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enEriksenTrio -End of Summer, Endless
끝은 자기가 끝인 줄을 모르고, 모든 끝은 자기의 끝을 모른다. 끝은, 실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인지도 모른다. 끝났을 때에는 이미 끝으로 가던 무엇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끝이라는 말을 수없이 사용하는 것은, 무엇을 이제는 더이상 지속하고 싶지 않거나 무엇이든 소멸시켜 버리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끝이라는 게 있단 말인가...
봄이 끝났다. 여름이 왔다. 여름이 끝났다. 가을이 왔다. 가을이 끝났다. 겨울이 왔다. 겨울이 끝났다. 그리고 봄이 왔다. 무엇의 끝은 무엇의 시작이고 그것이 끊임없이 원을 친다. 결국 끝은 정말로 끝이지 못하고 만다. 만약 끝, 이 인격체였다면 그는 자기의 비참함을 한탄하며 끝을 내고 싶어하다가 결국 끝도 모르는, 없는 존재가 된 미아처럼 길을 잃을 것이다. 그게 어쩌면 맞는 말일 것이다. 미아가 되기. 끝에게 걸맞는 끝이다.
어제 에스펜 에릭슨의 공연을 다녀왔다. 일년 만이었다. 함께 간 지인은 나에게 "이 공연장에서 지난 번엔 겨울을 끝내주었고 오늘은 여름을 끝냈네요." 지난 번에 함께 본 공연은 겨울 막바지에 본 "Flight to Denmark"였다. 에스펜은 End of Summer 를 연주했다. 어제 날씨는 비와 함께 급격히 기온이 내려갔다. 서늘해서 청자켓을 꺼내 입었다. 정말로 여름이 끝났구나 싶었다.
올 여름, 나는 얼마나 자주, 많이 여름의 혹독함을 이야기했는가. 끝이 날 듯 끝나지 않던 더위와 습기와 싸우던 긴장의 끈이 풀려버렸는지 어제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부터 몸이 아팠다. 피부 아래가 징징 울렸다. 여름의 끝, 을 들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지인이 가장 좋아하는 Endless, 끝이 없음이라는 곡 때문일까. 두 곡을 연달아 들으면 아주 자연스러운데 이상하게 서러워진다.
무엇의 끝에서 끝나지 않음을 말하는 지독한 영속 때문이다. 이미 하찮고 낡아버린 채로, 지친 채로 무엇이든 끝날 것이라는 허황된 꿈을 갖고 사는 우리. 시작은 이미 너무 멀어졌고 무엇이든 끝내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길도 없는 우리의 너덜너덜한 영속 때문이다.
On Espen Eriksen Trio - Endless
"오늘 당신의 음악은 일기장의 매 페이지에 꽂아 넣어 두었던 책갈피 같았습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후두두둑, 떨어지는." 나는 에스펜에게 말했다. 그는 내내 웃던 입을 잠깐 다물었다.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문장을 곱씹는 듯했다.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여름과 가을 사이, 모든 틈에서 당신의 음악이 떨어져요." 나는 추가적으로 말했다. 속으로는 이것을 떠올렸다. '『von Schwelle zu Schwelle』문턱에서 문턱까지 (Paul celan파울 첼란의 시집)'
틈새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던 작년 12월부터 오늘까지의 기억 사이에서 어떤 음율들이 쏟아졌다. 나에게는 문장이었고 그들에게는 음표였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CONTEXT야.' 거대 정보 카르텔의 세력 틈바구니의 진실 말하기, 보이지 않는 의미와 의미 사이를 헤집기. "나는 벽돌을 쌓는 것이 아니라 벽돌과 벽돌 사이에 끼인 이끼에 대해 말하고 싶어." 나는 그렇게 말했었다.
사이음악*, 사이문장*(사이 Zwischen - 음악/문장은 작가 박은혜의 개념어로 추후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한다.) 사이에 사는 것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고 했다. 호흡과 호흡 사이와 심장 박동과 심장 박동 사이, 그 사이의 순간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앞으로 나의 글의 정체성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 예고는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막막한 불안에 시달리던 지난한 여름
On Espen Eriksen Trio - End of Summer
은 다음에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한다. 방금 페이지가 넘어갔다. (페이지 번호 미상) 그 사 이
에서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그것이 어제의 날씨였다. 오늘의 날씨는 어제와 다르다. 문턱에서 문턱까지 짧고 깊은 순간만이 영원하다. 페이지는 단면이고 오늘은 평평하고 방은 넓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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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오히려 영원한 것이다. 끝을 모른다. 그 틈새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고 말할 수 없는 많은 음율과 문장을 끼워넣는다. 몇 해 전에 벚꽅놀이에서 주운 꽃잎이나 가을의 낙엽과도 같은 것, 우리가 종종 추억이라고 설명하는 이야기들의 영혼은 거기에 숨어 있다. 에스펜은 "그것은 내가 작곡한 게 아니라 그냥 발견Discover된 것이야. 이미 어디에 있는 건데 그걸 내가 발견하고 가진거지." 라고 말했다. 그는 늘 그런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발견Discover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무의식적으로 매 페이지와 모든 사이와 틈들을 뒤지고 다녔다는 것을 안다. 오선지의 다섯개의 줄은 줄이 아니라 ( ) 와 ( )의 사이의 경계를 보이게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삼센치가량의 오선지를 그리고 그 위에 아무것이나 자기를 표현하는 음을 적어달라고 했다. 그는 몇 가지 음을 적었다. 그 음들은 사이에서 흘러내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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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선지 그림은 끝도 시작도 없었다. 갑자기 공책 가운데 생겨났고 갑자기 마무리되었다. 끝이라는 것의 정체처럼. 에스펜 트리오와 나는 내 공책에 적힌 몇 가지 질문을 한참 고민했고 몇 번의 눈짓을 나누었다. 눈짓과 눈짓 사이에서 많은 음악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 틈에서 짧은 '끝'같은 것들과 '시작' 같은 것들이 점멸했다. 그렇게 점멸할 때에만 끝은 가끔 번쩍여 자기가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Endless를 들을 때마다 운다던 지인은 왜 자신이 우는줄도 모른다. '환상과 그렇지 않은 현실의 괴리감이 느껴져가 아닐까요.' 그는 틈 사이에 집어 넣었다 베인 상처에서 눈물을 흘린다. 나는 에스펜에게 그녀의 말을 전달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끝내지 않음. 끝이 없음. 나는 몇 해 전 강원도 동해에서 속초로 넘어가는 산길을 헤대마다 초록색 표지판을 발견한 적이 있다. 『도로 끝』 다져지지 않은 표지판 너머가 있었다. 아직도 나는 가끔 표지판을 들이받고 수풀을 달리는 꿈을 꾼다. 꿈에서 풀냄새가 났다. 자다가 가끔 운다는 내 눈꺼풀 사이에서 낙엽이 페이지 사이에서 압착되어 나는 은은한 식물의 냄새가 났다.
그렇다. 나는 여름의 끝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끝나지 않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런 간절함을 끼워넣고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는 두려움에 축축히 젖어 들어가는 종잇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괜찮다. 끝은 없다는 것과 끝없는 것은 오로지 사이라는 사실이 명명백백해 졌기 때문이다.
덮어버린 책이 부풀어 있다. 읽었던 페이지 사이마다 내 냄새가 끼어 있다. 나는 일기장을 허투루 살펴 보면서 벌어지는 사이를 훔쳐보았다. 아주 깊고 진한 음악이, 문장이 점멸했다. 나는 그 점멸 신호를 읽으려고 오늘도 틈과 틈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 넣는다.