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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LifeBGM 27화

LifeBGM | 안녕, 안부와 당부

Eyolf Dale Trio -When Shadows Dance

by Ggockdo

평범한 인사를 평범하지 않게 하느라 애쓰는 그렇다고 비범하지는 않은 무리들을 향한 안녕의 글자를 모르는 자들과 안부를 당부처럼 하는 모든 결정적 순간에 대한 일장연설. (직접 육성으로 낭독하시오.)


안녕하세요? 안녕, 은 평안하셨나는 안부입니다. 그리고 안녕하세요. 당부합니다.


평안하기 참 어렵지요? 저 또한 그렇습니다. 무탈하고 기복 없이 살면 감흥이 덜할까 봐 그럴까요? 어느 쪽 신이신지 매일 부르튼 마음으로 뜨거운 설움을 옮겨야 하는 노역을 주십니다. 그러고 나서 묻습니다. 안녕하신가? (가려운 몸을 벅벅 긁으며) 차마 안녕하지 못하다고 말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구본을 빙글빙글 돌리다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이국 땅의 척박한 맛이 입 안에 돌아서 말을 내뱉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은 왜 긍휼과 연민과 측은지심을 가져서 자기의 안녕하지 못함을 차마 뱉지 못하고 삼킬까요.


(애처로운 얼굴을 하기 위해 입꼬리를 억지로 힘주러 끌어내리다가 주름지는 턱께를 검지 손가락으로 반듯하게 핀다.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가 한참 거울 앞으로 서성거린다. 얼굴을 볼 만한 용기가 없어 힐끔거리는 시선으로 본다. 불현듯 잊고 있던 게 생각이 났는지 칫솔에 치약을 아주 조금 짜서 이를 닦는다. 이를 닦는 동안은 거울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도대체 왜? 치약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특이한 종류의 허브가 들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이를 닦으면서 음악을 틀었습니다. 오래간만에 온욕을 준비하며 물소리와 치약의 맛과 음악이 섞여 수증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세면대에 여러 번 침을 뱉었습니다. 따뜻한 목욕은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인가, 하는 마음과 나에게 안녕하지 못하다는 통보를 받은 혼잣말이 뒤엉켜 끈적한 침이 되어 천천히 세면대 표면을 흘러내립니다. 반 넘게 차고 있는 욕조의 물을 손으로 떠 침 위에 붓습니다. 투명하고 끈적한 침은 물의 침투를 용납하지 않고 부패한 달팽이 시체처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갑니다. 나는 수도를 잠그고 내가 뱉은 자기 연민의 투명하고 혐오스러운 침이 물구멍으로 내려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내 침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안녕. 당부합니다. 꼭 안녕해. 그것이 어떤 어조인지 알아차릴 새도 없이 가버립니다. 무척 서운하군요. 나를 스스로 가여워하는 감정은 고작 이 정도입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에 후끈거리는 욕실에서 내 몸은 지나치게 번들거립니다. 짜고 번들거리는 몸은 뿌연 거울에 비추어 흐릿하게 확인하고 닦아봅니다. 그래도 또다시 희게 흐립니다. 나는 내 흰 그림자를 보고 축복받은 뜨거운 물이 폭소를 터트리는 것을 봅니다. 지나친 온기와 만나 한껏 부유해진 물속은 덥고 두근거리고 펄떡댑니다.

on Eyolf Dale Trio - Distilled DistilledDistilledDistilled DistilledDistilled


앨범은 이제 한 번 돌아 다시 새로 시작합니다. 노르웨이 피아니스트 에올프 데일은 무미건조한 몸씻기를 지나치게 과장된 장면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마침 첫 곡의 제목이 '증류된 것'임을 알고 나는 뜨거운 물속에 얼굴을 담구었습니다. 핏줄마다 열이 올라 귓가에 두근거리는 맥박이 옮아옵니다. 뜨거운 피, 뜨거운 피들이 수면의 경계에서 찰박거리는 귓가로 몰립니다. 마치 부끄러운 일을 목격한 것처럼.


뜨거운 피들, 살아있다는 신호들이 물을 투과해 들어오는 데일의 피아노에 쓸데없는 비트를 더합니다. 귀에 거슬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잘 듣기 위해 붉은 얼굴을 들어 콧구멍을 벌립니다. 조금 젖은 코털이 물방울울 튕겨냅니다. 수면 위에 튕겨지는 작은 콧물방울 위로 수증기가 모락 모락 합니다. 참으로 먹음직스럽군요. 따뜻한 제물이 김이 되어 날아다가 천장에 맺힙니다. 천장에 맺힌 증류된 물방울은 박쥐 같습니다. 투명해서 구분이 잘 되지 않지만 분명 거꾸로 매달린 거지요. 거꾸로 매달리는 게, 기화와 수증과 증류를 거친다는 증거인가 봅니다.


거꾸로 달린 물방울이 점점 늘어날수록 머릿속에 생각이 송글거립니다. 그들은 진짜로, 송글거립니다. 송글, 이 의성어인지 의태어인지 모르겠지만, 진짜로 송글거린다는 움직임이 있단 말입니다. 소리까지 납니다.

그 '송글' - 송골이 표준말인 것도 압니다. 잠깐만 허용해 주시기를 - 송글거리는 소리는 에올프의 피아노 사이와 페르 자누시Per Zanussi 의 현 사이에 맺혔다가 아우든 클레이브Audun Kleive가 두들기는 소리에 튕겨 나오는 소리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s소- 오 ㅗ ㅇ 그 - ㄹ하며 꽤 여유 있게 흔들거리며 내는 살짝 외설적으로 울리는 발음입니다.

- Silence SHores - When Shadows dance


조용한 해안을 넘어서 이제 그림자가 춤추는 구간으로 넘어갑니다. 나는 그림자는 아니지만 무엇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고작 십여분 뜨거운 물에 있었다고 어지럽습니다. 깜빡 잠이 들만한 위기에서 벗어나 제 멋대로 뛰는 심장을 물 밖에 내어 놓습니다. 나는 핫슈를 먹은 듯이 어지러워... *서정주 「대낮」


천장에서 증류된 감정들이 떨어집니다. 벌써 이렇게 되었군요. 욕조 한 칸만 한 공간에서 내가 만든 대류는 템포가 빠릅니다. 방울은 시원합니다. 내 몸이 뜨거운 탓이지요. 사실 저는 온욕이 어울리는 체질이 아니랍니다. 땀이 많고 열이 많고 마음도 많아서 숨쉬기만 해도 너무 많은 기력을 소진합니다. 저절로 쓸려 나가는 내 감각과, 감각과 감정들이 이렇게 기화되어 냄새나는 구름을 만들고 하늘의 패턴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니까 나는 대단한 존재입니다. (개처럼 머리를 흔들어 턴다.)


물이 다 빠져나가도 몸은 여전히 후끈거립니다. 수증기에 물방울이 흘러내리고 있는 거울을 봅니다. 얼룩진 실루엣이 흔들거립니다. 나는 손을 들어 흔들었습니다. 아무 말 없는 안부 인사가 반사되어 나에게 되돌아옵니다. 입을 벙긋거리지만 말은 하지 않습니다. 저기서 이미 글자가 형현形現되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에게 인사합니다. 내가 나에게 안부를 당부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챙겨준답니까. 사는 것은 외로운 일이고 거울을 보지 않으면 내 눈이 울고 있는 모양인지 웃고 있는 모양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데. 혹시 당신은 아십니까? 당신 얼굴이 평소에 어떤 얼굴로 '안녕'을 맞이하고 있는지? 그런 표정으로 살고 있으니, 평온할 새가 없지요. 평온도 누울 자리를 보고 다가오는 법입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눈과 코와 입이 낯에 누워 있으면 어떤 평안이 마주 보고 인사해 주겠습니까?


(양손을 들어 마구 흔든다. 너무 더워서 휘청거린다.)


이렇게 하십시오. 각자 아침저녁으로, 거울을 보며 손을 흔드는 겁니다. 윤동주가 자화상을 보면서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청동거울을 닦았던 것처럼. 우리는 발바닥을 비비는 걸로 하지요. 어떻습니까? 손바닥을 비비면 너무 비굴해 보이니 발바닥을 비비는 것으로 합시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흔드는 겁니다.


너, 안녕하냐? 나, 안녕하다. 너, 안녕해라.


완벽하지 않습니까? 안부는 곧 당부고 당부는 곧 안부여도 되는 유일한 말로 이뤄진 문장입니다.


세상에는 안녕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고 평온이 필요한 곳도 너무 많아서 차마 내가 나에게 묻지 못하는 비극적인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는 오늘 다른 사람들에게 안녕하냐고 묻겠지요. 안녕히 가든지 계시든지 하라고 당부하겠죠. 그러다 날이 저물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를 돌보지 못한 하루에 죄책감을 가지고 과하게 뜨거운 물로 씻으며 침을 뱉겠지요.


아무에게도 향하지 못한 침, 아무에게도 발산하지 못한 나의 속내를 뿜어내기 위해 비좁은 공간에서 두피가 두근거릴 때까지 나를 증류하는 겁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이제야 비로소. 안녕하다.


물을 좀 마셔야겠습니다. 안녕.


(스피커에 습기가 차서 지지직거린다. 문을 열면 흰 수증기가 빠져가나면서 춤을 춘다. 그 뒤로 빨갛게 익은 알몸 하나가 페이드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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