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LifeBGM 03화

LifeBGM | 지하철 보사노바

Antonio C. Jobim -Wave- Brazil-Triste

by Ggockdo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넘어갑니다. 한강에 둥둥 떠서 실려 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전철이 만드는 웨이브에 밀려났다 쓸려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몸이 일제히 한 쪽으로 밀려나갔다 돌아옵니다. 다들 파도를 아주 잘 탑니다. 한강을 보면서 다같이 흔들거리니 힘주어 버티지 말고 물결이나 타자, 싶습니다.


on Antonio Carlos Jobim -Wave


기관사는 알까요? 자신이 승객들이 타는 웨이브를 만든다는 사실을. 지하철이 대신 목적지까지 움직여주는 것 같아도 승객들도 몸을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계절에 상관없이 지하철 타는 사람들은 다들 서핑합니다. 브라질의 보사노바 리듬보다 거친 1호선 리듬은 금방 한강을 건너갑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파도를 타고 있습니다. 산다는 게 늘 이렇게 흔들리고 울렁거립니다. 음악이 지나치게 밝아서 실없이 웃습니다.

지하철 파도를 타고 있는 승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무뚝뚝합니다. 다들 심각한 일상을 항해하는데 나만 배경음악이 다릅니다. 아무리 심각한 얼굴을 해도 정차할때 온 몸이 덜컹거리는 것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모두 지금 이 음악을 들으며 지하철 한 칸만큼의 사람들이 일제히 덜컹, 거리며 흔들리는 장면을 본다면 기묘한 흥이 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직 칙칙한 겨울옷의 냄새를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해 패딩을 입은 사람도, 패딩과 패딩 사이, 오븐 속 식빵처럼 퐁실하게 부풀어 오른 양쪽에 끼여버린 사람도, 뉴스를 보며 파리하게 질린 사람도 일제히 덜커겅, 리듬을 탑니다. 지하철 손잡이를 걸어놓은 긴 금속 봉을 잡으면 보사노바 음악 멜로디를 부는 시원한 플루트 소리가 납니다.


마침 1호선 지하철 바닥은 푸른색입니다. 삶이 망망대해라는 걸 암시하고 싶었던 걸까요. 사람들은 무심코 짝다리를 짚고 그 위에 서서 흔들립니다. 자의로 흔드는 게 아니라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내 귀에만 들리는 보사노바의 살랑거리는 음악을 크게 틀어 주고 싶습니다. 이왕 휩쓸려 사는 게 인생이라면 리듬 정도는 좀 더 경쾌해도 되지 않을까요?


on Antonio Carlos Jobim - Brazil


아직 갈 길이 멀었습니다. 사람은 점점 많아집니다. 어디로든 밀려 가고 싶고, 먼 바다로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우르르 이 작은 갑판의 전철 몸통에 몸을 싣습니다. 오후 6시면 해도 수평선 아래로 리듬을 타며 떠내려 갈테니 우리의 하루도 같이 떠밀려 가고 싶어합니다. 손잡이가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리듬이 삼바와 닮았습니다. 아직 나도 브라질에 가보지 못했는데 이 지구는 어디서 리듬을 실어와서 보사노바로 흔들리네요.

저는 이제 미역줄기가 되어야 합니다. 함부로 떠밀려 가지 않기 위해 허벅지에 힘주어 섰습니다. 그래도 기관사 운전 리듬에 따라 몸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서글픈 것은 아무리 음악이 밝아도 나를 흔드는 번잡함, 배경음악을 덮어버리는 기계 굉음,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같이 압축되어가는 세상의 잔인함 때문입니다. 그래도 음악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떠밀려 내립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걸어 올라갑니다. 저마다의 리듬으로 걷습니다. 나는 보사노바의 느릿한 음악과 함께 후발대로 밀려납니다. 멀찍이서 계단을 오리는 사람들 정수리가 오르락 내리락 파도에 실린 것처럼 물결 만드는 것을 지켜봅니다. 우리는 어쩌다 같은 지하철에 실려 함께 파도를 타고 이 해변으로 떠밀려 왔습니다.


서울 한복판은 보사노바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들으며 걷는 건 내내 같이 흔들리던 파도때문입니다. 뱃사람들은 육지멀미를 한다고 하던데, 보사노바가 끝나면 육지멀미가 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삶의 바다 위에/몇 평의 갑판을 받은 살림방(황학주,<비가 온다> 中)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 같이 흔들리고 나는 이 물결을 잊지 않기 위해 보사노바를 끊을 수 없습니다. 홀로 기어들어가는 하루, 고작 부표만한 내 자리에서 정처없이 흔들리는 것으로 춤을 대신했습니다. 이러다 멈추면 정말로 호된 육지멀미에 심장을 토하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on Antonio Carlos Jobim -Triste


아직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에서 흔들립니다. 저마다 균형을 잡기 위해 계속 흔들립니다. 흔들리기를 멈추면 심연으로 빠져 버릴 것 같아서 멈추지 못하고 계속 흔들린다는 걸 압니다. 뒷통수들이 일제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흔들립니다. 트리스테, 트리스테, 트리스테. 애처롭게 흔들리는 하루를 위해 연주합니다. 시야가 흔들리는 건 울기 때문도 웃기 때문이도 아니라 계속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파도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지하철은 계속 달리고 나는 내일도 기관사가 흔드는 리듬에 실려 덜컹거릴 것입니다. 지하철이 아니어도 충분히 나를 흔드는 것은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애처로운 보사노바에 흔들리는 사람들, 휘정거리는 걸음이 아직 멈추지 않았고 우리의 배는 아직 튼튼합니다.

집까지 덜컹거리던 지하철 보사노바가 몸에 남아 웅웅 거립니다. 밀려갔다 쓸려오는 다들, 발바닥이 서핑보드에 잘 얹혀 있는지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살아가도록 떠미는 파도에 따라 심장이 쿵, 쿵, 쿵. 보사노바로 흔들거립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02화LifeBGM | 도시의 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