있다. 두 개의 콘트라 베이스와 드럼, 색소폰은 신기한 조합으로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왔다는 평을 받는다. 그들의 전작이나 각자가 낸 앨범 모두 성공적인 실험성을 갖췄다. 그건 나중에 차차 감격하도록 하고,


두 대의 콘트라 베이스가 기둥이 되는 음악은 단단하고 재미있다. 이들의 음악적 성취를 생각하지 않고 듣더라도 대번에 훌륭한 퀄리티의 구성과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곡들은 지나치게 느물거린다는 점이다. 집으로 기어들어가는 길목마다 느물거린다. 그래도 크리스토프 마르게의 드럼은 걸음을 잘 유도하는 리듬을 연주해 준다.


지금은 영하 7도, 어제와 오늘 같은 날씨는 세 개의 집으로 가는 길이고 뭐고 빨리 아늑하고 따뜻한 곳에 이르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집은 쉽지 않다. 집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집으로 이르는 길도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더욱 특별한 것이다. 십이월이면, 연말이면.


완연한 밤이 되면 더 추워진다는 예보가 있다. 어서 집으로 들어가시길. 집으로 가는 길을 엮어서 목에 둘러메고 기어들어가시길. 각자 집에 이르는 세 가지의 길을 계산하면서 가장 적합한 길을 선택해 잘 들어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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