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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LifeBGM 29화

LifeBGM | 콘트라베이스

Renaud Garcia-Fons - Palermo

by Ggockdo


콘트라베이스는 왜 나를 매료시키는 것일까. 피아노를 향한 애정은 낱낱히 분해할 수 있다. 피아노는 현악기와 타악기와 멜로디 악기를 모두 겸하고 무겁고 진중한 외형으로 거대하게 앉아 있다. 세 개의 페달과 88개의 건반에 대한 세세한 관심의 역사도 길게 쓸 수 있다. 하지만 콘트라베이스는 설명할 수가 없다. 트리오의 가장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군말없이 큰 몸으로 둥둥 울리는 게, 어떻게 나를 자극하고 나를 감동시키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이유도 모르면서, 의미와 뜻도 모르면서 나는 콘트라베이스의 선율를 흠모한다. 그들의 두꺼운 줄과 커다란 울림통을 흠모한다.


어쩌면 이유도 모른채 사로잡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매력이다. 그렇다면 콘트라베이스는 나에게 가장 완벽한 사랑으로 다가오는 존재다. 더블 베이스라는 말은 싫다. 베이스도 싫다. 나는 콘트라바스Kontrabass, 또는 콘트라바소Contrabasso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 콘트라 - 라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콘트라Contra는 '반대의' 라는 뜻인데 왜, 언젠가부터, '한 옥타브 더 낮은 음역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중간 음역대는 수평선 또는 수면이다. 그 아래의 세계와 그 위의 세계가 각각 있다. 아래에는 장력이 있고 위에는 부력이 있다. 나는 장력이 수면을 밀어내며 저항하는 세계의 신음이 콘트라 - 라고 혼자 정의내린다.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는 수면 위에서 떨어댄다. 그것은 재잘대는 윤슬처럼 잘게 떨리고 부력으로 음을 밀어 올린다. 콘트라 - 베이스는 아래에서 음을 밀어 내린다. 수면의 표면 장력에 대항하고 물 속의 부력을 상대하며 깊은 물의 울림으로 운다. 거대한 고래의 신음처럼 짙고 낮게 떨린다.


라스 다니엘슨Lars Daniellson, 장 필립 비레Jean philippe viret, 아비샤이 코헨avishai cohen, 맷 펫맨matt penman,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 오마 아비탈omar avital... 나는 재즈 베이시스트들을 대중가요 가수들처럼 여긴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우뚝 서 있는 사람은 가르시아 폰즈Renaud Garcia-Fons다. 그는 무거운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사막에 남겨진 요새 유적지 안에 홀로 갇혀 연주한다.


on Renaud Garcia-Fons - Palermo


그는 콘트라베이스 자체다. 콘트라베이스가 말한다면 그가 연주하는 선율의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때로는 낮고 때로는 비올라의 아버지같은 부드러운 선율로, 또 채찍질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콘트라- 그의 낮음은 옥타브에 대한 것이 아니다. 콘트라 - 그의 반대는 음악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에게 대항하고 자기의 속내의 수면 아래를, 낮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콘트라 - 는 자기를 완전히 밀어내는 장력 속에서 연주될 때 가장 본연의 소리를 낸다. 나는 내 자신이 콘트라베이스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를 완전히 콘트라- 하는 것은 자기를 온전히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어느 때에는 반드시 가르시아 폰즈가 오로지 콘트라베이스 하나로 모든 말을 할 수 있듯이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이 아주 짧은 문장이라 하더라도.


콘트라베이스는 거대한 나무몸통을 가졌는데, 나는 자꾸 그것을 물 속에 던진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현악기는 나무로 만든 배처럼 물 위를 스쳐가다 육지에 다다르지만 콘트라베이스는 좀처럼 뭍으로 올라갈 생각을 않는다. 나는 잠수하듯이 깊게 가라앉는 콘트라베이스의 깊은 활강으로 잠수부의 이명을 앓는다.


시끄럽고 떼떼거리며 웅성거리고 엥엥거리는 세상에 고개를 내밀고 살다가는 얼얼해지기 십상이다. 날카로운 감각은 점점 더 날이 서고 머리카락은 가닥 가닥 가시가 되어간다. 빼빼 마른 선인장으로 나는 사막에 간다. 언젠가 친구는 나에게 마른 사막에 마른 나무가 길게 누워 있고 정면에 말라가는 거대한 선인장 사진을 보낸 적이 있다. 지금 너는 꼭 이렇다고, 혹시 목이 마르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콘트라베이스 음악을 들었다. 음악이 사진과 나를 이겨내도록 오래 오래 들었다.


가르시아 폰즈는 enja에서 발매한 솔로 앨범에서 내가 누워있는 사막 같은 곳에 서 있었다. 그는 알고 있다. 사막는 한 때 바다였다. 마른 나무가지 대신 고래뼈가 사구 위에 솟아오른다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폰즈는 그런 음을 냈다. 사구에서 기포가 사그락 거렸다. 나는 그의 콘트라베이스를 몇 세기 전의 바다로 던졌다. 이 사막이 사막이 아니었을 적에 한 개의 콘트라베이스는 깊게 잠수해 천천히 활강하며 음악이 되었다. 나는 이런 전설을 만든다. 그의 음악을 듣는 동안에만 유효한, 목적도 이유도 없는 전설을.

그 전설은 메마른 나의 혈족에 바치는 콘트라- 였다.


콘트라베이스를 듣는 시간이 온다. 쌀쌀한 북동풍이 오늘 계절에 자꾸 졸린 귓가로 깊은 활을 집어 넣는다. 가르시아 폰즈가 말한다. 콘트라 - 낮고 자기를 명확히 사랑하는 깊은 활강과 그것에 온전히 대항하면서 바다와 사막의 사이를 튀어오른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한다. 그것이 모래투성이이거나 물에 불은 것일지라도.


오! 콘트라 - , 나를 사랑한다는 또 다른 말로 더 낮고 더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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