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io Bosso-Seasong & Other Little Storie
오 년 만에 고향 바다에 왔습니다. 바다는 여름도 순순히 물결에 태워 보냅니다. 유람선이 파도 위를 미끄러져 지나갑니다. 나에게 너무 혹독했던 여름도 저렇게 슬쩍 미끄러져 지나갔겠지요. 그렇게 미끄러지듯 스무 계절이 지나가고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의 서러움도 고운 모래로 산산이 부서졌겠지요. 오 년의 세월은 오로지 인간과 사람과 마음에만 긴 열상을 남겼습니다. 바닷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불어와 바다와 고향을 잊은 열상 위를 토닥입니다. 지난 장소와 지난 사람들을 수소문합니다. 몇은 서울로 나가 있고 몇은 남아 있습니다. 잊고 살던 사람들을 수소문하니 나의 첫 사진을 찍어 주었던 선생님의 지난 부고가 있습니다. 지난해 유월의 부고를 오늘에서야 받고, 나는 나의 생애 첫 해와 둘째 해를 찍던 더벅머리 사진작가의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파도에 쓸려나간 웃음에 인사합니다. 잘 가세요, 고랑과 절벽, 사계절의 고난, 가뭄과 홍수에 헐떡이던 산과 바다일랑 다 잊고, 묵상해야만 하는 침잠된 산과 바다를, 갓난 나를 찍었던 낡고 무거운 카메라도 다 버리고, 훌훌.
탁구 선수 출신의 목사는 속초로 가는 길이고 그의 아내는 여전히 반죽을 주무릅니다. 구운 빵을 가져가라는 전화를 받으며 작년에 없어진 초원서점의 허물어진 데를 흘깃거립니다. 열 평짜리 작은 카페는 삼층이 되었고 주전자 끓던 부엌은 커피머신 두 대가 돌아갑니다. 없어진 곳, 새로 생긴 곳이 무상하게 시퍼런 바다 앞에서 부지런히 굴러갑니다.
바다는 뜨겁게 파랗고, 모래마다 달군 수평선 냄새가 납니다. 지글거리는 마음이 볕과 파도 만나 윤슬로 빛납니다. 갈매기와 참새 몇이 모래 위에 발을 굴러, 고향의 이름으로 파닥거립니다. 나는 걸리는 것 없이 끝없이 구름이 가는 하늘과 끝없이 수평선이 가는, 끓는 바다 앞에 서서 기다립니다. 파도가 굴러가는 일을 마칠 때까지, 갈매기가 날다 하늘 모서리에 부딪혀 떨어질 때까지.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진작가는 이미 작년에 포말을 타고 바다 끄트머리에서 하늘 밑단을 딛고 가버렸고, 고향을 잊었던 아무개의 마음은 별 수 없습니다. 별 수 있나요, 이제나, 저제나, 그치지 않는 푸른 것 앞에 먹먹해집니다.
On Ezio Bosso - Seasong 1- 4 and Other Little Stories
아무도 모르지만, 저 바다는 내 바다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바다이기도 하고 아무의 것도 아닌 바다이기도 합니다. 바다는 포말 단위로 쪼개지고 모래알만큼 셀 수 없이 작고 많게 쪼개져 수많은 사람들의 것으로 나눠집니다. 우리는 모래알 하나만큼의 바다를 가지고 푸르게 넘실대는 모든 것의 주인인 양 매년 그리워합니다. 모래알은 각자 자기의 바다를 이고 끝없이 밀려오는 물결을 책임집니다. 나는 아주 작은 모래가 거기에 겸허하고 단단하게 서서 파도에 쓸려 왔다, 갔다, 부지런히 흔들리는 것을 봅니다. 그의 생에 너무나 거대한 바다라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끝없는 순간을 보며 그만큼의 한숨을 흩뿌립니다. 그것은 모래알만큼 작은 나의 바다 지분에 대한 세금이자 또한 나 같은 작고 한미한 존재들에 대한 애정입니다. 내 맘도 몰라주고 모래알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파도 소리에 파묻힙니다. 그러면서 점점 조금씩 더 작아집니다.
신발자국이 찍힌 모래는 짭자름하게 눌렸다 다시 샅샅이 흩어집니다. 생각해 보면 저 수많은 모래알 인생이 부딪히고 섞이는 소란을 뒤덮어 버리는 파도소리라서, 바다를 귀에 들이는 것 같습니다. 바다를 귀로 들이면 악의 없이 쉴 새 없는 물결이 시끄러운 속내도, 인간 세상의 뻐근한 소리도 다 덮어줍니다. 하나도 고요하지 않은 고요와 시끄러운 평온이 밀려들어옵니다. 바다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귀를 떼어다가 바다에 던지면 그것이 파도가 된다는 전설을 만듭니다.
바다가 아직 어렸을 때, 아직 음악을 알지 못하고 그저 파랗고 요동치기만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이라는 책에 보면 하늘과 궁창, 바다는 각각 다른 날 태어났습니다. 그 날들 사이의 무수한 시간이 축적되고 퇴적되어 사람이 태어날 세상의 적요와 고요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때의 묵묵한 일들을 알고 있는 바다와 하늘은 아주 나중에 사람이 모래알만큼 잘게 부서져 내릴 때, 귓속말로 먼 옛날의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 했습니다. 바다는 사방으로 뻗어 사람을 지켰습니다. 때로는 봄이 여름으로 가는 것이나 새가 지나가는 것이나 그 밖에 어디론가 가는 모든 것들을 위해 물결을 내었습니다.
어느 때에,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남들보다 더 좋은 청력을 가지고 태어나 사람들이 그리움을 노래하거나 슬픔을 노래하는 소리 속에서 정의한 적 없는 잔떨림과 울림이 밀고 쓸려나가는 것을 들었습니다. 짭짤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하며 촉촉한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몸속 깊은 곳에서 밀려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울림이 날 때 떨리는 목울대나 가슴, 배꼽 언저리리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은 아무 말이나 할 때도 떨렸습니다.
그는 잔떨림과 울림이 유난히 더 울렁거릴 때의 노래가 들릴 때, 알 수 없는 먼 옛날에서부터 밀려오는 아득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눈치챘습니다. 그리고 그런 소리가 귀에 들어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는 것도 눈치챘습니다. 그는 소리의 출처를 찾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많은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새들의 노래와 동물의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도 소리가 샘솟는 근원이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지쳤습니다. 많은 소리에 지쳐 이제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 졌습니다. 노랫말은 더 이상 새롭지 않았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울림을 잊어버리는 것에 지쳤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처럼 울림과 떨림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외로웠습니다.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을 찾으러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사막에 갔습니다. 그는 모래알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와 타들어가는 침묵을 걸었습니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목이 말랐습니다. 그는 물가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물가에는 너무 많은 나무와 새와 동물이 있었습니다. 물이 필요한 여러 생명들이 내는 숨소리, 노랫소리, 이따금씩 찾아오는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있었습니다. 그는 물이 있으면서도 사막처럼 고요한 모래알이 침묵의 박자를 만들어내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이윽고 바다에 이르렀을 때, 그는 수많은 모래알이 굴어 들어가는 바다와 바다에 젖은 하늘의 끝없는 침묵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조용한 바다를 따라 끝없이 걸었습니다. 걸으면서 그동안 들었던 수많은 말과 노래와 소리와 울림과 떨림을 토했습니다. 그가 토할 때마다 바다는 물결을 내어 올라와 찌꺼기를 닦아주었습니다. 그가 토한 것들은 눈물만큼 짜서, 바다는 점점 더 짜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다가 끝이 나는 곳까지만 걸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 걸었습니다. 외로웠지만 어차피 외로웠기 때문에 괜찮았습니다. 하염없이 조용히 걷던 어느 날, 그는 바닷속에 발이 담겨 있을 때, 물결이 슬쩍 발목까지 올라왔다 밀려갈 때,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울림과 떨림이 느껴지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멈춰 서서 바라보니 처음 도착한 그 장소와 똑같았습니다. 그는 계속 같은 곳을 맴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바다는 파랄뿐이고 모래알은 계속 모래알이었습니다.
그는 바다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과 그래서 바다의 소리를 눈치채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아무개는 눈을 감고 걸을 때마다 모래알이 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지겨워했던 사람들의 소란처럼 들렸습니다. 그는 바닷속에 머리를 처박았습니다. 그 속은 고요하고 오로지 잔떨림과 울림만 있었습니다. 바다는 그의 귀에 옛날 옛적의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소리만큼은 사람과 바다의 시차를 건너뛴 소리였습니다. 바다는 울림과 떨림을 듣는 그를 매우 사랑했고 그도 바다를 매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었으며 바닷속에 오래 있을 수 없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맴돌던 그는 이제 쇠약해졌습니다. 말을 하지 않은 날들이 오래되어 수척해졌습니다. 그는 힘겹게 자신의 친구들과 사람들을 떠올렸습니다. 울림과 떨림에 울고 웃던 사람들이 바다의 소리를 들었으면 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자신처럼 외롭지 않기를 바라고, 동시에 자기의 생처럼 조금은 외롭기를 바랐습니다. 고요한 어느 날, 말라붙은 마지막 날, 그는 모래알과 물결이 만나는 장소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귀를 잘라 바다에 던졌습니다. 바다와 그의 사람들에게 남기는 최후의 선물이었습니다. 그의 귀는 평생 동안 너무 많은 것을 들어왔기 때문에 바다는 크게 동요했습니다. 또한 그의 귀는 바다의 소리를 충분히 들었기 때문에 바다의 물결을 더욱 거세게 했습니다. 그때, 바다는 물결을 이리저리 동요시켜 해변의 모래알과 부딪혀 온몸으로 울었습니다. 그 소리는, 매우 아름다워서 귀가 없는 그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날, 멀리서 밀려 들어오는 흰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떤 이들이 울림과 떨림이 간절해졌을 때 자기도 모르게 흰소리가 나는 쪽으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파란 바다 위에서 희고 꾸준하게 부르짖는 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해변 모래알 사이로 스며들었다 다시 도로 들숨을 쉬는 바다의 소리를 들은 이들은 세상의 소란과 버거움을 잠시 잊고 알 수 없는 감흥을 느꼈습니다. 바다는 그들 쪽으로 흰소리를 내며 어떤 이야기들은 듣고 또한 어떤 이야기들을 해주었습니다. 모래알 같은 사람들이 흰 파도 사이로 수없이 드나듭니다. 바다는 아직 그곳에 있고, 푸르고, 여전히 그를 사랑하며 오랜 세월 동안의 말을 쉴 새 없이 전합니다. 누구의 귀가 흰소리로 산산이 흩어집니다.
ⓒEHP 박은혜
나는 내 고향의 선배들과 지독히 오래된 바다의 세월을 아득히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방금 속으로 지어낸 '귀를 잘라내어 바다에 던진 사내와 파도'의 전설을 서투르게 전개하며 음악을 들었습니다. 모든 음악은 다 파도 같고 파도 같은 파장과 물결과 흰색을 가진 음악은 모두 바다 같은 때에, 어둑해지는 밤바다 아래로 작은 모래알 하나가 굴러갑니다. 파도로 쓸려나간 무수한 세월이 지글거리며 잘게 떨립니다. 그것이 내 귀에 떨어져 무슨 이야기를 더 해줄까요.
Seasong 1 to 4 and Other Little Strories
1. Before the Sea
2. The Sea - Prayer
3. Waves and Hope
4. Anami, the Sea Goddess
5. Bitter and Sweet
6. Smiles for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